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산 제일봉인가… 정상에 서면 알게된다

▲ 합천 8경 가운데 4경(가야산, 해인사, 홍류동계곡, 남산제일봉)이 한 눈에 펼쳐지는 매화산 남산제일봉에 오르면 기암괴석의 암봉 등 빼어난 자연경관에 황홀경을 느끼게 된다.
▲ 합천 8경 가운데 4경(가야산, 해인사, 홍류동계곡, 남산제일봉)이 한 눈에 펼쳐지는 매화산 남산제일봉에 오르면 기암괴석의 암봉 등 빼어난 자연경관에 황홀경을 느끼게 된다.

이번 가을이 다가기 전에 단풍 구경하러 가야산에는 꼭 가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남하하는 단풍철을 쫓아 속리산, 내장산을 가다보니 해인사 쪽 산행은 순서가 뒤로 밀렸다.

특별한 일이 생겨도 뒤로 미루거나 앞당겨 일을 보고서는 주말마다 산행한다는 게 철칙이지만 때로는 급한 사정이 생긴다. 갑자기 집안일이 있을 때는 달리 방법이 없는 어려움도 따른다.

이번 일요일엔 가야산 등산을 하겠노라 마음먹었는데, 토요일 집안에 일이 있어 가족과 함께 승용차로 부산에 갔다가 대구로 올라오는 길에 생각을 바꿔 합천 해인사로 발길을 옮겼다.

딴에는 내일 아침 일찍이 출발해 등산을 서둘러 마치고는 오후 5시부터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왕의 나라`에 참석해야하는 불가피한 일이 생겼던 것이다.

주연배우 이태원이나 스태프진들과 약속이 있고, 또 고향에서 구경하러 오는 지인들을 안내해야 할 입장에 처해져 있으니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결해야 할 판이니 바삐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대구에서 출발하는 등산 일정을 변경한 것이다.

합천 8경중 4경으로 가야산 앞 위치, 각양각색 암릉·기묘한 바위군에 감탄
구간은 짧지만 급경사 비탈길 많아… 불상 모습 연상 천불산으로 불리기도


오후 늦게 해인사로 가는 길에는 주말 등산객들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단풍철이니 전국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해인사를 찾았던 것이다.

해인사에 도착해 우리 부부는 성철 스님이 기거하신 암자와 다비식 했던 곳 등 4군데 암자를 둘러보고서 인근의 해인사관광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해인사에서 불공 드리는 동안 필자는 남산제일봉을 산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초에는 가야산에 오르기로 했는데, 전날 해인사 경내에서 바라보니 앞에 있는 매화산의 남산제일봉의 산세가 마음에 들어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전국의 산악인들은 해인사가 있는 이곳 등산에서 절 뒤편에 있는 가야산과 앞에 위치한 매화산을 주로 오르는데, 가야산의 정봉은 상왕봉(1천433m)이고, 매화산은 남산제일봉(1천110m)이다.

나는 어차피 이름나 있는 두 산에는 모두 올라야 하는데, 가야산 상왕봉은 내년 봄에 산행하기로 하고 이번 목표는 매화산으로 정했다.

해인사를 나와 산행들머리가 있는 청량사로 향했다.

매화산 등산은 통제하고 있지만 정봉인 남산제일봉은 등산이 가능했다. 등산코스는 청량동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청량사를 출발해 전망대를 거쳐 남산제일봉에 올랐다가 오봉산중턱을 거쳐 돼지골공원지킴터 방향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이 코스와 역방향인 돼지골에서 출발해 정상에 올랐다가 청량동탐방지원센터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는데, 하산하면서 힘이 덜드는 코스를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그렇게 정했다.

 

▲ 남산제일봉 밑에서 장관을 이루는 매화산 암봉들.
▲ 남산제일봉 밑에서 장관을 이루는 매화산 암봉들.

11월로 접어들고 단풍이 마지막 절정를 이루고 있어 그런지 해인사의 매화산(천하제일봉)과 가야산을 찾는 등산객들과 관광객들이 도처에 많았다.

특히 매화산으로 오는 길에 보니 청량동 초입 계곡에서 해인사 들어가는 입구 계곡인 홍류동 계곡에는 아침부터 이 일대의 절경인 단풍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필자는 아침 8시경에 청량사버스정류소 건너편에 있는 정자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무릉동과 매화산장을 지나니 황산저수지가 펼쳐지고 조금 더 걸어가니 청량동탐방지원센터가 있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위쪽으로 걸어가니 이른 아침부터 등산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무리 속에 어울려 걸어가니 청량사가 나왔다. 아담한 절이 가을볕 속에서 깊이를 더해주고 있었다.

청량사 연혁을 적은 안내문을 보니 “청량사가 자리하고 있는 산 이름은 본래는 천불산(千佛山·1천10m)이며 남산 제일봉 매화산이란 천불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고 적혀 있었다.

`삼국사기` 최치원조에 나오는 기록은 이 절에 대해 `최치원(857~?)이 즐겨 찾던 곳이라고 기록돼 있어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량사 창건 연대에 대해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전해오는 말로는 해인사 창건(802년)보다 먼저라고 하니 천년고찰인 셈이다.

대웅전에 들려 가족들을 위해 경배를 올린 후 보물 265호로 지정된 돌부처님(청량사 석조여래좌상)을 보고, 경내에서 또 다른 보물인 3층석탑과 석등을 보고서는 이 절의 좌측에 있는 산행들머리를 타고서 다시 등산길에 나섰다.

