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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 맛 없이 싱싱함 가득한 가자미 미역국

필라테스하러 가서 강사님이 오늘은 스쿼트를 시켰다. 30분 만에 어지러워 주저앉고 말았다. 체력이 훅 떨어진 상태라 한 시간을 못 채우고 돌아왔다. 해외여행을 열흘 다녀온 뒤라 더 힘들었다. 비위가 약하고 입이 짧아 강행군인 패키지여행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못 하고 돌아다녔다. 낮엔 과자로 저녁에 숙소에서 컵라면으로 버텼다. 점심 약속으로 샐러드를 먹기로 했는데, 급히 장소를 바꾸자고 톡을 남겼다. 몸보신으로 소화가 잘되는 미역국을 먹자고. 마침, 우리 집 가까이 맛집이 있었다. 약속한 12시 30분이 되자 고을국수방은 빈자리가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이 마지막 남은 한 테이블을 차지했다. 사장님, 미역국 두 개요! 국수방이라는 이름에 맞게 국수 종류는 참가자미 회국수, 백합조개칼국수, 계절 별미로 콩국수와 전복죽도 있다. 다 맛있지만, 이 집은 가자미찜과 가자미 미역국이 단연 압권이다. 새벽 시장에서 싱싱한 가자미를 사 와서 손질한 가자미를 사용하니 비린 맛 하나 없이 시원함만 가득하다. 큰 대접에 푸른 바다를 가득 담아 손님상에 내온다. 호록호록 떠먹다 보니 몸속 가득 뜨끈한 기운이 퍼졌다. 필라테스하다 핑 돌던 어지럼증이 싹 달아났다. 안동이 고향인 나는 미역국을 끓일 때 넣는 생선은 한 가지뿐이다. 북어. 명태는 생선 중에 그나마 덜 비리지만 그 비린 맛조차 말리며 다 날려버리고 햇살과 협업한 감칠맛만 푸석한 몸속에 간직한 북어와 불린 미역을 달달 볶으면 뽀얀 국이 된다. 이런 초딩 입맛은 결혼 후 어머님이 끓여주신 가자미 미역국을 맛보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신혼 초, 그때는 토요일에 오전 근무를 했다. 남편이 퇴근할 무렵 1박 2일의 짐을 미리 싸놓고 기다렸다가 시댁으로 향했다. 일요일 새벽 어머님은 아들을 깨워 양포항으로 나갔다. 멸치가 싱싱한 날은 그걸로 젓갈을 담고, 홀띠기를 만나면 밥식해를 만드셨다. 그러다 가자미가 눈에 들어온 날에는 미역국을 끓이셨다. 어느 날엔 삶은 가자미를 소쿠리로 살살 흔들어가며 뼈와 살을 분리하는 방법을 내게 알려주셨다. 어머니는 잔가시 없이 잘 걸렀는데 내가 하면 꼭 가시가 목에 걸렸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정육점에서 끊어 온 쇠고기는 이미 손질이 다 된 상태라 참기름에 볶기만 하면 되지만, 가자미는 살아서 펄떡거리니 까다로운 재료다. 일단 어떤 놈이 싱싱한 것인지조차 모르니 20년 넘게 옆에서 보기만 하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금도 가자미 미역국 만들기는 여전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래서 몸이 허할 때나 어머님의 손맛이 그리울 때면 고을국수방을 찾는다. 이곳은 밑반찬이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제철 재료로 만든 것들이 나온다. 손이 많이 가는 나물 위주의 찬이라 더 좋다. 들에서 나는 시금치, 마늘쫑, 콩나물무침과 바다에서 건진 미역, 다시마무침, 멸치볶음이 함께다. 특히 멸치볶음은 눅눅하지 않고 바삭해 한 번 더 달라고 해서 먹는다. 김치와 물김치, 그리고 봄동물김치가 이 집 시그니처 반찬이다. 봄동 한 장을 밥에 올려서 강된장이나 젓갈을 올려 먹으면 공기밥은 무조건 추가다. 물론 미역국만으로도 충분한 곳이니 반찬은 덤이다. 실내에 6개의 테이블뿐이라 조금만 늦으면 웨이팅은 필수다. 테이블이 비자마자 다른 손님이 와서 앉는다. 미역국은 통에 담아 팔기도 하는데 전날 미리 전화하거나, 일찍 가야지 가능하다. 곧 날씨가 따뜻해지니 가자미회국수와 가자미찜을 먹으러 가자고 친구랑 약속했다. 주차장은 따로 없어서 가게 앞 골목길에 눈치껏 해야 한다. /김순희 시민기자

