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안개에 휩싸인 적막한 자연 고독한 것은 사람이더라

▲ 백두대간의 끝자락으로 부산의 진산으로 불리는 금정산은 부산시민들이 즐겨 찾는 영험 있는 산이다. 필자가 홀로 등산한 금정산은 이날따라 안개에 싸여있어 신비감을 더했다.
▲ 백두대간의 끝자락으로 부산의 진산으로 불리는 금정산은 부산시민들이 즐겨 찾는 영험 있는 산이다. 필자가 홀로 등산한 금정산은 이날따라 안개에 싸여있어 신비감을 더했다.

평소 약속한대로 산행 일정 같았으면 화림산악회에서 가는 코스에 따라야 하지만 그 코스는 이미 필자가 가본지라 이번엔 혼자서 부산에 있는 금정산에 오르기로 작정했다.

일요일 아침 일찍 비가 오려는 듯 잔뜩 흐려있는 날씨 속에서 등산장비를 갖춰 고속버스정거장으로 향했다. 아침 7시 부산행 고속버스 탑승권을 끊고서 신문을 사서 차에 올랐다. 차에 올라 신문지면을 넘기며 대충 보다보니 조선일보 섹션면에서 등산 관련 내용이 있어 자세히 읽어보았다.

서울의 코오롱등산학교 교장인 이용대(77) 산악인의 스토리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용대 교장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을 이용해 전문 등산을 해왔고, 인연이 닿아 1985년 이후 30년 째 등산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배출한 인원만 해도 1만5천명이라고 한다. 요즘 등산학교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데 정규반에는 지원하는 인원이 넘쳐나 다 수용할 수 없으며 특히 암벽반은 인터넷 접수 시작 30분 만에 마감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낙동정맥 끝자락, 산세 크지 않지만 곳곳 기암절벽 볼거리
신라시대 고찰 범어사·금정산성 지나며 호젓한 낭만 만끽

현재 우리나라 등산 인구는 1천800만명을 넘는다. 거리를 다녀 봐도 등산복 차림이 많고 매장에는 등산코너가 지속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1997년에 발생한 IMF로 인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에 많은 실직자들은 직장을 잃고 신문 한 장과 김밥을 싸 들고 가까운 산을 찾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등산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시간을 때우기 위해 산에 올랐다고 하는데 지금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르고 있으니 세월도 많이 변했다.

신문을 읽고 나서 필자는 산은 인간이 의지하고 산으로부터 많은 위안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바깥을 보니 차는 거의 부산에 접어들고 있었다. 혼자서 부산으로 오는 동안 신문에 난 등산이야기로 지루하지 않게 잘 왔던 것이다.

부산시외터미널에 버스가 도착한 후에 가게에서 알아보니 범어사까지 버스가 있다고 한다. 기다리다가 버스를 타고 범어사매표소 인근의 정거장에 내리니 아침 8시20분이다.

▲ 금정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성 길, 트레킹하기 좋은 코스다.
▲ 금정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성 길, 트레킹하기 좋은 코스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왕래하는 등산객이나 절을 찾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비는 내리지 않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올 양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있고 바람이 분다.

산행을 시작한다. 금정산은 대도시에 인접한 산인 만큼 교통이 편리한 편인데 지하철과 시내버스가 연결돼 찾기가 쉽다. 또한 시내 요소요소에서 금정산 등산코스는 많다.

이곳을 찾는 많은 등산인들이 금정산에 온 김에 유명 사찰인 범어사를 찾게 마련인데 범어사에서 금정산성 북문을 거쳐 동문으로 가거나 반대로 동문과 북문을 거쳐 범어사로 내려서는 코스를 즐긴다.

필자는 현지 안내도들을 보고나서 범어사에서 시작해 장군봉에 올랐다가 고당봉을 거쳐 북문으로 내려와서 범어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고당봉이 금정산의 정상이 있기 때문에 고당1봉과 가까이 있는 장군봉에 등산하기로 한 것이다.

이른 아침 산사는 조용하다. 더욱이 흐린 날씨고 비 예보가 있으니 신도들의 왕래도 뜸하다. 필자는 범어사 대웅전을 찾아 먼저 참배를 하고서 경내를 잠시 둘러본다.

범어사는 조선시대의 사찰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사찰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 범어사 들어가는 입구 모습.
▲ 범어사 들어가는 입구 모습.

그 후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선조 32년(1602)에 다시 지었고 광해군 5년(1613)과 숙종 39년(1713)에 고쳐지었다고 하는데 동국여지승람에는 범어사의 이름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는 금정산 산마루에는 세 길 정도 높이의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는 둘레는 10여 척이고 깊이는 7촌쯤 되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에는 금빛을 띤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고,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속에서 놀았다고 하여`금샘`이라고 하였다. 금정산 범어사는`금샘(井)`이라는 산 이름과 `하늘나라의 고기(梵魚)`라고 하는 절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사찰과 뒤편 산세의 웅장함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뒤편으로 난 길을 통해 금정산에 오른다. 여느 등산과는 달리 혼자 오르고 안내하는 자가 없으니 잘 살피면서 가야한다.

