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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짐승입니다 사랑이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는 어둠이고 빛이고 물어뜯으면서 미쳐 날뛰는 짐승입니다 사랑 앞에서는 사랑만 말해야 합니다 사랑 외에 어떤 주제나 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피골이 상접 사랑으로 연명하고 사랑으로 별을 끄고 사랑으로 환히 켭니다 사랑에 빠져 곧 익사해도 지푸라기를 잡으려고 허우적거리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위하여 기꺼이 간까지 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대는 지금 사랑을 잃은 사랑이란 짐승입니다 그대는 지금 눈물 속에 드러누운 눈물이란 짐승입니다 털이 눈물에 젖었고 눈물의 가뿐 숨 몰아쉬면서 눈물의 호흡을 합니다 그대의 눈물로 안드로메다가 은하수가 우주가 흠뻑 젖는 것 같습니다 내 곁에 없는 내 사랑마저 그대 눈물에 흠뻑 젖어서 끝없이 축축 처져 내리는 밤입니다 사랑을 `영
시
등록일 2017.03.23
게재일 201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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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네 물고기 처량하게 쇠 된 물고기 하릴없이 허공에다 자기 몸을 냅다 치네 저 물고기 절 집을 흔들며 맑은 물소리 쏟아 내네 문득 절 집이 물소리에 번지네 절 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 고택(古宅)이나 고찰(古刹)의 지붕 추녀 끝에는 청동으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풍경(風磬)이 달랑거리고 있다. 가만히 올려다보며 그 맑고 청량한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의 평화경에 이르게 된다. 시인의 상상력은 물고기가 물고 유영해가는 절집을 그리고 있다. 속세에서 얼룩진 더러운 것들을 다 떨쳐버리고 영원의 시간 속으로 헤엄쳐가며 쏟아내는 맑고 깨끗한 소리. 청동물고기가 허공의 물살을 가르는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3.22
게재일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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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숲 속을 걷고 걸으니 나는 천년 나무 광활한 초원을 바라보고 바라보니 나는 광활한 초원 숲과 초원이 기르는 아름다운 사람, 마을, 도시 사람이 가꾸는 아름다운 숲, 초원, 꽃밭 생명과 생명이 사랑으로 껴안는 곳 맑고 깨끗한 하늘과 땅이 눈 뜨는 곳 사람이 꽃이고 꽃이 사람인 곳 숲, 초원, 꽃의 나라 숲과 사람과 초원에 고이고 고이는 평화의 꿈 흐르고 흐르는 생명의 강 숲은 생명의 공간이다. 숲은 생명과 생명을 잉태하고 순환시키고 보존하는 유기체다. 숲은 아름다운 초원과 꽃밭, 품위있고 인간다운 인간을 지지하고 함께하며 생명력 있는 마을과 사회를 만들어간다. 시인은 숲과 사람과 초원에 흐르는 평화의 꿈, 생명의 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3.21
게재일 20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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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지운 아버지의 얼굴이 내 아이의 얼굴에 돋는다 밤마다 강 건너에서 거칠게 흔들던 몸짓이 날 물리치려던 것이었는지, 부르려 던 것이었는지 어둔 꿈길을 막니처럼 아릿하게 거 스르면 겨울 천정에 얼어붙었던 철새들은 그제야 낡고 깊은 날갯짓을 한다 불온한 전생(全生)이 별자리를 밟고 서녘으로 흐른 사이 달이 지고 해가 뜨기 전의 지극(至 極)이 강물에 닿아 문득 시들어버린 내가 잎 진 나무로 강가에 몸을 잠그면 가지 끝에 옮아 피는 앙상한 길 내 몸 빌려 검게 꽃 피는 아버지 모두가 한 물결로 펄럭인다 생은 몇 번씩 몸을 바꿔 별이었다가 꽃이었다가 닻이었다가 유곽이었다가 성당이었다가 어제처럼 늙은 내 아이가 되는데 새벽이 오는 변방의 강가에 기대어 아버지와 아이의 멸망을 지켜볼 뿐 나는 차마
시
등록일 2017.03.20
게재일 2017-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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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렸을 적 보름이나 되어 시뻘건 달이 앞산 등성이 어디쯤에 둥실 떠올라 허공 중천에 걸리면 어머니는 야아 야 달이 째지게 걸렸구나 하시고는 했는데, 달이 너무 무거워 하늘의 어딘가가 찢어질 것 같다는 것인지 혹은 당신의 가슴이 미어터지도록 그립게 걸렸다는 말인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나는 이 말을 시로 만들기 위하여 거의 사십여년이나 애를 썼는데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보름달을 보며 하신 말 한 마디가 평생의 화두가 되어왔는데. 이제 시인이 그때의 어머니만큼 나이들어 다시 그 말을 떠올리니 어머니의 깊은 가슴 속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평생을 속초에서 민초들의 애환을 써온 시인으로서 어찌 그 어머니의 뜻을 모르겠는가. 시인은
시
등록일 2017.03.19
