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바윗돌 들쭉날쭉… 멋진 암릉마다 눈꽃 가득

▲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고 하는 영암 월출산은 산세가 빼어나고 주변의 자연풍광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산으로 소문나 있다.
▲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고 하는 영암 월출산은 산세가 빼어나고 주변의 자연풍광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산으로 소문나 있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어느 산으로 오를까 생각하곤 하는데 이번엔 쉽게 결정을 했다. 눈 소식도 있고 해서 월출산이라도 다녀와야지 마음먹고 알아보니 마침 대구 KJ산악회에서 일요일 월출산으로 등산할 계획이라고 했다.

기쁜 마음으로 신청을 해놓고 사무실에서 있으려니 지인이 찾아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경기가 끝난 프로야구 이야기가 나왔고, 야구선수 배영수도 화젯거리에 올랐다.

필자는 야구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응원팀이나 좋아하는 선수도 없다. 삼성라이온즈가 3연패했다는 것만 겨우 아는 정도인데 지인은 배영수 선수가 15년째 둥지를 튼 삼성을 떠나서 자신도 한화이글스 팬이 됐다고 했다. 운동경기도 사람 사는 거처와 같아서 어느 소속인가에 따라 연고지가 달라지고 생활반경이 다르게 된다. 배영수 선수가 계약기간 동안 대구를 떠나 대전에 연고를 맺고 내년도 시즌을 새롭게 나서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서 인터넷에 배영수 선수에 관한 자료를 찾았더니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스의 `푸른 피의 영원한 에이스`라 나와 있다. 그리고 현역투수로서 최다승 선수라는 소개가 있는데 그 또한 팔꿈치 수술 등 어려움을 겪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선수였다.

지상 120m구름다리서 보는 능선·암릉길 눈꽃나무 설경에 감탄
빼어난 산세·아름다운 자연풍광으로 `호남의 소금강` 이라 불려

그가 삼성라이온즈를 떠나면서 “사람은 누구나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면서 적응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나 또한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길이 나온다”는 말을 했는데,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 마음먹은 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실망하기도 하지만 사실 실망보다는 현재 상태에서 대안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 가야한다.

필자에게도 그동안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근래에 자연을 대하면서 그 대안이자 최선의 방법을 알았다. 인생이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니 최선을 다하되, 자연흐름대로 해결점을 찾자는 것이다. 이 모두가 등산을 하면서 오랜 시간 자연과의 대화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들이다.

그래서 등산이 힘들다고 하는 암릉으로 구성된 영암 월출산을 주말에 다녀오기로 결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 월출산 겨울등산은 눈 덮인 바위에 올라 마음껏 소리쳐보는 즐거움도 있다.
▲ 월출산 겨울등산은 눈 덮인 바위에 올라 마음껏 소리쳐보는 즐거움도 있다.

필자는 일요일 새벽, KJ산악회에서 미리 알려준 장소로 가서 오늘 안내를 맡은 최영준 가이드 등 아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서 차에 올랐다. 오전 6시에 출발한 차는 시내 집합장소에 들른 다음 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영암 월출산으로 향했다.

호남 땅에 들어서자 며칠 전에 이 지방에 눈이 내려서 그런지 산야에 아직 잔설이 남아 있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는 영암군에 들어서 월출산으로 향하는데 평원 저쪽에 비쭉비쭉한 암릉군들로 형성된 월악산의 모습이 드러난다.

월출산은 산세가 빼어나고 주변의 자연풍광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산인데, 마치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고 한다.

일행을 태운 차는 오전 10시20분경 천황사에 도착했고, 일행들은 내려서 등산할 준비를 하면서 장비를 챙기는데, 필자가 내려 배낭을 뒤지다가 아이젠이 없는 걸 알았다.

겨울등산에서 방한복, 아이젠 등은 필수인데 깜박한 것이다. 산 정상을 쳐다보니 눈이 많이 쌓여있고, 또 암릉이라 적잖게 걱정이 됐다.

그러나 어쩔 수 있으랴. 조심해서 오를 수밖에. 다행인 점은 오늘 오르는 산행 코스는 3년 전 필자가 처음 등산을 하던 시기에 와본 곳이라 조금은 안심이 됐다. 필자는 일행들과 함께 천천히 등산길을 떠났다. 일단 구름다리 쪽으로 가기로 했다.

 

▲ 월출산 정봉인 천황봉에 선 산악회원들.
▲ 월출산 정봉인 천황봉에 선 산악회원들.

KJ산악회의 등산 일정을 보면, 천황사에서 구름다리, 월출산 천황봉에 올랐다가 바람재를 거쳐 정봉인 천황봉, 미왕재에 들렸다 도갑사에 도착한다. 총 7km거리에 자유시간을 합쳐 5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월출산 등산코스는 대략 5개 코스가 있다. 가장 쉬운 1코스는 천황사지에서 출발해 구름다리를 거쳐 천황봉에 올랐다가 바람폭포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이고, 일반적인 코스는 우리 일행이 가는 천황사지에서 구름다리, 천황봉, 구정봉, 도갑사로 하산하는 길이다.

