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시린 파란 하늘, 분홍 꽃물 들겠다

▲ 보성 초암산은 `철쭉 명산`으로 뒤늦게 소문나 최근 들어 전국에서 찾아오는 탐방객들로 붐빈다. 5월을 맞은 `천상의 정원`에는 만발한 꽃들로 철쭉바다를 이룬다.
▲ 보성 초암산은 `철쭉 명산`으로 뒤늦게 소문나 최근 들어 전국에서 찾아오는 탐방객들로 붐빈다. 5월을 맞은 `천상의 정원`에는 만발한 꽃들로 철쭉바다를 이룬다.

5월 말경이 되니 봄 등산이 끝나가는 시기다. 필자가 산행을 시작한 지 4년이 흐르는 동안 계절 산행을 따지고 보니 봄 산행이 가장 마음 편하게 다가선다. 산속에서 여름은 무더위로 숨이 탁 막히고, 겨울등산에서 매서운 바람을 만날 때에 매우 힘들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금화산·존제산으로도 불려
 
호젓한 산행길, 봄엔 천상의 정원
100만평 꽃능선 진분홍 불바다
정상 암봉·철쭉밭 빼어난 풍경

보성 일대 녹차밭도 유명

나머지 봄과 가을 중에서 그래도 봄철이 볼 것이 많다. 천지에서 움돋는 새싹들의 힘에 정기마저 묻어나고 꽃나무들의 신록에서 느껴지는 신선감은 기분을 새롭게 만들며 아름답게 산을 물들이며 뽐내는 꽃들의 향연에 오랫동안 마음이 울렁거리기도 한다.

산행하면서 꽃피는 봄철을 네 번이나 맞이했으니 전국 산 가운데 진달래나 철쭉꽃이 아름답게 피어난 명산들을 많이 다녀왔다. 얼마 전까지 온산을 뒤덮었던 진달래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철쭉꽃들이 한창 피어나는데 그것도 오래지않아 시들고 나면 이제 여름산이 되는 것이다.

철쭉꽃으로 유명한 산에서는 봄철 철쭉제를 지내는데, 산청 황매산철쭉제, 남원 지리산바래봉철쭉제, 영주 소백산철쭉제 등이 유명하다. 보성 초암산철쭉제도 전국 유명 철쭉제 중 한 곳인데, 올해 9회째를 맞고 있다.

이번에도 케이제이산악회를 따라 초암산을 갔는데, 오전 7시부터 시내 출발지에서 한 바퀴 돌아 최종 탑승지인 성서 죽전우방아파트 앞에서 산악회원을 태운 차는 고속도로를 잘도 달려와 오전 10시 50분경 산행 들머리가 있는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의 수남마을 수남 주차장에 도착했다.

보성 초암산 철쭉을 보러 산행길에 나섰지만 사실 철쭉꽃이 만개하는 5월에 보성의 볼거리는 차밭이다. 차밭은 보성군내 전역에 걸쳐 분포돼 있지만 보성 남쪽 회천면 일대에는 대한다원을 비롯한 큰 다원들이 여러 개가 모여 있어 매년 5월에는 보성다향제가 열린다.

22일에서 26일까지 한국차문화공원과 보성차밭 일원에서 열리는 올해 보성 다향제는 벌써 39회째다. 보성차밭 풍경은 미국 CNN 방송사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놀랍도록 아름다운 풍경 31선`에도 선정됐으니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그만큼 보성차밭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는 이야기다. 그건 그렇고 수남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철쭉꽃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산악회와 등산가들로 붐빈다. 차량들도 주차장에 빼곡히 채우고 있다.

초암산 등산코스는 수남등산로와 석호등산로가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수남주차장을 이용하면 편리한데 수남주차장을 들머리로 해 초암산, 철쭉봉, 광대코재, 무남이재를 거쳐 주월산, 방장산 코스로 경유할 경우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 철쭉봉 아래에서 등산객들이 철쭉꽃 향기에 취해 휴식하는 모습.
▲ 철쭉봉 아래에서 등산객들이 철쭉꽃 향기에 취해 휴식하는 모습.

