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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대진표 확정···TK ‘부총리 vs 총리’ 격돌

6·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대구·경북(TK)을 포함한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대진표가 사실상 확정됐다. 이번 선거는 이재명 정부 집권 1년의 성적표이자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재편된 정치 구도가 맞붙는 첫 대규모 전국 단위 대결로 여야 모두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 안정론’과 함께 현역 단체장들을 ‘윤석열 키즈’로 규정하며 ‘지방정부 심판론’을 내세웠다. 반면 국민의힘은 입법·행정권을 장악한 집권 여당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며 ‘이재명 정부 심판론’으로 맞불을 놨다. 이번 선거 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꼽히는 대구는 ‘전직 부총리’와 ‘전직 총리’가 맞붙는 유례없는 대진표가 짜였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경제부총리를 지낸 추경호 의원을 공천했고,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 출신의 김부겸 후보를 내세웠다. 애초 국민의힘의 압승이 점쳐졌으나 김 전 총리의 가세로 박빙 구도가 형성되면서 TK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경북은 국민의힘 이철우 현 지사가 3선 고지 점령에 나선 가운데 민주당 오중기 후보가 세 번째 도전에 나서며 8년 만의 리턴매치가 성사됐다. 여야의 공천 기조는 극명하게 갈렸다. 민주당은 직전 선거에서 승리했던 현역 단체장 5명(경기, 광주, 전북, 전남, 제주)이 모두 경선에서 탈락하거나 컷오프되며 전원 물갈이됐다. 이 자리는 박찬대(인천), 위성곤(제주), 이원택(전북), 민형배(전남·광주통합) 등 자당 소속 현역 의원들이 채웠다. 반면 국민의힘은 현역 단체장이 있는 12곳 중 정계 은퇴를 선언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을 제외한 11곳의 현역을 그대로 공천하며 ‘현역 불패’ 기조를 유지했다. 오세훈(서울), 박형준(부산), 유정복(인천), 이장우(대전), 김두겸(울산), 최민호(세종), 김태흠(충남), 김영환(충북), 김진태(강원) 지사 등이 수성전에 나선다. 최대 승부처인 서울은 ‘3선 성동구청장’ 출신의 민주당 정원오 후보와 ‘4선 현역’ 오세훈 후보가 맞붙는다. 경기는 6선 추미애(민주당) 후보와 삼성전자 임원 출신 양향자(국민의힘) 후보가 격돌해 헌정사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 탄생 여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이번 지방선거는 전국 9개 시·도 14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동시에 치러져 ‘미니 총선’의 성격도 띠고 있다. 특히 대구 달성군을 제외한 13곳이 민주당 지역구였던 만큼, 재보선 결과에 따라 국회 의석 판도가 뒤바뀔 가능성이 커 여야 지도부의 화력도 집중될 전망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4일 부산 현장 최고위에서 “오만한 ‘윤 어게인 공천’을 부산 시민들께서 부마항쟁의 정신으로 심판해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주권자의 분노로 이재명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며 “국민의힘에 투표하는 것만이 ‘이재명 세금폭탄’을 막는 길”이라고 맹공했다. /고세리기자 ksr1@kbmaeil.com

84세 박지원 의원의 ‘이색적인 국회의장 선거운동’…“저를 보내주십시오”

22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출사표를 던진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민주당 동료의원들에게 페이스북을 통해 ‘저를 보내주십시오’라는 편지글을 보냈다. 국회의장을 하고 나면 정계를 은퇴하고 딸·사위·손자가 기다리는 가족에게 돌아가겠으니 마지막을 장식하고 떠나게 해달라는 호소문이다. 1942년생으로 올해 84세인 박 의원은 국회 최고령 의원이자 5선의 중진이다. 12·3 불법계엄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 박 의원이 우원식 의장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 출마를 말하고 다닐 때만 해도 주변에선 거의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의장을 하고 싶어하는 인물로 각인돼 있다. 의장 출마를 선언한 60대 조정식(6선)·김태년(5선) 의원에 뒤지지 않는 열정으로 의장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5일 밤늦게 민주당 의원들에게 “저 박지원을 보내달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간절하게 (의장을) 하고 싶다”면서 “국민과 나라, 이재명 대통령을 위해 마지막을 불사르겠다”고 호소했다. 박 의원은 “물리적으로 마지막 도전"이라며 "의원 여러분의 재선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마지막을 불사른 뒤 저를 기다리는 두 딸과 사위, 손자들 곁으로 돌아가겠다”며 지지를 당부했다. 더 이상 국회의원에 도전하기에는 많아 보이는 나이를 내세워 동료의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경쟁자인 두 후보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어 아직 다음 기회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작전이기도 하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부부를 끝까지 충성스럽게 모셨듯이 마지막 정치인생을 국민과 당원, 이재명 대통령께 충성을 다해 성공한 대통령이 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말해 친명 그룹에 호소하는 것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이라고 싸우면서 MB를 감옥보냈다”고 언급하면서 노무현을 좋아하는 진보 진영의 정서를 자극하기도 했다. /최정암기자 am4890@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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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단상)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들

