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백두대간의 깊은 맛 그대로 간직하다

▲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가 김천 황악산에서 힘차게 뻗어 올랐으니 그 정상 비로봉(1천111m)은 `일사천리`의 기운을 안고 있어 산악인들이 새해에 즐겨 찾는 산이다.
▲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가 김천 황악산에서 힘차게 뻗어 올랐으니 그 정상 비로봉(1천111m)은 `일사천리`의 기운을 안고 있어 산악인들이 새해에 즐겨 찾는 산이다.

올 겨울 추위는 평년보다 일찍 찾아와 기록적 한파가 몇 차례 닥칠 것으로 기상청에서 예상했지만 소한, 대한이 지나고 1월이 다가도록 혹독한 추위가 없다.

등산 애호가 중에서 겨울등산을 즐기는 사람이 예상외로 많다고 한다. 백설이 쌓인 산을 오르내리며 눈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을 눈과 가슴으로 간직하는 겨울 산행이 좋아서다. 겨울 추위가 없이 포근한 날씨 속에서도 설경을 구경할 수 있으니 다행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사계절 산행 가운데 겨울산행이 가장 어렵다. 산행 장비를 철저히 준비하지만 산상이나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과 마주하면 힘이 든다. 여러 겹 껴입은 등산옷에 귀를 완전히 덮는 털모자에 마스크 등을 해도 찬기가 몸 안을 파고들 때면 정신이 아찔하다.

몇 년 동안 겨울산행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는데, 이제 곧 2월이 오고 또 앞으로 혹독한 추위가 없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2월까지는 산들이 꽁꽁 얼어있고 응달에서는 더 오래가니 겨울산행은 무조건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등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산행하는 사이 한 치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다. 산이 높든, 낮든 간에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산의 특성을 알고 미리 대비하며 산행을 하는 시간에는 안전사고 등에 각별한 조심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해발 1천111m라 `일사천리`로 불리며 “정상 밟으면 모든일 잘된다” 소문도
정상엔 정상석·해설판 뿐 평평·완만한 산세로 인기… 천년고찰 직지사도 품어

이번 주말 산행은 김천의 명산, 황악산으로 정했다.

백두대간 줄기가 흘러내려 김천에서 낮게 몸을 낮추면서 백두대간의 깊은 맛을 간직하고 있는 황악산은 오래전부터 오르고 싶은 산이다.

그렇지만 먼 거리에 있는 산들을 먼저 등산하다보니 이제야 황악산 등산을 하게 됐다.

사실은 지난해 11월 황악산에 홀로 등산하려고 대구에서 승용차를 몰고 구미 쪽으로 가다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도중에 되돌아온 기억도 있어서 이번에는 단체등산을 계획했던 것이다.

황악산은 개인등산을 해도 교통편 접근이 용이하다. 기차를 이용하면 김천역이나 김천터미널에서 11번, 111번 버스를 타면 황악산 들머리가 되는 직지사 까지는 25분 정도 걸린다. 황악산 등산코스는 여러 개의 코스로 나누어지는데 가장 편하게 다녀오려면 운수계곡코스을 이용하면 된다. 직지사매표소를 출발해 능여계곡, 운수봉을 지나 황악산 정상인 비로봉에 올랐다가 원점회귀를 하면 대략 4시간 만에 다녀올 수 있는 코스다.

하지만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니 산악회에서 등산하는 팀들은 백두대간 코스를 탄다. 등산 지점을 우두령에서 출발해 바람재, 비로봉을 거쳐 괘방령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한다.

그 반대로 괘방령에서 운수봉, 비로봉에 올랐다가 바람재를 거쳐 우두령으로 가도 된다. 황악산을 등산하는 사람들 중에는 형제봉을 지나 바람재로 가지 않고 신선봉으로 해서 직지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우리 일행들은 괘방령에 출발해 백운봉을 거쳐 비로봉에 올랐다가 형제봉, 신선봉, 망월봉으로 하산해 능여계곡을 타고 직지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 나무 숲 사이 눈길 너머 황악산 정상으로 가는 길.
▲ 나무 숲 사이 눈길 너머 황악산 정상으로 가는 길.

황악산은 황학산으로 불리어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국토지리정보원 발행지도에는 황학산으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산에는 지금은 사라져 볼 수 없지만 50여년쯤 전만 해도 솔숲사이로 학이 많이 날아들었다고 해서 이곳 사람들이 황학산으로 불러졌다고 한다.

황악산은 경사가 급하지 않은 육산이다. 암봉, 절벽이 없어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한 편이어서 산행하는데 힘이 크게 들지 않는 관계로 전국에서 찾아오는 산악인들에게는 인기가 높다.

대구를 출발한 차는 충북 영동 땅인 괘방령에서 멈춰 섰다. 황악산 백두대간 등산 들머리는 해발 300m 높이 괘방령에서 시작한다. 우리 일행들은 하차해 여기서 산행을 시작한다. 괘방령은 경북과 충북지역에 걸쳐있는 작은 고개지만 예부터 유명한 고개다. 조선시대에 영남지방에 살던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을 가는 길로 이 고개를 넘어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에 붙는다하여 이름난 고개다. 그 형상을 본다면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가 황악산으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에 황악산 들머리나 날머리로 이 고개를 이용하고 있다.

괘방령을 출발해 눈이 쌓여 있는 산길을 접어든다. 능선을 타고 숲 사이로 올라가니 백설이 산을 뒤덮고 있는데,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눈이 그대로 있다. 중턱에 쌓인 백설은 등산인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주는데, 눈길을 밟으며 겨울산행의 진미에 빠져든다.

