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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포항이 지닌 무형자산을 지켜야

등록일 2015-05-11 02:01 게재일 2015-05-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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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홍 한국은행포항본부·부국장

2015년 포항은 KTX동해선의 개통, 연말경 포항-울산간 고속도로 일부 개통 등 눈에 보이는 이른바 유형자산의 확충에 시민들의 눈이 쏠리면서 이러한 개발사업들이 장기 부진에 빠진 지역경제에도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동안 지역 철강산업의 한축을 담당해온 현대제철의 철근 제조라인 매각설, 동국제강의 후판공장 폐쇄설 등이 대두되면서 지역경기의 앞날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이처럼 긍정·부정적 요소가 동시에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2015년은 포항의 입장에서 그만큼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문제는 역시 전자의 긍정적 측면이 지역경제에 파급되기까지는 장기간이 소요되며 효과 극대화를 위한 추가적인 노력이 없을 경우 기대와 달리 실망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당장 관련 공장의 근로자가 실직 내지는 다른 지역으로 이전배치될 경우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으로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당장 한 두 개의 기업들이 국내 생산체계의 개편 등으로 경영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경영전략에 따른 결과이고 이로 인한 실직 근로자의 지역내 소비 감소분이나 다른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발생하는 포항인구의 감소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직 근로자들 대부분이 은퇴 예정 연령층이라는 점이다. 포항의 경우 이들을 포함하여 이미 2010년부터 산업인력의 고령화로 인한 은퇴 러시가 개시되어 앞으로도 5년간은 이어질 전망이며 2015년은 그런 의미에서 포항도 산업인력 은퇴기간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이러한 대규모 은퇴 러시는 마치 일본의 베이비붐세대가 일거에 은퇴하기 시작하였던 2007년 당시와 유사하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산업인력의 집중적인 은퇴를 보다 심각하게 인식하고 `2007년 문제`라는 용어까지 만들며 해결책 마련에 고심한 바 있다. 이때 가장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선 곳은 제조업 분야였다. 일본의 제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중요기반의 하나는 IT분야와 같이 표준화된 부품의 단순 조립이 아니라 각기 다른 부품을 서로 미세 조정하여 블랙박스화된 하나의 새로운 부품으로 만드는 독보적인 기술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력의 원천은 바로 최신예 기계설비가 아니라 매뉴얼화할 수 없는 풍부한 현장경험과 이들의 미세한 손끝으로 조정되는 지식, 이른바 암묵지(Tacit Knowledge)를 지닌 은퇴예정의 숙련근로자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의 제조업 중 2007년 문제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곳은 화학, 일반기계, 철강 순이었다.

특히 일본의 철강업계는 2007년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품질경쟁력의 원천인 은퇴예정 숙련근로자들이 지닌 암묵지를 청년근로자에게 전수할 수 있는 시간확보를 위해 은퇴시기를 연장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다. 장기불황과 철강업계 내의 치열한 M&A 등 구조조정의 와중에서도 이들을 정년연장, 신입사원 교육훈련담당으로의 보직전환, 연구개발부서의 보조연구원 채용 등 수십 년간의 현장경험을 최대한 흡수, 승계하는데 주력하였다. 심지어 퇴직 후에도 한국, 중국 등 후발국으로의 기술유출을 억제하기 위해 퇴직자에 대한 사후관리에도 힘썼다.

포항의 2015년 문제를 다시 살펴보자. 포항은 지금 철도나 고속도로 등 유형자산에만 주목할 때가 아니다. 정작 소중한 무형자산인 포항철강업을 이끈 산업인력이 지닌 암묵지가 사장되는 것은 지역경제는 물론 국가경제에도 큰 손실임을 깨달아야 한다.

독일, 미국 등 선진국 철강기업이 지금도 성장 중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숙련근로자들의 손끝에서 나오는 암묵지가 한몫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포항경제의 경쟁력강화를 위해서는 당장 생산라인의 가동이 높지 않아 유휴인력이 생기더라도 중장기적인 시야에서 지금까지 많은 자원을 들여 양성한 지역의 무형자산을 최대한 잘 관리하고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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