탈원전 후폭풍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두산중공업을 축으로 무려 2천여 개 원전부품 협력업체로 구성된 원전생태계가 기초부터 파괴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정부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손실을 전기료에서 3.7%씩 떼 모은 전력산업발전기금으로 메워주기로 했다. 동쪽 연안에 10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중국은 11기를 더 짓는다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탈원전인지 갑갑한 노릇이다.

통합당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지난 2일 입법 예고한 전기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에 대해 “탈원전의 실패를 덮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는 개정안”이라고 비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용도에 ‘에너지전환 비용보전’을 신설한 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기습적으로 입법 예고했다. 탈원전에 따른 손실을 보전해 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전격적으로 탈원전을 선언한 뒤, 당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022년까지 탈원전 정책에 따른 추가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임기 내에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을 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란 공언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당정 선언은 3년 만에 ‘허언’이 되고 말았다.

전기요금으로 조성된 전력산업기반기금은 4조9천696억 원(올해 기준)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일단 이 쌈짓돈으로 급한 불을 끄고 볼 요량이지만 결국 전기요금 인상, 관련 공공기관과 산업계의 재정 부실화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됐다.

탈원전 정책이 무조건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안전하고 깨끗한 전력 생산의 기초를 닦아나가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정부의 추진 방식은 성급한 데다가 감추고 포장하고 미루는 방식이라는 게 문제다. 중국이 한반도를 향하고 있는 동쪽 연안에 원전에너지 생산시설을 폭발적으로 늘려가고 있는 상황은 문재인 정권의 ‘원전은 위험하다’는 명분을 완전히 무색하게 만드는 비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탈원전인지 다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