봉화 천년고찰의 천년을 다져온 숲길에서 만나는 봄 내음

겨울이 꼬리를 사리지 못하고 미루적거려도 어느새 바람결의 매운맛은 풀이 죽어 한결 부드러워졌고, 양지쪽의 따사로움에 정겨운 봉화 천년고찰의 숲길의 솔 내음은 완연한 봄이다. 겨울에 묻혀 시간이 멈춘 고즈넉함 속에서 천년 세월의 역사와 함께한 산사의 숲길을 향긋한 봄 내음과 또랑또랑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걸어보자. 며칠 전 태백산은 눈이 내려 설산처럼, 봉우리에는 마지막 겨울 풍경을 선사하듯 시선을 끌고 있다. 한때 국내 3대 사찰이었던 각화사, 백두대간 능선으로 석양이 아름다운 문수산 축서사, 수려한 청량산이 품은 풍광이 아름다운 청량사, 계곡 물소리 은은한 불교계의 성지 비룡산의 홍제사 등 천년의 고요가 흐르는 고찰에는 고찰과 함께한 천년의 숲, 천년을 다져온 길이 있다. 축서사는 천년 역사의 심산 고찰로, 영주 부석사의 ‘모절’ 또는 ‘큰집’으로 불린다. 신라 문무왕 13년(673년), 의상대사가 봉화 물야면 북지리의 지림사에서 빛을 보고 이곳에 절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소백산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축서사는 봉화 8경 중 제7경으로 꼽힐 만큼 황홀한 석양을 자랑한다.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공기,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절집의 정취는 자연이 빚은 예술 작품 같다. 탁 트인 전망과 고요한 숲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탑과 절집이 경관의 깊이를 더한다. 각화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태백산 사고의 수호 사찰로, 국내 3대 사찰 중 하나로 800여 명의 스님이 수도한 한국 불교의 대표 수행 도량이다. 신라 원효대사가 686년 창건했으며, 태백산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울창한 산림 속에 위치한 각화사는 정교하게 쌓인 석축과 30계단 위에 세워진 월영루가 특징이다. 월영루를 지나면 삼층석탑이 있는 요사채 마당이 나타나며, 산새 소리와 함께 고요한 분위기가 감돈다. 향긋한 봄 내음과 유구한 역사가 어우러진 숲길은 방문객에게 평온함을 선사한다. 청량사 가는 길은 입석에서 청량사 선학정으로 이어지는 2.3km의 최단 코스로,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가벼운 산책길이다. 숲속의 외진 길은 낭만을 더하고, 굽이도는 고갯마루에서는 먼 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굴참나무와 노송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소나무에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송진 채취 흔적이 남아 있어 역사적 아픔을 상기시킨다. 청량사 가는 길의 우측 오르막길에는 금탑봉 아래 응진전과 그 위쪽에 신라 명필 김생이 10년간 서예를 연마한 김생굴·폭포가 있다. 순탄한 산길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 좋으며, 산수의 아름다움을 즐기다 보면 청량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청량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본래 이름은 연대사였으며 27개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홍제사와 도솔암은 한국 불교계를 빛낸 선승들이 수도한 심산유곡의 고요함 속에 자리한다. 홍제사는 신라 진평왕 시기 자장율사 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공신 사명대사에게 선조가 내린 ‘홍제존자’ 호에서 이름을 따왔다. 소박한 법당과 금강송 송림이 에워싼 고즈넉한 풍경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부속 암자 도솔암은 만공스님, 성철스님 등 대종사들이 수행한 장소로 유명하다. 낡은 모습이지만 깊은 역사를 간직한 채 고요한 정적을 품고 있다. 천년 고찰의 고요함부터 탁 트인 산봉우리의 웅장함, 그리고 단순해서 여유까지 생기는 선승들의 수도처 홍제사의 경내를 거닐면 절집을 감싸는 솔 내음과 바람의 소리가 어우러져 명상의 순간을 만들어준다. 사계절마다 다른 풍경이 사찰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며 고요한 산사의 풍경을 수놓는다. 느긋한 여유로움이 가득한 호젓한 봉화 천년고찰 산사길에서 봄을 시작하면 어떨까? /류중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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