신라사에는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인물이 많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들은 사서 속에 이름과 삶의 자취가 남겨진 인물이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는 보희, 문희, 정희 세 자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 조에 나오는 보희와 문희 자매의 일화는 이렇다. 어느 날 언니 보희가 꿈을 꾸었다. 선도산에 올라 소변을 보았더니 온 서라벌이 가득 찼다는 꿈이다. 왕후가 될 길몽으로 해석되었음에도 보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를 들은 동생 문희는 비단 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한 번의 교환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얼마 뒤 정월 오기일, 김유신은 김춘추와 축국을 하다가 일부러 그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와 여동생에게 꿰매게 했다. 처음에는 보희를 부르려 했으나 그녀가 사양하자, 문희가 나섰다. 단정히 차려입은 문희는 김춘추의 옷고름을 꿰맸고, 그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두게 된다. 이후 문희는 김춘추의 아이를 잉태한다. 김유신은 이 일을 빌미로 동생을 벌하겠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덕만공주가 남산으로 행차하는 때를 맞춰 뜰에 장작을 쌓고 불을 피우자, 공주는 연기의 까닭을 물었다. 곁에 있던 김춘추는 그 일이 자신과 관련된 것임을 깨닫고 급히 달려가 문희를 구했다. 마침내 문희는 김춘추와 혼례를 올렸다. 훗날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왕후, 문명왕후가 되어 7남 1녀를 두었다. 화랑세기에는 그 뒷이야기도 전한다. 꿈을 팔았던 보희는 문희가 왕후가 된 뒤 후회했으나 다른 사람과 혼인하지 않고 있다가 훗날 김춘추가 그녀를 후궁으로 맞으면서 ‘영창부인’이 된다. 보희도 두 아들을 두었다. 언니와 동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또 다른 여동생 정희도 신라 왕실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 그녀는 김달복과 혼인해 흠신, 흠운, 흠돌을 두었다. 딸 흠신은 보로전군에게 시집가 두 딸을 낳았고, 흠운은 요석공주의 첫 남편으로, 655년 백제 조천성을 공격하다 전사했다. 흠돌은 문무왕 때 장군으로 활약했으나 훗날 반란을 일으켜 목숨을 잃었다. 정희의 자녀들 역시 신라 정치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세 여동생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았다. 문희는 왕후가 되었고, 보희는 후궁이 되었으며, 정희는 자녀를 통해 신라 왕실과 혈연을 이었다. 이들의 삶은 개인의 운명을 넘어 신라 왕실과 국가사의 흐름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오늘 우리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심각한 현실 앞에 서 있다. 아이 울음소리가 줄어드는 시대에, 세 자매의 이야기는 가정과 후손, 그리고 사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가문과 나라를 생각하며 역사를 이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신라가 천년 왕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려운 시기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다. /김성문 시민기자

(가정의달 특집) 군 제대와 공무원 시험 합격

대한민국의 한 아들로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이제야 어머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크게 변해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도시와 해외로 떠났고,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군 복무 동안 어머님께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불효자였습니다. 죄송한 마음을 안고 집안일을 돕던 중, 공직자를 공개경쟁 시험으로 선발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침 영양군에서도 시험 공고가 나왔고, 저는 이것이 제 길이라 여겼습니다. 지역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삶이야말로 제가 가야 할 길이라 믿었습니다. 책을 구해 들고 마을 앞 솔밭 동산의 약천정에 올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남포등과 촛불을 밝히며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오직 한 길만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한 시간이었습니다. 합격자 발표 날, 면사무소 친구와 함께 숨죽여 기다리던 중 내무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명단을 확인하니 제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 어머님께 알렸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제 손을 꼭 잡으시며 “그렇게 애쓰더니 해냈구나.”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그날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어머님께 기쁨을 드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를 전하며 손을 꼭 잡았습니다. 임용을 앞두고 인연을 만나 청송 진보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첫딸이 태어나 기쁨이 더해졌습니다. 이후 대구시로 전출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의 곁을 떠나는 아쉬움 속에서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맡은 바 책임을 다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행정사무관 승진 시험에 합격하였고, 가장 먼저 어머님께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어 아버님 묘소에 가서도 “둘째 아들이 사무관이 되었습니다.” 하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건강은 점차 나빠졌습니다. 더 잘 모시지 못한 마음에 조급함이 커졌습니다. 1993년에는 아버님의 뜻을 기려 약천정 뒤뜰에 예술추모비를 세웠고, 어머님께서도 불편한 몸으로 그 자리를 함께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 84세의 나이로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야 효도를 해보려 했건만 너무도 빨리 떠나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집니다. 어머님을 보내드린 뒤 저는 마음을 다잡고 공직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감사과장과 도시정비과장, 수성구청 총무국장과 행정관리국장을 맡으며 책임을 다했습니다. 2003년에는 영양군 수비면 고향에 아버지의 뜻을 기리는 금경연화백예술기념관도 세웠습니다. 공직을 마친 뒤에는 지역의 권유로 구의회 의원에 출마하여 주민들의 지지로 당선되었고,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탰습니다. 그 모든 길 위에는 언제나 어머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했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시절 저를 키워주신 어머님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습니다. 부디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말씀드립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훗날 저도 어머님 곁으로 가게 된다면 지난날의 모든 이야기를 다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주님 곁에서 평안히 계시기를 빕니다. 무술년 오월 불효자 막내 태남 올림 /정리=방종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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