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리 1·2·3리 일대에 4킬로미터 넘게 산수유나무가 골고루 흩어져, 특히 화전2리(숲실)가 더 붉다. 숲실(禾谷)은 약 300년 전 최 씨와 조 씨가 정착해 사방이 산으로 쌓여 있고 다래 넝쿨로 덮여 있는 골짝을 개척하였다고 숲실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또한, 화전 3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조 선조 13년(1580) 호조참의 노덕래가 이 마을에 정착했으며, 풍병에 효과가 있는 산수유나무가 많고, 산과 물이 좋아 계속 풍년이 든다하여 전풍(全豊)이라고 칭하였다 한다.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 약재로 팔기 위해 산비탈에 드문드문 심어 놓았던 산수유가 마을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어 우리를 겨울에도 이곳으로 오게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배경이 된 곳이 이 동네이다.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노란 산수유가 흐드러진 길을 달린다. 원경으로 보이는 산과 들이 모두 노란 물결인 골짜기가 지금은 알알이 붉은 열매로 변신하여 반짝인다.
노란 산수유가 한창일 때는 이 골짜기기에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을 피해 사진 한 장 찍기가 힘들고 곳곳에 줄지어 서서 더 멋진 풍경을 담으려고 꽃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붉은 열매 밑에는 우리 일행뿐이다. 며칠 추위에 살얼음이 낀 계곡에 낮게 흐르는 물소리만 우리를 반겼다.
동네가 산 깊은 곳에 자리잡아서 오후 3시인데도 햇살 그림자가 산을 기어오른다. 이마가 서늘해지는 겨울 기온이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추위다. 빨간 산수유 열매가 가득한 산책로를 따라 더 깊숙이 들어갔다.
의성은 마늘 파종이 한창이다. 산수유 열매가 다 익어 냇물에 붉은 알을 떨구어도 밭에는 마늘을 심고 또 비닐을 덮어 은빛으로 반짝인다. 사곡면 화전리는 의성읍의 동남쪽에 자리한 골짜기 마을이다. 북서쪽에 오토산, 서남쪽에 금성산과 비봉산, 동북쪽에 늑두산이 솟아 앉은 전형적인 산골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긴 골에 화전2·3리가 숨은 형세다.
산수유 열매는 신선이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옛날에 효심 깊은 소녀가 병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자 탄복한 신령님이 산수유 열매를 내려 주어 병을 낫게 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차와 술, 한약재로 쓴다. 씨앗에는 독성이 있어 과육만 쓴다. 요즘은 기계로 열매의 씨앗을 분리하지만, 옛날에는 사람의 이로 하나하나 씨를 꺼냈다. 그래서 산수유와 오래 동고동락한 어르신들의 치아는 다 닳아 있다. 또 붉은 열매가 떨어진 계곡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이 또한 씨앗의 독성 때문이라니 살살 언 얼음 밑에 송사리나 겨울잠 자는 개구리는 보지 못할 것 같다.
꽃으로 눈과 마음이 배불렀다면 이제는 허기를 달랠 시간이다. 의성에는 붉은 게 또 하나 있으니 닭발이다. 의성 전통시장에서 50년 장사하신 분의 솜씨가 젊잖다. 차림표부터 시골 냄새 물씬 풍겨와 할머니 집에 온 기분이다. 주문하면 바로 숯불에 구워주는 닭발이라 더 특별한 맛이다. 비빔밥과 묵사발과 함께 후룩 마시면 속까지 붉어지는 하루 일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겨울에 산수유 마을을 찾는 이가 적어서인지, 주차장에 화장실이 잠겼다. 빨간 산수유 열매를 좀 더 알리려면 이런 소소한 부분부터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