눈길을 밟으며 능선을 넘어 한참 가다보니 작은 산이 나타난다. 괘방령에서 1.5km 지점에 있는 이곳은 예로부터 여우가 많이 출몰했다고 해 그로 인해 여시골산이라 불러지고 있다. 여시는 여우의 사투리다. 여시굴 이곳은 여시골산의 대표적인 여시굴이 있다. 여시굴산을 지나 운수봉에 이르는 산 풍경도 마찬가지다. 나무사이로 난 등산길을 따라 일행들은 부지런히 걷는다. 저만치에 운수봉이 나타나고 그곳엔 일찍 온 등산객 몇 명이 보인다.

운수봉에 도착하니 정상엔 눈이 없다. 아무래도 등산객들이 머물고 또 햇볕에 녹은 탓이리라.

또한 정상 모습은 `백두대간 운수봉(680m)라 새긴 돌이 서 있을 뿐 별다른 시설은 없다.

이제 일행들은 운수봉을 내려서 능선을 따라 백운봉으로 향한다. 백두대간을 걷는 마음은 뿌듯하나, 저 앞에 나타나는 황악산으로 가는 산길엔 눈이 쌓여 지나온 산길과 비슷한 편이다.

 

▲ `동국제일가람`으로 불리는 천년 고찰, 직지사 입구 모습.
▲ `동국제일가람`으로 불리는 천년 고찰, 직지사 입구 모습.

안부 삼거리 길에 접어드니 직지사에서 운수암 방향에서 황악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꽤 있다. 백운봉을 지나 눈길을 밟으며 황악산 정봉인 비로봉을 향해 걷는다.

안부 갈림길에서 1시간 정도 부지런히 걸어 일행들은 황악산 비로봉 정상에 도착했다.

황악산 정상인 비로봉은 겸손하다. 산을 보고 겸손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꾸밈이 없는 산이다. 그저 백두대간의 기상을 받아 웅장하게 솟아 위용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볼품없는 정상석과 백두대간 해설판이 설치돼 있을 뿐, 정상에 꾸며진 인위적 모습은 멋들어진 정상석이 서있는 다른 지역 산과 비교해봤을 때 초라한 편이다.

그것은 산을 관리하는 행정기관의 관심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백두대간을 지나는 산에 인위적 시설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능선들이 완만하고 많은 계곡들은 깊은 골짜기를 만들고 놓고 있어 산세가 웅장한 느낌을 주는데, 이런 것이 백두대간에서 맛보는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황악산 정상인 비로봉의 높이는 해발 1천111m이다. 1 숫자가 4개로 연결된 산은 세계에서 황악산 하나뿐이라고 하니 그 또한 특징이요, 특별한 상징물이 된다.

동양에서는 1이 네 개 모이는 1111이란 숫자는 `일사천리`라 부르기도 하는데, 황악산 정상을 밟으면 한 해에 모든 일들이 잘 풀린다고 해서 산 애호가들은 새해가 들면 꼭 황악산을 많이 찾는다는 소문이 있다.

정상에 서니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산에 뒤덮여 있는 설경들이 눈에 빛나 더욱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들어주고 있다.

 

▲ `일사천리`의 상징물, 김천 황악산(1111m) 정상 표지석 모습.
▲ `일사천리`의 상징물, 김천 황악산(1111m) 정상 표지석 모습.

골짜기 아래로 흩어지는 구름 속에서 보이는 백두대간의 위용과 설경을 잠시 구경하다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주변의 산봉우리들을 보면서 황악산을 생각해본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 고요함이 흐르는 산속,/ 흰 구름들이 저만치로/ 흩어지는 산위에 올라보니/ 이곳에 많이도 날아들었다는/ 학들은 어디 갔는지/ 이름만 황학산으로 남았구나.//기품이 깃든 황악산,/ 그 정상에 올라서보면/ 백두대간을 잇는 산이지만/ 소박한 자연 풍경들이/ 가슴속을 짓누르는데/ 비로봉에 서서 하염없이/ 건너 산들을 바라보누나”(자작시 `김천 황악산에서` 전문)

황악산 정상에 서서 올해도 열심히 하겠으니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잘 되게 해주십사 기도를 올리고서는 하산해 형제봉방향으로 행보를 시작한다.

20분 정도 걸어 형제봉을 지나고 다시 그곳에서 10분정도 산 등선을 타고 가니 삼거리길이 나온다. 여기서 곧장 가면 바람재를 지나 우두령으로 가는 길이요, 왼편 길은 신선봉과 망월봉을 지나 직지사로 내려서는 길이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일행들은 하산하면서 신선봉, 망월봉을 지나 능여계곡에 들어선다. 산위에서 간간히 불던 바람은 없으니 한결 길 걷기가 편안하다. 능여계곡을 지나니 직지사 입구가 나타난다.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 아도화상이 창건한 동국제일가람으로 불리는 명사찰이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쳐 김천 황악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찾아보게 마련이다.

이윽고 일행들은 직지사를 빠져나와서는 4시30분경, 주차장에 도착해 차량에 올랐다. 황악산 겨울산행은 백두대간을 타는 멋도 있고 평이한 육산길을 따라 걸으니 마음마저 흐뭇하다.

귀가하는 차안에서 백두대간의 정기가 흐르는 황악산, 일사천리 해발 1111m의 풍경과 오르내리던 등산을 떠올리면서 겨울산행의 멋과 낭만에 다시한번 행복해하며 자연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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