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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조성’ 경북도청 신도시 10만 자족도시 ‘암울’

경북도가 2014년 새로운 천년을 열겠다고 야심차게 조성한 예천군 호명읍 경북도청 신도시가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기대했던 ‘10만 자족도시’의 모습은 아직 요원하다. 도청 신도시는 안동시와 예천군 일대 1만 966㎢(약 330만 평) 부지에 10만 명 인구 유입을 목표로 조성했다. 호명읍은 신도시 아파트 주거단지 덕분에 지난 6년간 매년 1800여 명의 인구가 증가하며 주거 기능은 어느 정도 활성화한 것처럼 보였다. 현재 호명읍 인구수는 지난해 12월 23일기준 2만963명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늘어난 인구만큼 도시의 활기가 넘치지는 않는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주말이면 상당수의 주민이 대구나 구미 등 인근 대도시로 빠져 나가고, 상권은 여전히 활력을 찾지 못해 비어 있는 상가가 많다는 지적이다. 호명읍의 1년간 소요예산은 24억6900만 원(소규모 주민숙원사업 12억3300만 원, 청사환경관리 2400만 원, 자치활동 지원 3억6200만 원, 지역복지환경조성 5억1600만 원, 행정운영3억3400만 원)이다. 주민 A씨(55)는 “도청이전 당시 자족도시를 만든다며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옮겼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일자리 문화·교육 인프라는 거의 없고 신도시는 그저 잠자고 세금만 내는 소비재가 됐다”고 말했다. 당초 신도시는 스탠포드 호텔 유치를 시작으로 물류센터, 의료산업, 레저·서비스 산업 등 다양한 성장 동력을 통해 자족 기능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기업 및 기관의 더딘 이전 속도는 신도시가 주거 기능에 치중된 베드타운으로 남게 되는 주된 원인 중 하나이다. 도시가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쾌적한 주거 환경과 체계적인 관리가 필수이지만, 신도시 내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된 곳 조차 조경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주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도시의 질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10년째 조성 중’이라고 하지만 도시의 ‘표류’를 넘어 ‘방치’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신도시가 이대로 ‘잠자는 도시’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 예천군 관계자는 ”도청과 산하기관 스마트 도시팀 등과 협의해 인구유입 및 기관유치 추진을 진행한다”고 했다. 또 도시과 관계자는 “내년부터 수목관리를 용역업체에 의뢰 관리할 계획을 세우겠다”고 했다. /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

문체부, 2021 관광플러스테크 참여기업 모집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오는 1월 26일 11시까지 ‘2026 관광플러스테크’에 참여할 기업을 모집한다. 관광플러스테크는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관광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도록 돕는 관광사업화 지원 프로그램이다. 이번 공모에는 국가연구개발사업(R&D) 참여기업 중 자사의 핵심기술을 통해 관광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거나 새로운 유형의 관광시장을 창출하고자 하는 중소기업(법인사업자)이라면 참여할 수 있다. 모집 분야는 △인공지능(AI) 활용(고객경험 혁신) △스마트모빌리티·항공·교통(이동성 및 접근성 제고) △핀테크(여행 편의성 및 결제 시스템 개선)△지속 가능한 관광(ESG 실천 및 지역 상생) 등 4개이며, 총 7개 기업을 선발할 예정이다. 선정된 기업에는 최대 2개년, 4억 원의 사업화 자금을 지원한다. 아울러 비즈니스모델 컨설팅, 대중견기업 오픈이노베이션 등 다양한 지원이 함께 제공된다. 공사는 오는 14일 오후 3시에 온라인설명회를 연다. 이번 설명회에서 관광플러스테크 사업 개요와 모집 분야, 선정 절차 등을 안내하며, 기존 참여기업의 사업 성과를 공유할 예정이다. 관광플러스테크 및 온라인 설명회 등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관광 산업포털 ‘투어라즈(touraz.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소연 관광기업육성팀장은 “관광플러스테크는 기술 역량을 보유한 기업이 관광산업으로 진입하고, 실제 사업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라며, “기술기업의 관광사업화를 통해 산업 간 융복합을 촉진하고, 관광산업 전반의 혁신과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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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넌 진리의 돌

