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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5월 1일부터 고유가 피해지원금 주유소 사용처 전면 확대

대구시가 고유가로 인한 시민 부담을 덜기 위해 피해지원금 사용처를 대폭 확대했다. 시는 범정부 태스크포스(TF)의 결정에 따라 1일부터 연 매출액과 관계없이 모든 주유소에서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연 매출액 30억 원 이하 소상공인 매장과 대구사랑상품권 가맹점으로 사용처가 제한됐으나, 이번 조치로 주유소에 한해 매출 규모 제한이 전면 해제됐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보다 자유롭게 유류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신용·체크카드로 지원금을 받은 경우, 1일부터 주소지 관할 지자체 내 주유소에서 사용할 수 있다. 대구사랑상품권이나 대구로페이카드로 지급받은 경우 역시 기존 가맹 주유소와 한시적으로 추가 등록된 주유소에서 동일하게 사용 가능하다. 다만 일부 주유소의 경우 인근 대형매장과 사업자등록번호 및 결제 단말기를 공유하고 있어 사용이 제한될 수 있다. 시는 이러한 사례에 대해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고 안내했다. 이번 조치는 한시적으로 시행되며, 사용 기한 종료일인 8월 31일 이후인 9월 1일부터는 다시 연 매출액 30억 원을 초과하는 주유소에서는 대구로페이 사용이 제한된다. 박기환 대구시 경제국장은 “주유소 사용처 제한 해제를 통해 시민들의 유류비 부담을 완화하고, 지원금 사용 편의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시민들이 불편 없이 지원금을 신청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는 1차 신청 4일차인 지난 4월 30일 오후 2시 기준, 1차 지급 대상자 18만 9786명 중 68.3%에 해당하는 12만 9637명에게 지원금을 지급했다. 1차 대상자가 5월 8일까지 신청하지 못할 경우, 5월 18일부터 시작되는 2차 신청 기간을 통해 다시 신청할 수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이 대통령 “일부 조직노동자, 과도한 요구하면 다른 노동자 피해”

이재명 대통령이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일부 조직노동자들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 부당한 요구를 해서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면 해당 노조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사측은 노동자를 기업운영의 소중한 동반자로 대우해야 하며, 노동자와 노조도 책임 의식을 함께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삼성전자 노조가 최근 영업이익의 15%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노동자 간 연대와 사회적 책임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의 이 발언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인공지능(AI) 대전환으로 노동과 산업현장이 근본적 변화에 노출되는데, 이런 중차대한 도전을 이겨내려면 상생과 협력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 상호 간에도 연대 의식을 발휘해주면 좋겠다“며 “‘나만 살자‘가 아니고, 노동자 모두가 또는 모든 국민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책임 의식과 연대 의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동시에 이 대통령은 “당연히 사용자 역시 노동자에 대해 같은 생각(책임 의식과 연대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삼성 노조에 관한 언급인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특정 기업과 관련된 사안을 논의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국민 모두의 공생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원칙적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노동절인 5월1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노동자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기념식을 연다. 청와대가 노동절 기념식을 개최하는 것도, 양대 노총이 노동절 행사를 함께하는 것도 처음이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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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일군 사람들···필리핀 고산족의 다랑논

필리핀의 전통 다랑논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항공편마저 불안정한 시기지만 다행히 예정대로 출발한다는 소식에 인천공항으로 향한다. 새벽 1시 클락 공항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루손 섬 코르디예라 산맥 깊숙이 자리한 작은 마을 사가다를 향해 다시 12시간의 여정을 이어간다. 구불구불 험준한 산길을 끝없이 오르자 어둠 속 산골 마을에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 더운 나라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밤공기가 차고 맑다. 긴 여정의 피로감이 한순간에 씻기는 기분이다. 이튿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통 계단식 논이 보이는 바나우에 전망대를 찾는다.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펼쳐진 다랑논은 그 자체로 장엄하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미가 시야를 압도한다. 바요마을, 말리꽁 등 해발 1600미터를 넘나드는 깊은 산골 곳곳에 자리한 끝없이 이어지는 다랑논들. 삶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끈질긴 노력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이곳의 다랑논은 단순한 농업 공간이 아니다. 옛날 이푸가오족은 외부의 위협을 피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에 터전을 잡고, 자연의 물길을 이용해 논을 일구며 정착한다. 이후 다른 부족들이 이 기술을 배우며 산속으로 들어오자 물을 둘러싼 또 다른 갈등이 생겨난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기에 부족 간 적개심을 품을 만큼 충돌이 격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이들은 공동체를 지키며 고유한 농경문화를 지켜 왔다. 지금도 이곳의 농사는 자연의 순환에 의존하는 전통 방식을 따른다. 다슬기 같은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며 해충을 억제하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손으로 모를 심고, 산에서 흘러든 물을 의지해 벼를 키운다. 이들에게 계단식 논은 단순한 농지가 아니라 삶의 뿌리이자 생명 그 자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와~!’ 탄성이 절로 난다. 한쪽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원주민이 관광객과 사진을 찍으며 소소한 수입을 얻고 있다. 고산족 풍의 상점에서 손님을 맞는 아기 띠 두른 소녀. 품안의 아기를 가리키자 “시스터”란다. 눈빛이 순박하다. 힘겨운 농사일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한 수입일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을 단순히 경제적 기준으로만 판단하기는 어렵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을 따라 자리 잡은 집들. 뒷마당은 아찔한 절벽이다. 견고해 보이지 않는 집들도 적지 않아, 보는 이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일상은 이어진다. 마을이 생겨나고 시장도 열린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과 행복을 만들어간다. 계단식 논은 험준한 지형 덕분에 식민지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시로 떠나는 인구가 늘면서 이 소중한 유산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사가다에 거주 중인 한국인 지인의 소개로 현지 시장의 저녁 초대를 받는다. 그들은 자녀가 한국에서 공부하기를 원하고 있었고, 한류의 영향이 이 깊은 산골까지 스며들었음을 실감한다. 물을 머금고, 바람을 견디며, 오랜 시간을 품어온 다랑논. 척박한 환경을 견뎌 낸 그들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그 여운을 안고 우리는 다시 또 다른 풍경을 향해 길을 나섰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두류공원, 시간의 결을 밟다

