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에서 만난, 가을의 서정
올해의 여행 테마는 꽃인거 같다. 겨울 동백으로 시작해 벚꽃과 유채꽃이 봄을 장식했다. 여름에는 연꽃과 수국이 지천으로 피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줬다. 단풍의 계절인 이 가을, 경북 문경의 작은 절에 개미취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개미취는 쑥부쟁이나 해국, 구절초와 같은 국화과의 가을꽃이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청초하고 은은하다. 문경의 가을길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문경새재다. 옛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다보면 평온한 가을이 문득 다가와있을 것이다.
△ 개미취가 지천에 핀 봉천사의 가을 서정
문경 월방산은 해발 360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도 경치가 뛰어나 지역 주민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월방산은 역사적으로도 유서가 깊다. 고인돌 같은 선사시대 유적을 비롯해 삼국시대에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산신각까지 역사적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월방산 일출은 전국 일출 명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최근에는 개미취가 지천에 핀 봉천사가 주목받으면서 사진작가는 물론 여행객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월방산 중턱에 있는 봉천사는 차를 타고 가면 10분 정도면 도착하지만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야 제대로 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사찰로 올라가는 길목에 독특한 동물 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두꺼비와 호랑이 형상을 한 바위가 많다. 봉천사 입구에는 울퉁불퉁한 너럭바위가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다.
너럭바위를 중심으로 개미취가 지천으로 피었다. 키가 족히 1m를 넘는 꽃이 산 중턱에 군락을 이룬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개미취는 꽃대에 개미가 붙어 있는 것처럼 작은 털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잎새가 갈라진 모양이 마치 별처럼 아름답다. 개미취의 화사한 풍경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가족과 커플이 찾아왔고, 사진작가들까지 몰리며 봉천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주말과 휴일이면 하루 1500명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문경시 관계자는 “문경에 많은 관광자원이 있지만 이곳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개미취와 함께 월방산의 숨은 비경이 최근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뜨거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 사찰주변 200년 넘은 소나무만 100그루
개미취꽃 단지는 봉천사 주지인 지정 스님이 직접 조성했다. 개미취꽃이 활짝 피면 사람들이 봉천사를 더 자주 찾을 것이라는 소박한 소망이 결실을 맺어 관광 명소가 됐다. 개미취 때문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봉천사의 주변 풍경도 매혹적이다. 사찰 주변에는 200년 이상 된 소나무만 100그루 넘게 있다.
소나무들이 우뚝 솟은 봉천사 바로 앞 너럭바위에 올라서면 안동 학가산과 의성 비봉산까지 보인다. 덕분에 봉천사는 해돋이가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각광받고 있다.
봉천사 바로 앞에 있는 정자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중기 유학자였던 병암 김현규(1765~1842)가 1832년 세운 병암정(屛巖亭)이다. 김현규는 진사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병암점을 세웠다고 한다.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정자의 모습은 한 폭의 산수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경북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
봉천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북 최고의 절경 중 하나로 꼽히는 진남교반이 있다. 봉천사가 개미취꽃 풍경으로 빛난다면 진남교반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곳이다. 경북 8경 중 제1경으로 알려진 진남교반은 낙동강 지류인 가은천과 조령천이 영강에 합류했다가 돌아나가는 지점에 있다.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이어지고 강 위로 철교, 구교, 신교 등 3개의 교량이 나란히 놓여 있다.
문경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산성인 ‘고모산성’.진남교반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으면 고모산성에 오르면 된다. 고모산성은 문경지역에 남아 있는 성곽 중 가장 오래전에 세워졌고 규모도 가장 크다. 성으로 오르는 길은 산책로 같은 느낌이 든다. 고모산성은 천하장사 고모노구와 마고노구가 경쟁하며 하룻밤에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성 안쪽에는 돌고개 주막거리가 있다.
고모산성의 성곽은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반복했다. 지금은 옛 성벽 대부분이 허물어지고 남문지와 북문지, 동쪽 성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삼국시대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는 우리 군사 한 명 없이도 하루 동안 적의 진격을 막았다고 한다. 주변 산세가 하도 험하고 성이 단단해 왜적이 뚫고 나갈 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성의 전망대로 가려면 꽤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야 한다.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진남교반이 발치에 놓여 있다.
