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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등록일 2015-05-15 02:01 게재일 2015-05-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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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쩍새 우는 밤에
▲ 조낭희<br /><br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새내기 직장인 딸이 잦은 야근으로 힘들어했다. 꽃다운 나이에 자아 실현은커녕 존재의 결핍과 허무, 상실감들을 토로하는 그녀를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지 난감했다. 원 없이 잠만 자고 싶다는 딸을 데리고 완주 송광사로 향했다. 무언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를 안고 떠났다.

신라 진평왕 5년(583) 도의선사가 터를 잡고 경문왕 7년 보조 체징선사에 의해 중창된 송광사는 산속이 아니라 마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호흡하고 있었다. 국보급 보물들이 많은데도 입장료가 없는 문턱 낮은 가람이다. 일주문부터 다포계 팔작지붕의 화려한 금강문, 여닫을 수 있는 문이 있는 보물 1255호인 천왕문이 대웅전까지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범종을 중심으로 목어, 운판, 법고가 모셔져 있는 아(亞)자형 종루의 열십자 팔작지붕의 우아한 자태도 송광사를 대표하는 보물이다.

짐을 풀고 일주문 옆의 전통찻집으로 향했다. 흰 마가렛과 보라색 피츄니아가 예쁘게 핀 찻집에서 마신 쌍화차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정이 묻어나는 전라도 사투리, 신라와 촐라라는 이름을 가진 모녀 고양이의 여유로운 재롱이 낯선 곳에 대한 어색함을 씻어낸다.

저녁 예불을 드리러 대웅전에 들어섰다. 소년 같은 웃음과 소탈한 성품으로 예불 드리는 법을 가르쳐 주시는 스님과 금세 친해졌다. 흙으로 조소한 국내 최대의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불의 크기가 위압적이기보다는 스님으로 인해 집처럼 편안하다. 나라의 안녕과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무사귀환을 위해 조성되었다는 국보 1243호 대웅전에서 우리는 기도를 한다.

홑이불 같은 어둠이 송광사를 덮고 개구리들이 울어댈 무렵, 스님이 우리를 부르신다. 대웅전 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둘러앉아 차를 마신다. 만월에 가까운 달빛이 나뭇잎 사이로 밀려들고 때마침 뒷산에서 소쩍새가 운다. 못 다 푼 설움을 비워내기라도 하듯 처연하게 울어댄다. 저절로 몸이 낮아지는 순간이다.

스님의 말씀은 참 편안하다. 인품이나 수행의 깊이는 알 수 없지만 겸손한 대화법이 좋다. 법명을 여쭙자 그냥 `대웅전 스님`이라 부르시란다. 인연 맺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순간순간 찾아오는 인연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하루 네 번 `천일기도`를 하고 계시는 무성 스님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지친 기색은커녕 밝고 생동적인 모습이 숙연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마음을 닦고 수행만 할 수 있는 스님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생활에 허덕대느라 삶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할 때면 더욱 그랬다. 스님이 호탕하게 웃으신다.

“스님의 삶도 만만치 않아요. 깨닫지 못하면 큰 빚을 남기고 가는 거라 늘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돼요.”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냄새가 나고, 생선을 꿰었던 줄에서는 비린내가 난다는 말이 생각난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 내 영혼이 촉촉하게 젖어든다. 나는 타인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될까? 깜빡깜빡 비상등을 켜고 나를 점검한다.

마당을 지키던 거대한 피라미드형 연등 탑에 불이 들어왔다. 오색등이 송광사를 환하게 밝힌다. 저 진리의 빛 속에 난생처음으로 단 내 연등도 있다. 머리에만 머물러 있던 앎이 가슴으로 내려와 참나를 만나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묵묵히 듣기만 하던 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수도 없이 찾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며 나처럼 살아갈 것이다.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 예불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실핏줄처럼 생명을 불어넣는다. 딸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대웅전으로 따라나선다. 둘이서 말없이 푸른 어둠 속을 걷는다. 존재적 연결감이 주는 뿌듯함이 좋다. 소소한 마음들이 미풍처럼 서로의 가슴을 적셔 줄 때, 우리는 함께라는 걸 느낀다.

스님 일곱 분이 차례로 대웅전에 들어서며 시작되는 새벽 예불은 전율이 일만큼 엄숙하고 경건하다. 사찰의 새벽은 날마다 그렇게 열리고 있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각, 오늘은 내 영혼이 반짝반짝 윤이 날 것 같다. 예불이 끝나자 대웅전 스님이 함께 천수경을 읽으며 기도를 도와주신다. 스님이 선창하고 딸과 함께 후창한다.

나한전에서 염불소리가 들린다. 인적 없는 경내를 옅은 안개가 지나가고 기도 소리만 낭랑하다. 새벽 산사의 정취에 젖어 홀로 경내를 서성인다. 내 삶이 산사의 새벽처럼 순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침 공양을 하면서 어젯밤 대웅전 스님이 말없이 주신 팔찌의 출처를 알게 되었다. 여덟 개의 다른 색들이 조화를 이루는 팔찌, 그것은 주지 스님이 `달라이라마 평화의 기도`에 참석하시면서 티베트에서 가져온 성물이었다.

넉넉하고 온화해 보이시던 주지 스님, 토요일 하루는 아침공양을 할 수 있어 설렌다며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대웅전 스님, 늘 웃는 낯으로 종무소 일을 보는 이쁜 선규 님, 모두가 송광사를 밝히는 등불이다. 한층 밝아진 딸의 얼굴 위로 수행의 가장 큰 적은 게으름이라던 스님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조낭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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