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에 타는 산·그리움으로 춤추는 바다 `환상적`

▲ 섬의 이름풀이가 `알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섬`이라는 뜻의 욕지도. 4월이면 그 섬엔 온통 봄꽃들이 만발해 찾는 나그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환상의 섬이다.
▲ 섬의 이름풀이가 `알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섬`이라는 뜻의 욕지도. 4월이면 그 섬엔 온통 봄꽃들이 만발해 찾는 나그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환상의 섬이다.

지난주는 전국의 산이나 관광지에서 봄꽃 축제가 열리고 벚꽃 개화가 최절정을 이뤘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동안 2년이 넘게 전국의 산을 타며 등산해온지라 봄이 타는 이때의 풍경은 전국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을 황홀하게 만든다.

특히 이름난 유명 명소나 설령 유명한 곳이 아니라 하더라도 호젓한 산길을 걷노라면 그 도중에서 만나는 봄의 향연은 축제와 같다.

바람이 불 때 살랑거리는 꽃가지들의 율동과 혹은 작은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꽃들의 낙화를 보면 누구라도 운치에 겨워 마음속의 떠오르는 감흥으로써 시인이 아닌 사람들도 저절로 시인이 되는 게 봄이 주는 특권이기도 하다.

비단 봄꽃만이 아니다. 산행을 가는 관광버스를 타고 가면서 전국의 산하를 보고, 도착해서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접하게 되는 많은 사물들과의 만남, 하나하나에도 우리가 평소에 떠올리지 못하는 의미가 있다.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봄날의 야외 풍경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감정에 메마르고 계산적인 사람에게도 그 사람의 마음에 젖어드는 만족감을 안겨다줄 것이다. 필자가 겪는 일상의 치열함에서 벗어나 주말마다 떠나는 산행의 기쁨을 알기에 자연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욕지도, 천황보 들머리 사찰·저수지 주변 봄 내음 `물씬`
연화도, 용머리·해수관음상 등 수려한 해안절경 자랑


이번에는 KJ산악회에서 통영의 욕지도를 간다기에 따라나섰다. 지난달 두 번이나 다녀본 섬 산의 등산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통영 사량도<본지 3월7일자 보도>와 거제 망산<본지 3월28일자 보도>에서 느낀 봄이 무르익은 섬 산을 다시한번 올라보고 싶어서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욕지도의 산에 올라 등산을 하고 또 인근에 있는 연화도에서도 3시간 가량 산에 올라 명승지를 조망할 수 있으니 봄날에 호젓한 곳에서 대해를 바라보는 여행의 묘미, 아니 스스로 노력해 기회를 얻는 자만이 누리는 계절의 특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산을 떠나는 날, 예전에 하던 일상대로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해 오전 5시40분경에 약속장소인 범어네거리 지성학원 앞으로 갔다. 벌써 나온 사람들이 많다. 시간을 지켜 출발한 버스는 오전 6시30분경 성서 홈플러스 앞에서 등산 일행들을 다 태우고서는 바로 고속도로에 오른다.

가는 도중 KJ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서는 차량은 남해 통영까지 줄달음질친다. 통영 삼덕항에 있는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해서 기다리다가 9시경 욕지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싣고 난 뒤에 등산 일정을 떠올려본다.

봄빛이 너울거리는 파도를 타고 10시 가까이 되자 섬이 나타나고 천황봉이 보인다. 배가 욕지도에 도착하자 일행들은 배에서 내려 등산도구를 챙기고 간단히 준비운동을 한 뒤에 등산로 입구로 향한다. 발걸음이 가볍다.

욕지도는 봄과 여름철에 인기를 끌고 있는 남해안의 섬이다. 여기엔 2천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인근의 9개 유인도와 30개의 무인도가 있는 욕지면의 주된 섬이다.

예전에는 사슴이 많이 산다고 해서 녹도라 불린 욕지도의 이름 전래가 재밌다. 100여 년 전 한 노승이 시자승을 데리고 연화도 상봉에 올랐는데, 시자승이 도(道)에 대해 묻자 `욕지도 관세존도(欲知島觀世尊島)`라고 답하며 이 섬을 가리킨 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욕지도 등산은 천황산이다. 그리고나서 이근에 있는 연화도로 가서 다시 산행을 하게 되는데, 천황산은 해발 392m 높이로 욕지도에서는 가장 높다.

▲ 욕지도와 연화도 사이의 인공어장.
▲ 욕지도와 연화도 사이의 인공어장.

해안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지만 정상적인 등산로를 이용하면 육지의 산에 비해서는 매우 낮고 산세도 가파르지 않아 편한 마음으로 등산이 가능한 곳이다.

욕지면사무소를 지나 에스오일 주유소 옆길이 천황보 등산의 들머리다. 사찰을 지나 저수지를 지나면 등산로 입구가 나타나고 길가엔 봄 내음이 물씬 풍겨난다.

작은 등산길을 헤치고 이정표 방향을 따라 계속 걸으니 대기봉에 올랐다. 섬에서는 두 번째 높은 봉우리로 높이가 350m에 이른다. 포구와 마을들이 보이고 저 멀리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이 올망졸망 떠 있다.

대기봉에 올라 조망을 잠시 살펴보다가 다음 코스인 천황봉 쪽으로 향한다. 봄 날씨가 화창해 섬 산등성이를 걷는 기분이 시원한 바닷바람을 맡는 것처럼 상쾌하다. 천황산 정상은 통제가 돼 올라가지 못한다.

