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국민의 당 대표가 외유를 끝내고 귀국하면서 활동 방향을 밝혔다. 그는 21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며, 중도·보수 통합을 논의 중인 혁신통합추진위원회(혁통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실용적 중도정치를 실현할 정당 만들 것”이라고 천명했다. ‘중도정치 실험’ 시즌2를 시작하겠다는 그의 선언을 들으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또다시 사이비 야당을 추가하는 우(愚)가 재현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우리 정치는 다수의 횡포로 인한 불합리와 극한대립, 심각한 극론 분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치다운 정치는 사라졌고 교졸한 ‘꼼수’들만이 정치권을 횡행하고 있다. 이 정권의 협치 수준을 ‘제1야당 패싱’이라는 최악의 사태로 몰고 간 핵심 요인은 20대 국회 막판에 등장한 ‘4+1’이라는 변칙적인 의사결정 구조였다.

그런데 ‘4+1 협의체’의 태동 그 근저에는 지난 총선에서 ‘중도정치’를 표방했던 국민의당 돌풍이 있다. 지나고 보니, 호남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뭉친 ‘국민의당’은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든든한 보험이었다. 탈당·합당 등 이합집산이 이뤄지긴 했으나 그 본색은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평소에는 비판하는 척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집권당의 2중대 3중대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안철수가 귀국하면서 내놓은 ‘신당’ 발언과 광주행을 놓고 정치권 일부에서는 2016년 총선 돌풍을 재연해보려는 의도로 해석한다. 실정으로 위기감에 쌓인 여당이 내심 쾌재를 부를 것이라는 짐작도 있다. 안철수가 또다시 호남과 수도권의 중도민심을 선점하여 중도보수 통합세력의 진입을 원천차단해준다면 민주당에는 또다시 든든한 ‘보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도실용 정치를 성장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공감대 높은 독자적인 비전과 명분을 갖추지 못한 어설픈 중도정치가 특정 정치세력에 휘둘리거나 짬짜미를 추구한다면 ‘4+1’, ‘패스트트랙’의 횡포에서 드러난 것처럼 심각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안철수의 정치 행보는 자유다. 그러나 그의 선택이 최소한 야당의 기능회복이 절실히 필요한 우리 정치를 교란하는 변수가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