천황사를 출발해 구름다리 방향으로 가는데 산길을 접어들자 등산로는 눈길로 덮여있고, 주변에는 눈꽃이 내린 나무들이 설경의 경관을 이루면서 멋진 장면을 연출해낸다. 일행들은 누가 먼저랄 것이 없이 환호성을 지르고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눈 내린 풍경이 좋기는 하지만 오늘은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나 자신이 등산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다. 조심조심 한발자국씩 떼면서 앞을 향해 걷는다. 그러다보니 평상시와는 다르게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

천황사지에서 1km 남짓 거리의 구름다리 부근까지 왔다. 조심조심 철 계단을 올라 구름다리에 섰다. 등산객들이 구름다리 위에서 사진도 찍고 주변의 경치를 보느라 다들 바쁘다. 해발 510m, 지상 120m 높이의 허공에 설치된 이 구름다리는 이젠 월출산의 명물이 됐다. 1978년 5월 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해 처음으로 가설했으나 노후해 원래의 구름다리를 철거하고 2006년 5월12일 새 다리를 만들었다.

일방통행만 가능했던 옛 구름다리를 보강해 길이 54m, 너비 1m로 최대 200명이 양방향 통행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09년 KBS 2TV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 팀이 월출산과 구름다리를 소개한 후부터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구름다리는 인기가 높다.

 

▲ 월출산의 명물이 된 지상 120m 높이의 월출산 구름다리 모습.
▲ 월출산의 명물이 된 지상 120m 높이의 월출산 구름다리 모습.

구름다리를 보고 걸으면서 자연경관을 심취하다가 다시 산행길에 나선다. 산 아래 펼쳐지는 조망과 함께 양지 편에는 눈이 녹았지만 산에 군데군데 소복 쌓여 있는 설경을 보면서 통천문에 다다른다. 소위 하늘과 맞닿는다는 암릉이다.

한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비좁은 공간을 조심조심 지나간다. 이름하여 통천문이니, 이 문을 빠져나가야 비로소 하늘로 통하는 것이 아닌가. 그만큼 높이 있고, 명소라는 뜻일 게다.

능선을 타고 암릉길을 지나기를 반복해 일행들은 천황봉 정상에 올랐다. 여기까지 오느라 필자는 정말 힘이 들었다. 매사에 준비를 빈틈없이 해야 하는데 등산화에 부착하는 아이젠이 없으니 눈길을 걷는데 힘이 들었다. 비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눈 내린 도로에 스노우타이어를 장착하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꼴인데 얼마나 조심스러우랴. 그래서 드는 힘은 배가 더 되는 것 같다.

어쨌든 고생스럽긴 했지만 월출산 정봉에 올라서서 다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멀리 가까이에 있는 풍경들을 조망하는 것이 대단히 흡족하다. 지난번 왔을 때보다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월출산은 설악산, 주왕산과 함께 한국의 3대 암산이고, 100대 명산에 속한다. 그만큼 경관이 빼어나다는 것이다. 일행들이 사진을 찍고 사방으로 펼쳐지는 멋진 자연을 맛보는 사이 필자도 월출산의 기상을 받으며 잠시 시상에 잠겨본다.

“산 전체가 거대한/ 신령스러운 바윗돌로/ 들쭉날쭉하다./ 봉우리와 능선들이/ 기암괴석으로 돼 있으니/ `영암(靈巖)`이라 부르는 이 산은/ 천하명산이 아니더뇨.// 웅장한 산세를 보고/ 인근을 지나는 사람들이나/ 산에 오르는 이들마다/ 월출산의 장관에 취해/ 할 말을 잊는다하니/ 오늘은 천황봉에 올라/ 상쾌함을 맛보는구려”(자작시 `월출산 천황봉에서` 전문)

일행들은 다시 산을 내려서서 바람재를 지나서 구정봉에 도착했다. 지난번에도 봤지만 신기한 형세다. 암릉에 가마솥 모양을 하고 있는 웅덩이 아홉 개가 있어 구정봉이라 부른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구정봉의 물은 마르지 않는다는 것인데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구정봉을 보고서 다시 내려서서 미왕재를 향한다. 여기서 미왕재까지는 1.5km 거리다. 지금은 억새풀들이 떨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지만 가을에 이곳 미왕재 억새밭의 경관은 일품이다. 특히 주변의 웅장한 바위를 배경으로 한 억새밭은 가을의 서경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왕재에서 억새밭 길을 빠져나와서 도갑사 계곡을 지나 절에 도착하니 오후 5시20분이다. 산행을 다 마치고 개인적으로 휴식시간을 갖는 사이에 도갑사 절을 참배했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도갑사는 신라 헌강왕 6년(880년)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신 도선 국사가 창건하신 대가람으로 유서 깊은 고찰이다. 1977년 참배객들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해 대웅보전이 소실됐지만 1981년 대웅보전이 복원됐고 이젠 서서히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자유시간 겸 휴식을 취한 후에 오후 7시경 KJ산악회 일행들은 차를 타고서 대구로 출발한다. 좌석에 앉아 필자는 이번 산행을 무사히 마친 안도의 숨을 쉬면서 정리의 시간을 갖는다.

어떤 산악회에서든 산행대장 또는 가이드는 산행길 나선 일행들의 안전을 위해 많이 노력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번 최영준 가이드는 일행들에게 상세히 안내해주고 일일이 보살펴주느라 수고 많이 했다. 덕분에 산행이 즐거웠고 설경 길의 월출산을 잘 다녀왔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관련기사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