욕지도와 연화도 사이의 인공어장도 한폭의 그림이다. 위쪽 꼭대기 바로 밑에 세워진 안내도를 보면서 욕지도의 내력을 살핀다. 조선조 숙종 때 제65대 통제사인 이세선이 이곳에 진영을 설치하기 위해 현지 답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새긴 암각문이 있는데, 많은 세월이 흐른 뒤라 자취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하산길에 논골을 거쳐 내려왔는데 산행을 주최한 KJ산악회에서 3시간의 자유시간을 주었는데 비교적 넉넉한 시간이다. 다시 산을 내려와 선착장으로 향한다.

다음코스는 인근에 있는 섬 연화도를 탐방하는 일이다. 연화도까지는 20분 거리인데, 1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연화도 선착장에 내렸다.

연화도는 섬 북쪽에서 볼 때에 섬 생김새가 한 떨기 연꽃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연화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섬이지만 수려한 해안 절경이 빼어난 곳으로 통영 8경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선착장에 도착해 선착장 풍경 이것저것을 보고 산에 오르려고 준비를 하는 시간에 뜻밖의 귀한 손님들을 낯선 섬에서 만났으니 반갑기 그지없다.

평소에 필자가 아끼고 사랑하는 고향 후배들이다. 그들이 대구에 살면서 산을 좋아하는 영덕군 출신으로 화림산악회를 만들고 전국의 산들을 등반하는데, 그 소식은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한번도 그들과 합류를 하지 못했으니 미안스럽기도 하다.

한 후배가 “형님이 경북매일에 산행기를 연재하는 것을 쭉 보고 있는데 고향 사람들로 구성된 화림산악회에 대해 그렇게 무관심할 수 있느냐”는 항의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할 말이 없어 미안하게 됐다고 하면서 다음부터는 매달 첫 주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화림산악회와 동행하겠노라 약속했다.

오후 3시 배로 화림산악회원들이 통영으로 간다기에 필자는 가까운 산부터 먼저 한 바퀴 돌고 다시 시간에 맞춰 선착장으로 내려와서 배가 떠나기까지 후배들과 이런저런 말들을 주고받았다. 대구나 가까운 산에서도 못 만났는데 섬에서 만나다니 끈질긴 인연인가보다.

▲ KJ산악회원들이 욕지도의 산에 올라 등산을 하고 있다.
▲ KJ산악회원들이 욕지도의 산에 올라 등산을 하고 있다.

영해 후배들을 떠나보내고서 다시 산에 오른다. 정상으로 오르는 바윗길에 출렁다리가 있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재미를 보태준다. 다리를 건너서 정상에 오르며 보는 풍경들은 해변가의 수려한 기암절벽들이다.

이윽고 연화봉 정상에 도착했다. 섬이 적고 연화봉이 210m에 불과해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지만 오르는 길목의 출렁다리나 기암괴석 조망들이 또한 신비감에 빠지게 한다. 연화봉 정상에 오르니 암반위에 바위로 새긴 `환상의 섬 연화도`란 표지가 있다. 그곳에서 바다를 보니 시간대와 방향이 달라서 그런지 욕지도에서 보는 조망과 또 다른 표지석처럼 환상적이다.

가까이 또는 멀리에 섬들이 떠 있는데 안내판을 보면서 섬 이름을 보니 대덕도, 어우도, 매물도, 등대섬 등이다. 남해안이 다도해를 이루고 있으니 보이는 것이 크고 작은 섬이다.

연화도의 자랑은 바위가 해안선과 길게 맞닿고 있는 용머리해안과 해수관음상이다. 우리나라에서 해수관음상이 있는 곳은 세 곳인데, 강릉 낙산사와 남해 보리암과 이곳 연화도이다.

거대한 해수관음상은 앞면이 바다이고 뒷면은 산, 옆쪽은 사찰을 향하고 있으며 이 섬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며 볼거리도 제공해준다. 해수관음상을 마주하면서 정제한 마음으로 소원을 빈다.

또 하난 연화도의 자랑은 저 밑으로 보이는 용머리다. 바위 무더기의 그 형상이 마치 꿈틀거리는 용과 같고 생김새가 용머리를 닮았다.

정상에서 봄날의 섬 풍경을 마음껏 마음에 담는다. 선착장에서 배가 떠나는 시간이 오후 5시라 아직 시간도 남아있고 해서 상춘객의 입장이 되어 봄의 정취에 한없이 빠져들며 시심에 취해보기도 한다.

“낮게 떠 있으면서/ 섬의 이름풀이가/ 알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섬./ 그 섬에는 봄꽃들이 만발해/ 찾는 나그네의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그 섬이 바로 욕지도다.// 따뜻한 봄날/ 섬 산에 올라 해안의/ 수려한 절경을 보며/ 호젓이 산길 걷노라면/ 바람에 마음을 열고/ 푸른 해원만큼 넓어지는 섬/ 그 섬엔 봄빛이 불탄다”(자작시`봄날, 욕지도의 오후`전문)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다시 하산 길을 내려와 보덕암에 들렸다. 섬의 산사라서 그런지 고요하다. 작은 사찰에서 평소 필자가 갖는 불자로서의 공경함을 바친 뒤 조용히 물러나서는 발걸음을 옮겨 연화도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KJ산악회가 마련한 봄이 타는 주말, 환상의 두 개 섬 탐방을 잘 마쳤으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 게다가 외딴 섬에서 고향후배들을 만났으니 반가움이 더한 산행이다. 등산 일정에서 몸이 피곤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분이 오히려 상쾌해지는 것은 자연이 주는 신비함이다.

오후 4시45분경, 통영으로 가는 배에 올라 갑판위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욕지도와 연화도를 바라본다. 푸른 물결을 가르며 힘차게 항행하는 배에서 봄날 하루, 섬산에서 보낸 행복했던 시간들을 다시금 그려본다. 잘 있거라, 욕지도여! 비경을 선사해준 연화도여! 정말 고맙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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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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