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관단체에서 태극기가 게양되지 않은 곳에 모상으로 국기를 꽂아 놓았다. 정말 보기에도 좋았고 보는 이의 표정도 밝았으며 애국 애족의 감정이 가슴을 덮고 뜨거움을 느꼈다. 그날 서울에서 열린 삼일절 기념행사도 모처럼 숙연하게 느끼는 분위기 속에 한결 젖어들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나 불렀던 삼일절 노래는 생소함을 느낄만큼 오래됐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민국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이하 생략)” 가사에서 전해오는 짜릿함을 느끼며 하루종일 뿌듯한 분위기 속에 휴일을 보냈다.
기쁨 다음에 슬픔일까. 다음날 신문기사에 보도된 내용을 옮긴다면 초등학생들 가운데 우리나라 국가인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학생이 100명 중 절반도 안되며 애국가 1절을 암기하고 쓸 수 있는 학생도 40% 이하라 한다. 4절까지 다 부를 수 있는 학생은 얼마나 되는지…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린 세대가 국가에 대한 정체성은 모른다 하더라도 초·중·고등학교의 나라 사랑에 대한 교육이 이렇게 되고 만 것은 학생의 탓이 아니라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행사 때마다 개막전 애국가를 제창할 때 우리의 몸가짐은 과연 어떠했는가. 경건하고 엄숙한 자리에서 울리는 애국가에 대한 예절도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일본의 침략으로 식민화된 우리의 과거는 어떻게 생각하며 6·25라는 한국전쟁의 민족적 비극을 그들은 도대체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묻고 싶다. 나아가서 빼앗긴 역사유물과 위안부의 고통을 어떻게 설명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지 교사나 지도자급에 속한 기성세대가 깊이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세상에 무엇보다 국가가 먼저인 것을 어린 세대에게 어떻게 가르칠까 생각할수록 한심한 생각이 든다. 태극기를 밟기도 하는데.
/한강우(경주시 황성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