빤히 보이는 정봉을 오르는 처음부터 급경사가 시작됐고 능선 안부까지 이어지는 오름길은 무척 가파랐다. 조심조심 올라 안부에서 잠시 쉰 후에 테크 전망대에 섰다.

앞서가던 사람들 가운데 산행 초보자로 보는 젊은이들이 조금 가다가 도중에 앉아 휴식하는 모습에서 이 코스가 구간은 짧지만 급경사 비탈길이어서 초보자들은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에게 조심해라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앞장서갔다.

 

▲ 주말 등산객들이 매화산을 오르는 숲길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 주말 등산객들이 매화산을 오르는 숲길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앞에 보이는 암릉들이 밑에서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나타나면서 기이한 모습을 드러내는데, 각양으로 생겨난 암릉들을 보면서 신비감이 이는 마음속에서 연신 황홀경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 만은 아닐 것이다.

남산제일봉으로 올라가기 전에 무더기로 자리한 암봉들, 왕관비위, 물개바위, 독수리바위 등 기묘한 바위군들을 보면서 그 모습들이 이름 붙인 형상들과 비슷해 누가 이름을 잘 붙여놓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암릉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철계단을 타고서 드디어 남산제일봉에 올랐다. 해인사 방향으로 멀리 산들을 바라보니 왼편에 깃대봉, 그 오른편에 오봉산과 그 너머 비봉산과 두리봉이 보이고, 해인사 너머 오른편에는 가야산의 정봉인 상왕봉(1천430m)이 가을 햇빛 속에서 선명했다.

남산제일봉은 그 높이가 1천10m로 가야산의 남쪽에 위치하는 매화산의 정봉이다. 가야산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아 외지에서 해인사를 찾는 등산객들이 상왕봉과 칠성대를 주로 오르지만 영남지역 산악인들은 매화산을 더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기암괴석들이 많고 불상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천불산으로 불리기도 하며, 예로부터 화재를 일으키는 산이라고 해서 해마다 단오 때는 해인사에서 이 산에 소금을 묻는 행사를 갖는다.

특히 매화산은 홍류동 계곡을 끼고 있어 단풍철이면 이 계곡에서 붉게 물드는 단풍과 함께 가을 해인사를 보기 위해서 전국에서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들고 있다.

정상에 올라 바로 보이는 기암괴석의 모습들과 멀리 가을산의 풍취를 마음껏 가슴에 담았다. 이 산에 오르기 위해 당초 계획을 바꾸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 오는 등 고생이 많았지만 결국 이 절경을 보기 위함이니 마음이 뿌듯했다.

 

▲ 매화산의 정봉, 남산제일봉(1천110m)에서 필자.
▲ 매화산의 정봉, 남산제일봉(1천110m)에서 필자.

많은 등산객들이 힘들게 비탈길을 오르고, 험한 암릉을 타고 마지막 구간에서 철계단을 올라 남산제일봉에 도착해 안도의 한 숨을 쉬면서도 좋아라 하는 것은 그만큼 이곳의 경치가 빼어났다는 증거인 것이다.

필자는 제일봉에 올라 부근 경관을 사진 찍으면서 여기에서 합천 8경 중 4경을 다 보고 있으니 자연의 신비감에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다.

합천8경 중 1경은 가야산이다. 2경은 한국불교의 성지인 해인사이고, 3경은 여기에 오르는 초입에 있는 홍류동 계곡으로 단풍 절경이 가야산의 백미를 이루는 곳이다. 4경은 바로 필자가 서 있는 이 자리, 매화산의 정봉인 남산제일경이다.

맑은 가을하늘 아래 펼쳐지는 풍경들을 원없이 바라보고 아름다운 풍취와 그 신선한 공기를 폐 깊숙이 들어 마시면서 필자는 이 지역의 명소 정취가 담긴 시심을 열었다.

“해인사로 가는 길목/ 십리 길, 홍류동 계곡은/ 가을단풍이 붉어서/ 물마저 붉게 비쳐난다./ 가슴을 아리게 하는/ 수려한 경치가 절경이다.// 해인사 앞에 선 뫼/ 매화산은 불기운이 많아/ 단오만 되면/ 소금을 묻는 다는 산,/ 남산제일봉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들/ 그 기분을 어떻게나 설명할지.//”(자작시 `남산제일봉에서`전문)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은혜와 그 깊이를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서 하산길에 나섰다. 철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서서 갈림길을 지나 오봉산 중턱에 다다랐다. 여기서부터 내려가는 길은 계단이나 경사진 비탈이 없는 평이한 숲길이었다.

길 양편으로는 소나무들과 단풍나무들이 서있고 길에는 낙엽들이 가득 쌓여져 있어도 미끄럽거나 위험하지가 않다. 돼지골로 부르는 계곡으로 내려서서 나오니 해인사관광호텔이다.

영산교를 건너 등산로가 끝나는 치인마을에 접어들어 하류 쪽 홍류동 계곡이 보이는 곳에서 매화산 등산을 마무리했다. 이번 산행은 여러 가지 일로 인해 계획을 변경해 남산제일봉에 올랐으니 그런 이유로 내년 봄, 가야산을 다시 산행해야겠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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