단순하게 철쭉꽃만 보려면 철쭉봉 북쪽 임도로 이용해 차를 타고 철쭉밭 바로 밑까지 올라간 다음 정상 근처의 철쭉밭을 구경한 후 되내려오는 것인데 등산이라기 보다는 거의 관광에 가까운 방식의 탐방이 가능하다.

초암산 들머리는 여러 가닥으로 그 중 가장 일반적이고 이용자가 많은 코스는 겸백면 소재지에서 초암산 정상을 오가는 왕복코스로 약 6km에 4~5시간이 소요된다.

등산을 겸하려면 수남주차장에서 출발해 초암산, 철쭉봉에 올랐다가 광대코재, 무남이재로 해서 임도를 거쳐 수남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이용한다.

필자는 장비를 챙겨 차에서 내려서 바로 등산을 시작한다. 주차장에서 산을 오르는 산악회 일행을 따라 오르니 초입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완만하고 등산길이 편안하게 되어 있어 등산초보자들에게도 산 오르기가 딱 좋은 산으로 보인다.

언덕 위를 올라 조금 더 올라가니 다소 가파른 경사가 나타나고 그 위에서 조금 더 가니 전망대가 나타난다. 산 아래로 남해고속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반대편으로 보니 앞에 두 개의 산봉이 나타나는데 방장산과 주월산이다.

계속 발걸음을 옮겨 초암산 쪽으로 향한다. 철쭉꽃 핀 완만한 산길이다. 평상시 같았으면 이곳 등산이 조용해 호젓한 산길을 걷는 재미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철쭉꽃을 보러온 산행객들로 인해 붐비고 있고, 그래서 행보가 좀 느리다.

산행 들머리 수암 주차장에서 한 시간 정도 올라가니 원수남 삼거리에 도착했고, 바로 앞에 초암산 정상이 바로 보인다. 이정표를 보니 2km정도 거리를 온 것 같다.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조금 더 가니 초암산이다. 산에 올라 밑을 내려다보니 저 건너편 철쭉봉과 그 옆 광대코재까지 이어지는 산등성이와 평원이 연분홍 철쭉바다가 됐다.

초암산(576.3m)은 산 이름이 몇 개나 된다. `한국지명총람`에는 금화산으로 나와 있는데 초암산의 다른 이름이다. 또한 금화산은 존제산으로 불러지기도 했다. 옛 이름이 있지만 초암산이 유명해진 것은 철쭉꽃 군락지로 인해서다.

비교적 완만한 육산인 초암산은 최근 몇 년 사이 등산객들의 입소문에 의해 전국에 알려져 특히 봄철에 찾아오는 탐방객들이 많다.

매년 5월초 철쭉꽃철이 되면 초암산 정상에 서면 마치 커다란 접시에 철쭉꽃을 담아 놓은 것 같은 풍경이 찾아오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봄철이면 천상의 정원이 되는 초암산은 철쭉꽃이 진 뒤에는 호젓한 산행길이 매력이어서 산을 즐겨 찾는 전국의 산악인에게도 인기가 높다.

정상은 암봉과 넓디넓은 철쭉밭으로 이뤄져 있고, 그 주변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정상 바로 뒤편에 정상표지석이 서 있는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행렬 속에서 필자도 기다려 사진을 찍고서는 암봉 아래로 내려서서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철쭉 풍광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필자도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철쭉꽃들에 마음을 빼앗기며 5월의 하늘로 시심을 띄워본다.

