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뤼시앙 골드만이 “소설은 타락한 세상에서 진실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야기”라고 말한 게 벌써 100여 년 전이다. 하지만, 이 은유적 어법에 담긴 내밀한 뜻은 아직 온전해 해석되지 못했다. 포항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는 김강(52)은 7년 전 등단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쉽지 않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며 성실함을 보여준 그가 올해 본지에 짤막하지만 완결성을 지닌 엽편 소설을 연재하게 된다. ‘소소한설(小笑寒說)’이란 타이틀처럼 때로는 따뜻한 웃음, 때론 냉철한 비판의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설 속에 담긴 진실의 의미’를 선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소행성 L2001이 사멸했다. ‘장렬히’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은 이유는 사멸의 순간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멸 직후의 순간을 목격한 이의 증언에 따르더라도 그것의 사멸은 ‘장렬’하지 못했다 여길 수 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소행성 L2001은 잠시 꿈틀거리다, 꽈배기처럼 휜 경로를 보이다 스윽 하고 으스러졌다고 한다.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난 후 불붙은 성냥을 어떻게 해? 후~ 불거나 흔들어서 불을 끄잖아. 그리고는 개수대의 수전 아래 흐르는 물에 갔다 대지. 그러면 피식 하고 짧은 소리가 나고. 그렇게 식어버리고 결국 으스러지고 마는 성냥, 성냥 머리 같았어.’
누군가 이렇게 댓글을 달았는데 비교적 잘 들어맞는 표현이었다. 케이크가 놓인 테이블에서 수전까지 옮겨가는 동안 성냥에서 피어올랐을 연기 같은 것을 소행성 L2001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 연기 덕분에 소행성 L2001이 소행성이 아니라 혜성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또 그렇게 되어가던 중이었다.
연기가 아니었다면 소행성 L2001은 아텐 소행성군을 이루는 지름 150km 정도의 중간크기를 가진 중형의 소행성에 불과했을 것이다. 소행성 L2001은 특이한 점이 없는 다른 소행성처럼 천체물리학자나 동호인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보통은 과학자의 이름을 붙이는데 그저 알파벳 L을 붙이고 싶다는 최초 발견자의 의견을 소천체명명위원회가 이례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만이 소행성 L2001이 가진 유일한 개성이었고, 실제 소행성들을 설명하는 책자나 안내서에도 소행성 L2001이라는 이름 뒤 다음의 한 문장만이 인쇄되어 있을 뿐이었다.
‘최초 발견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명명한 몇 안 되는 천체’.
소행성 L2001이 천체물리학자 뿐만 아니라 동호인, 일반인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연기 때문이었다. 3개월 전 아텐 소행성계를 살피던 동호인 한 명이 연기를 내고 있는 소행성을 관측했다. 소행성이 연기를 만들고 연기가 다시 꼬리가 되는 것은 곧 소행성이 아니라 혜성으로 성격과 분류, 명칭이 바뀌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동호인에게는 나름 의미가 큰 관측이었다. 동호인은 곧 학계에 사실 확인을 문의했고 소행성 L2001은 곧 천체물리학계에서 주목하는 천체가 되었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천체물리학계-동호인과 학계를 아우른-에 한해서였다. 동호인들에게는 당연히 의미가 있는 발견이며 자랑거리가 되고 학자들에게는 논문은 누가 쓸 것이며 교신저자는 누구로 할 것인지, 발견자를 논문 저자 중 한 명으로 넣어줄 것인지 등등 한바탕 소란 거리가 되겠지만 어린 왕자가 방문했던 소행성, 몇십 년 마다 돌아온다는 혜성 정도 떠올리는 일반인에게 소행성이냐 혜성이냐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소행성 L2001은 일반인에게도 의미를 가진 천체가 되었다. 한 독립 천체연구가가 중앙일간지에 보낸 메일 덕분이었다.
‘제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지구와 가까이 있는 아텐 소행성계의 소행성이 혜성으로 성격을 바꾼 것은 전례가 없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단지 천체물리학적 발견의 문제가 아니며 지구, 지구인의 생존과 관련된 사항일 수 있습니다. 소행성 혹은 혜성 L2001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있을 때 연기의 꼬리는 지구를 향하게 됩니다. 꼬리는 가스와 이온으로 형성되는데 이들이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꼬리를 이루는 성분들은 처음에는 소행성을 이루던 물질이었기 때문에 소행성의 질량은 점차 감소하게 될 것이며 기존의 궤도 또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언제 어느 위치에서 태양 혹은 지구 중력의 영향을 받아 어떤 궤도를 만들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종국에는 어딘가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 어딘가가 지구라면 이는 엄청난 재앙이 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