청련암과 내원암을 지나 산길에 접어드니 등산로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한다. 금정산은 구석구석 거미줄 같은 등산로가 있어 특히 초보자나 혼자 또는 소그룹으로 몇몇이 오를 때에는 주의를 해야 한다. 산길 찾기가 어려운 산이라는 뜻이다.

한참을 치고 올라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 피하기를 하다가 길을 잃고 잠시 헤매다가 다시 등산로를 확보해 올라서니 갑오봉이다. 앞을 보니 암릉이 많은 장군봉이 가까이에 있다. 이정표를 보니 장군봉까지는 500m가 남았다.

갑오산에서 장군봉까지는 평원으로 이뤄져 다소 등산하기에 좋은 길이다. 호젓한 길을 계속 앞을 보면서 걸어가니 소나무 숲이 나오고 그대로 전진해서 장군봉 바로 밑에 도달했다.

여기서 등산온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들도 빗길 산행에 조심하면서 암릉을 조심스럽게 올라 정상에서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필자는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날씨가 흐려서 시계가 잘 확보되지 않아서 인지 조망이나 배경은 영 신통치가 않다.

앞면의 저 멀리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뒤편으로는 금정산의 정봉인 고당봉이 위치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흐린 날씨라 보이지 않는다. 운무가 깔린 정상에서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연의 오묘한 현상들을 가슴속을 채워본다.

장군봉 정상에서 잠시 머물다가 하산한다. 다음 산행 목적지인 고당봉을 향해 다시 갑오봉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변이 안개에 싸여 보행로만 간신히 열어놓고 있다.

▲ 금정산 정상에서 기념촬영.
▲ 금정산 정상에서 기념촬영.

비가 오는 사이 필자는 소나무 숲 밑에서 잠시 쉰다. 여기서 고당봉까지는 2km정도 거리다. 일행이 없는 초행길이라 자칫하면 등산로에서 벗어날 수 있어 조심하면서 길을 따라 걷는다.

장군봉에서 고당봉으로 가는 능선은 주된 등산로이므로 찾기가 쉽지만 대체적으로 금정산은 산이 큰 만큼 코스가 여러 갈래이고, 아직도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숨은 코스가 많다.

능선과 돌바위를 지나니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타고 5분 정도 올라가니 정상이다. 금정산의 정상봉인 고당봉에 도착해보니 등산 나온 몇몇이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다.

금정산(801.5m)은 낙동정맥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산으로 주봉인 고당봉은 화강암의 봉우리이다. 북으로 장군봉(727m), 남쪽으로 상계봉(638m)을 거쳐 백양산(642m)까지 산세가 이어져 있으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나무와 물이 풍부하고 자연풍화로 인한 기암절벽이 많다.

또한 산의 북쪽엔 삼국시대에 축성한 ㄷ자형을 이루는 금정산성이 있는데, 우리나라 옛 산성 중 규모가 웅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당봉에서 조금 위쪽으로 오르면 금샘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금정산 산정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척(尺)이며, 깊이는 7촌(寸)쯤 된다. 황금색 물이 항상 가득 차 있고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다.

필자는 날씨 사정도 그렇고 오랫동안 혼자 산행을 한 탓에 금샘에 들리지 않고 북문을 지나 범어사 방향으로 나가기로 했다. 등산로 하산길을 따라 40분 정도 걸어 나오니 북문이 나온다. 북문으로 나오니 산성 길이 이어진다. 깔끔히 정비되어 있는 산성 옆길을 따라 걸으니 흐린 날씨지만 기분이 좋다.

북문에서 범어사로 나가는 코스에 있는 금강암으로 가는 길은 호젓한 산길이다. 금강암과 대성암을 지나니 금정산 등산길 들머리로 선택했던 범어사가 나타난다.

오후 2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이니 비와 안개 속에서 5시간 반 동안 산길을 걸었다. 범어사를 끼고 왼쪽 길을 걸어내려 종점으로 향하면서 혼자 등산한 이번 산행은 사색을 많이 한 등산같아 외롭기는 했지만 내심으로는 보람도 있었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북문에서 범어사로 나가는 코스에 있는 금강암으로 가는 길은 호젓한 산길이다. 금강암과 대성암을 지나니 금정산 등산길 들머리로 선택했던 범어사가 나타난다.

그것은 등산을 마치고 다소 편안한 마음이 됐을 때 불현 듯 뇌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마음속에 감정이 한편의 영감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한 때 필자는 부산에서 살았다. 그래서 한번은 꼭 와보고 싶었던 부산의 진산, 금정산이 아니던가. 그 감회에 찬 진수를 여기에 한편의 시로 적어본다.

“호젓이 등산길을 걷는다./ 홀로 걷는 사색의 길이다./ 오락가락 장맛비 속에서/ 앞에 다가서는 것은/ 빗줄기와 뿌연 안개들이니/ 작게 열려 있는 공간 너머로/ 지나온 풍경들도 사라지고 없다.//“산마루에 우물이 있어/ 한 마리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 속에 놀았다”고 하는 금정산/ 백두대간의 끝자락을 오르면서/ 자연의 적막함을 생각해보았다./ 고독한 것은 오히려 사람임에도.”(자작시`금정산을 홀로 걸으며`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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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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