“천상의 정원이라지요./ 산 위에 서보면/ 저 아래에는 온통/ 철쭉바다가 떠 있고/ 큰 접시 바다 위에는/ 만발한 꽃들이 여기저기에 피어/오도 가도 못한답니다.// 산 아래로/ 장엄하게 펼쳐지는/ 철쭉 꽃 장관들,/ 보성 땅, 초암산에는/ 연분홍 철쭉들이/ 바다를 이루는데 꼼짝없이/ 그 속에 갇혀 있답니다”(자작시`초암산 철쭉바다`전문)

초암산에서 하산해 원수남삼거리로 해서 철쭉봉을 향한다. 바로 보이는 철쭉봉까지는 철쭉터널이라고 할 만큼 철쭉군락지가 된 등성이는 많은 등산객로 붐비고 있다. 이정표상으로 밤골재삼거리까지는 1.1km에 30분 정도 소요되고, 다시 그 곳에서 철쭉봉까지는 10분 걸린다.

철쭉꽃들이 초암산 정상에서 철쭉봉, 광대코재까지 능선을 따라 화려하게 펼쳐지는 100만평의 철쭉능선은 철쭉의 향연으로 진분홍 불바다를 이루고 있으니 정말 장관인데, 그 가운데 초암산에서 내려와 철쭉봉까지 오르는 2km 남짓 이어진 철쭉꽃터널 부근이 백미다.

밤골 삼거리를 지나니 철쭉꽃은 조금 전 초암산 정상 부근에서 본 꽃들보다 더 색깔이 선명해보이고 싱싱하다. 필자는 길을 걷다말고 그 자리에 서서 등성이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철쭉봉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 절경에 취해 정말 여기로 잘 왔다는 생각을 해본다.

밤골재삼거리에서 10분쯤 걸어 철쭉봉 정상에 올랐다. 이곳 정상의 높이는 604.6m로 나타나 있는데, 먼저온 산행객들로 정상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잠시 둘러보고서는 하산해 아래 평원에서 꽃구경과 함께 상춘객 구경을 하면서 가지고온 음식으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때운다.

초암산 등산코스 중에서 철쭉꽃이 가장 화사하게 피어나 있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은 지나왔지만 전체 등산 코스의 거리로 치면 반 쯤 온 거리다. 남은 것은 광대코재로 해서 무남이재로 하여 임도를 타고 내려가서 수남 주차장으로 가면 일정이 모두 끝이 난다.

철쭉봉에서 광대코재 쪽 방향으로 걸어간다. 아직도 능선길 주변과 그 아래편에는 온통 평원을 분홍빛으로 수놓고 있는 철쭉꽃들로 아름다운 풍경들은 이어지고 있다. 산행하면서 두세시간 동안 계속 꽃 속을 헤매는 듯한 산행도 묘미가 있다.

2.3km나 되는 철쭉길을 걸어 광대코재에 도착했다. 저 멀리 산 아래를 보니 보성 득량만과 교벌판이 펼쳐지고 있다. 여기서부터 무넘이재를 이어 호남정맥이 이어지는 곳이다.

광대코재에서 무남이재까지는 1.6km 거리다. 하산하는 길은 다소 가파른데, 오래 걸어 피곤하다보니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면서 한참동안 내려서니 임도가 나타난다. 이제 임도를 따라 편안한 마음으로 하산할 수 있으니 안심이 된다.

무남이재에 당도해서 주월산 쪽으로 가지 않고 그 사이 길로 수남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길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임도 길가에는 곧게 자라 쭉쭉 뻗은 나무들이 이어져 있다. 한참 내려서서 걷다보니 계곡이 있고, 앞서 온 사람들이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쉬고 있다. 필자도 계곡에 내려서서 신발을 벗고 계곡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다.

계곡에서 쉬다가 다시 하산길을 이어가니 아스팔트길이 나오고, 산길이 아니라 다소 불편한 도로를 따라 수암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됐다. 일행을 만나 이야기하다 차에 먼저 올라 차가 출발하는 동안 초암산에서의 산행을 정리하며 생각에 잠긴다.

5월의 볕 좋은 하루, 철쭉꽃으로 유명해진 보성 초암산을 찾아 산정상과 그 옆 철쭉봉으로 이어지는 철쭉터널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철쭉꽃들의 향연을 보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인생을 살면서 오늘처럼 꽃밭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생각을 하는 것도 분명 축복이 아니겠으랴!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