김해 가락국 수로왕비릉은 따뜻한 햇살 아래 세월의 깊이를 머금은 채 고요한 기운을 품고 있다. 경내로 이어지는 길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능선을 따라 천천히 오른다. 그 길 끝자락 오른편에는 아담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파사각이다. 파사각 안에는 세월의 풍화를 고스란히 견딘 작은 돌탑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파사석탑이라 불리는 이 탑은 단순한 석조물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온 허왕후의 여정과 신앙, 그리고 진리가 응축된 상징물이다. 이 탑은 허왕후가 먼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야로 올 때 배에 싣고 왔다고 전해진다. 음력 5월, 어린 허왕후는 부모의 명을 받들어 머나먼 항해 길에 올랐다. 그러나 노여운 파도는 쉽사리 배의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허왕후의 아버지는 딸의 평안과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파사석탑을 배에 실어 보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탑을 싣자, 배는 균형을 되찾고 거친 파도를 가르며 순조롭게 항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탑은 ‘진풍탑’, 곧 바람과 파도를 잠재우는 탑으로도 불렸다. 인도 타밀 사회에는 자녀가 먼 길을 떠날 때 파사돌을 몸에 지니게 하는 풍습이 있다. 파사돌은 악을 물리치고 신의 가호를 불러온다고 믿어졌다. 때로는 가루로 빻아 의식이나 축제 때 두 눈썹 사이에 바르기도 했다. 이러한 신성과 염원의 돌이 허왕후와 함께 바다를 건너온 것이다. ‘파사’라는 이름은 범어에서 유래한 말로, 진리를 드러낸다는 뜻을 지닌다. 한자로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파사석탑은 단순히 이국에서 온 돌이 아니라, 왕비의 여정과 신앙, 그리고 진리를 상징하는 탑이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이 탑이 허왕후가 서역에서 가져왔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가야에 도착한 뒤 파사석탑은 한동안 보관되다가, 5세기 질지왕 대에 호계사로 옮겨졌다. 그러나 조선 고종 때 호계사가 폐사되면서 탑은 다시 방치될 위기에 놓였다. 이때 김해 부사 정현석이 나서 허왕후릉 곁으로 옮기게 했고, 오늘날 파사각에 안치되어 보호를 받게 되었다. 파사석탑은 원래 5층이었으나 현재는 6층으로 남아 있다. 이는 허왕후가 여분의 파사석을 가져왔고, 훗날 추가로 쌓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파손과 마멸이 심하지만, 측면에는 연화문 같은 문양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학술 조사 결과, 이 돌은 인도 아유타국 지방에서만 나는 돌이며, 구조 또한 인도 석굴사원의 양식과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약 이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거의 원형을 유지해 온 파사석탑은 단순한 전설의 유물이 아니라, 가야와 인도, 그리고 불교 문화 교류의 생생한 증거이다. 국가 지정 문화재로 승격되어 마땅한 가치를 지닌 유산이기도 하다. /김성문 시민기자

“묵향과 칼끝으로 여는 제2의 인생드라마”

수십 년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은행에서 딱딱한 숫자만 다루며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던 한 지점장이, 이제는 은은한 묵향과 나무의 결을 어루만지는 예술가로 변신해 지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봉사를 실천하고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사단법인 한국서각협회 하광원(73) 청도지부장이다. 하 지부장은 청도 각남면 출신으로 은행 지점장으로 퇴직하기까지 수도권에서만 40여 년간 잔뼈가 굵은 정통 ‘금융 맨’이다. 그의 고향 사랑은 어느 누구보다 눈물겹다. 현직에 있을 때도 매주 주말이면 서울에서 청도까지 고향을 찾아 선산을 관리하며 부모님이 남긴 집과 토지를 관리하곤 했다. 정년퇴직 후에 서울에서 함께한 모든 일들을 뒤로 하고 귀향하여 붓과 칼을 잡았다. 평소 손재주가 좋은 그는 현직에 있을 때도 고향 집을 본인이 직접 설계, 건축하였으며 서각 및 서예 분야 각종 국내 대회 및 세계 대회에 참여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귀향한 지 십여 년이 되다 보니 서예의 유려한 선과 서각의 깊은 입체감을 터득하고 인생의 참된 즐거움을 찾게 됐다고 웃음 짓는다. 평소 사람을 좋아하고 봉사를 즐겨하는 그의 품성은 제2의 인생을 개인의 취미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타고난 재주와 스스로 익힌 능력을 함께 나누길 결심하고 고향 집을 헐어 작품을 진열하는 갤러리로 리모델링하였다. 그의 고향 ‘청도 함박리’ 이름을 따 ‘청함갤러리’라 지었다. 그는 현재 ‘청함갤러리’와 청도향교 등에서 향서회, 복각회, 남서회, 청각회, 청서회 등 5개 단체 40여 명의 회원을 지도하며 서각의 불모지 청도 지역에서 서예·서각의 저변을 넓히는 데 앞장서고 있다. 평소 정이 많은 그는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사자성어 서예작품을 즉석에서 무료로 써서 증정하며 전 군민 가훈 써주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23일부터 1주일간 전시한 ‘청호락 전시회’는 지역 인사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히 개최되었다. ‘청호락’은 청도를 좋아하고 즐기자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가 십수 년간 지도한 문하생들이 작품을 내놓았다. 박성곤 청도군의회 부의장은 “사회적 성공을 마다하고 귀향하여 시간과 사재를 털어가며 지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 주는 하 지부장이 감사하다”고 전했다. 하 지부장은 “퇴직 후 삶을 고민하는 많은 분에게 서예와 서각이 제2의 인생을 꽃피우는 훌륭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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