지난 25일 오후 2시, 답사학교 북성로대학의 대구 두류공원 답사가 있었다. 올해 첫 일정에 설레는 마음으로 모임 장소인 두류도서관에 들어섰다. 작년 10월 달성습지 답사 이후 오랜만에 마주한 반가운 얼굴들, 새로 합류한 이들과 기존 회원들의 짧은 인사가 오가며 답사는 시작되었다. 두류도서관 1층에 자리한 ‘범사 이상희 문고’는 교수님의 설명으로 대신했다. 이상희 전 대구시장이 기증한 7만2000여 권의 장서 가운데는 한국에 단 세 세트뿐이라는 ‘루브르박물관일서’와 1910년대 초반 신식 활판 인쇄기로 찍어낸 ‘춘향전’과 ‘심청전’ 등 ‘딱지본’ 소설 등 쉬이 볼 수 없는 귀한 도서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도서관 앞뜰에서는 1983년 무장 간첩이 대구 미문화원에 설치한 폭발물을 신고했다가 현장에서 폭발에 휩쓸려 숨진 고(故) 허병철 군의 추모비 앞에서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이어서 새롭게 정비되어 시민들의 쉼터로 재탄생한 2·28 자유광장으로 향했다. 계단을 통해 3층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공원은 아래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선사했다. 83 타워가 솟은 이랜드 쪽이 두류산이고, 문화예술회관 방향이 금봉산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저마다 간직해온 공원에서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어 나눴다. 2·28 기념탑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졌다. 명덕네거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탑이라는 설명과 함께, 1960년 2월 28일 대구 고등학생들의 외침이 다시 소환되었다. 그 외침이 마산 3·15 의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흐름을 되짚었다. 탑 뒤쪽도 찬찬히 살펴보다가 유치환의 비문을 읽었다. 그동안 스쳐 지나쳤던 이곳이 대구 정신의 뿌리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길 건너 인물 동산에서는 대구를 빛낸 근대 인물들의 흔적을 만났다. 백기만, 이장희, 이상화, 현진건의 문학비를 살펴보며 근대 문인들의 숨결을 느꼈다. 마침 이상화와 현진건 선생의 83주기 추념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시집 한 권 남기지 못한 고월 이장희와 상화 시인이 친구 백기만의 노력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는 대목에서 우정의 깊이를 가늠해 보았다. 화가 이인성의 인물상을 거쳐 대구사범학생독립운동 기념탑도 둘러보았다. 뜨거운 한여름 같은 열기를 식히려 카페에서 잠시 차를 마신 후, 우리는 다시 신록이 우거진 길을 지나 코오롱 야외음악당의 축제 열기 속으로 들어갔다. ‘2026 파워풀 K-트로트 페스티벌’의 환호성과 4월의 신록에 취한 사람들의 표정이 한데 어우러져 공원은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어느덧 성당못에 다다르니 40여 년 전 벤치에 앉아 나눴던 젊은 날의 기억이 잔잔한 물결처럼 밀려왔다. 연못 주변은 이제 어르신들의 공간이 됐지만, 연둣빛 나뭇잎과 코끝을 간질이는 꽃향기는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공간은 변해도 감각은 남아서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안병근 올림픽기념 유도관’ 앞에 섰다. 한국 유도의 역사를 담은 이곳은 평소에는 체육 공간이지만, 유사시에는 추모의 장소로도 쓰인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답사는 다시 2·28 자유광장 뒤편으로 돌아오며 마무리됐다. 이번 두류공원 답사는 공간 속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기억을 따라 걷는 여정이었다. 대구의 중심에 이토록 넓고 귀한 공원이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 시간이었다. 이번에 미처 가보지 대구대표도시숲과 금봉산 오솔길은 조만간 홀로 찾아 고요히 마주하며 공원의 가치를 다시금 음미해 보고 싶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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