△ 선비들의 발자국과 군사의 비망 쌓인 곳 새재
새재(鳥嶺). 말이 가진 기교 없이도 그 이름만으로 등줄기에 바람이 스친다. ‘새도 한 번에 날아서 넘지 못한다’는 전언은 과장이 아니다. 동래에서 한양으로 이어지던 영남대로의 심장부였고, 임진왜란의 격랑 속에서는 전략적 요충으로 기록된 곳이다. 선비들의 발자국과 군사의 비망(悲網)이 켜켜이 쌓여 있는 길. 문경새재는 그렇게 역사의 무게를 안고 오늘도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제1관문 주흘관은 문경새재의 얼굴이다. 주흘관 앞 석성은 일반적인 원형 성곽과 다르게 계곡을 가로막은 일자형으로 쌓여 있다. 길목을 차단하는 간결한 설계는 이곳이 왜 중요한 통로였는지를 말해준다. 초곡성으로 이어지는 성벽은 길게 뻗어 2㎞가 넘고, 비 오는 날이면 계곡마다 운무가 피어 올라 성벽과 산줄기를 감싸는 풍경은 말로 다 옮기기 어려운 고즈넉함을 만든다.
주흘관을 지나면 곧바로 드라마 세트장으로 알려진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이 나온다. ‘태조 왕건’ 이후 수많은 사극이 촬영된 이곳의 초가와 돌담은 20년의 세월을 품어 진짜 민속마을처럼 보인다. 옛 건물의 빈터를 따라 걷다 보면 조령원 터가 나타난다. 조령원은 옛길에 세운 공립 여관으로, 과객과 상인이 무리를 이루어 길을 넘기 위해 머물던 곳이다. 지금은 한 채의 초가와 돌담이 그 자리를 지키며 달빛여행 같은 프로그램으로 옛 정취를 되살린다.
문경새재 곳곳에는 역사적 흔적이 빼곡하다. 김시습, 이이, 류성룡 같은 이름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고, 교귀정 주변의 선정비는 한 시대의 공덕을 기리는 사람들의 체온을 전한다. 교귀정 앞 용추폭포의 물소리는 길 위 휴식의 배경음이다. 반면 조곡관은 세 관문 중 가장 오래된 문루로, 좁은 길목과 붉은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오히려 더 깊은 정취를 준다. 조곡관 인근에는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남아 있는 한글 전용 비석 ‘산불됴심’이 있어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
문경새재는 ‘걷기’의 방식으로 그 진가를 보여준다.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 왕복 약 13km. 대부분의 방문객은 제1관문 주변이나 제2관문까지만 둘러보고 돌아가지만, 참맛은 하루를 느긋하게 온전히 투자했을 때 열린다. 길은 명칭뿐 아니라 과거 실제 차량이 오르내리던 길이었다. 전 구간이 비포장이지만, 두 대가 조심스럽게 지날 수 있을 만큼 넓다. 그래서 비나 눈에도 길이 완전히 막히지 않아 ‘날씨가 험할 때의 대안 산행지’로도 인기가 높다.
여행의 작은 즐거움은 사람과 마주치는 지점에서 생긴다. 팔왕휴게소의 즉흥 색소폰 연주, 동화원휴게소의 제철 산나물전과 두부김치, 그리고 막걸리 한 잔이 만들어 내는 소담한 풍경들. 한때 아이들이 다니던 조령국민학교 동화원분교 터를 지나며, 산골 삶의 잔상과 오늘의 휴게소 문화가 섞이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문경새재는 도립공원임에도 일부 구간이 사유지와 맞닿아 있어 산행 전 안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안전사고 우려가 적고 길 잃을 염려가 적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계절별·기상별 유의사항은 체크해야 한다. 또한 한 걸음 한 걸음에서 만나는 비문과 명적(名跡), 관문의 자리와 찻집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읽듯이 걸을 것을 권한다.
천 년을 품은 고갯길을 걸을 때, 우리는 단지 풍경을 본 것이 아니다. 과거의 결단과 실패, 인간의 애환과 소망이 쌓여 있는 시간을 밟았다. 문경새재는 그 시간을 걷는 이에게 말한다. ‘속도를 낮추라. 경치를 훑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라.’ 하루가 충분하다면, 새재는 당신에게 더 오래 기억될 한 줄의 이야기를 남길 것이다.
/글 _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사진_ 최병일 기자/한국관광공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