게재일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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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 7동, 난곡 아랫마을에 산 적이 있지. 대림동에서 내려 트럭을 타고 갔던가, 변전소 같은 버스를 타고 갔던가, 먼지 자욱한 길가에 루핑을 이고 엎드린 한칸 방, 누나와 조카 둘과 나의 보금자리였지. 여름밤이면 집 앞 실개천으로 웃마을 돈사의 돼지똥들이 향기롭게 떠가는 것을 보며 수제비를 먹었지. 찌는 듯한 더위에 못 이겨 야산에 오르면 시골처럼 캄캄하던 동네, 개천 건너 그 동물병원 같은 보건소는 잘 있는지 몰라. 눈이 커다란 간호원에게 매일 아침 붉은 엉덩이를 내리고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대씩 맞고 다녔지. 학교가 너무 멀어 오전 수업을 늘 빼먹어야 했던 집. 아니 결핵을 앓던 나를 따스히 보살펴 주던 집. 겨울이면 루핑이 심하게 울어 조카의 어린 몸을 난로처럼 안고 자던 방. 아니 봄을 기다리던 누님
시
등록일 2017.03.16
게재일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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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졌다 하얀 눈밭 온몸을 불사르며 입술이 부르트고 손발이 부어올라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한없이 험한 수렁의 길 절체절명 혹한의 길 설산의 눈부심과 황홀함에 든 지 설일 열흘 지칠 줄 모르는 몸부림의 재촉 포터와 쿡들의 너덜거리는 조리에 몸 설어 한 생의 비린 무게 옮길 때면 찡한 울림 혼미한 흔들림 해질녘 붉게 타는 황혼을 짚고 우뚝 솟아 뜨거움에 몸부림치며 환희의 붉은 화살을 맞고 피 흘리며 선 장엄한 설벽을 보네 설산의 둔탁한 숭엄함 가슴에 퍼 담고 내 작은 영혼 한 구석에 저 깊은 설산의 꿈틀거림과 숨소리 모아 소리 없이 쏟아지는 하얀 폭포 하나 내 몸 속 깊이 들이고 싶네 히말라야의 한 봉우리인 안나푸르나를 등정하면서 설산의 장엄하고 숭엄한 느낌을 거침없는 필치로 그려낸 시다. 영원의
시
등록일 2017.03.15
게재일 2017-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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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끝나고, 몰아치는 바람 마당 귀퉁이부터 얼어붙는다 감나무 꼭대기에 몇 알 남겨둔 까치밥 참새, 까치들이 수시로 와서 쪼아먹고 가지들, 텅 빈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오늘 무슨 날일까 못 보던 재비둘기 한 쌍이 빈가지 위에 앉아 두런거리고 있다 반가운 마음뿐 그냥 바라만 보는데 미안하다, 미안하다 빈가지는 자꾸 흔들리고 있다 저 흔들리는 것들 때문에 봄은, 오고야 말 거다 맹위를 떨치던 한겨울 추위도 대한(大寒)을 지나면 서서히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봄을 기다리는 것이 어찌 참새나 까치, 재비둘기 뿐이랴. 움츠리고 닫아걸었던 자연이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어떤 예감으로 빈 가지들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은 생명의 계절이 다가오기 시작하는데 대한 반가움과 기대를 희망에
시
등록일 2017.03.14
게재일 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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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스나 콜라처럼 마시는 것이 아니다 젖은 먹는 것이다 이 오래고도 유정한 식량 언젠가 `아프리카의 참상` 이란 보도사진전에서 정강이뼈가 유독이 앙상했던 쾡한 눈의 덩치 큰 한 사내아기가, 살갗이랄까 껍 질이랄까 아무튼 모든 살점이 육탈해버려서 머리 위로 올라붙은 그야말로 피 골상접한 엄마의 젖을 빨고 있었다 아기는 엄마의 바닥을 빨고 있었고, 엄마는 자기 육신의 맨 마지막을 아기에게 내어 물리고 있었다 참혹한 것 넘어서는 이 숭엄함 원래 종교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젖은 우리의 하나님이었다 젖은 생명의 원천이고 시인의 말처럼 오래되고 유정한 식량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아프리카의 참상이라는 보도사진전에서 본 사진 한 장에서 그것을 절실히 느낀 것이다. 엄마가 자기 육신의 맨 마지막을 아이에게 건네고
시
등록일 2017.03.13
게재일 201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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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 위에작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빨갛고 가녀린 발이 뿅뿅뿅 밟고 갔으리언덕이 끝나는 곳에서발자국은 끝나고 새파란 허공에새 한 마리 해맑은 실루엣으로 찍혀 있다내 발자국 끝나는 곳에서 나도 저처럼둥실 떠올라허공에 그림자로 찍힐 수 있을까 해맑기는커녕 검고 칙칙한 얼굴이 되어누더기로 허공에 남을까그것이 두렵지만 창작과비평 시집 제 1권은 신경림 시인의 `농무`다. 평생 민초들의 상처와 아픔을 절절한 가슴과 목소리로 민족시를 써온 시인이 허공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한 생을 성찰하면서 허공에 발자국을 찍는 새처럼 깨끗하고 해맑게 생을 마감할 수 있을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본다. 치열하게 살아온 한 생이지만 혹여 검고 칙칙한 얼굴로 누더기로 허공에 남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빠져듦을 본다. 노 시인의 겸
시
등록일 2017.03.12
게재일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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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술에 여기까지 왔구나 휘청거리며 걷다 보니 해는 지고 어둠이 깔리는 강가 강물은 어둠으로 깊어간다 강바닥에 쌓이는 흙 앙금도 돌에 묻은 푸른 이끼도 물로 감춘 물풀들도 강둑에는 하얀 꽃, 노란 꽃, 빨간 꽃 푸른 잎 모든 것들은 그 윤곽만 남고 어둠으로 묻힌다 이제까지 살아온 내 마음속 입혀온 하얀 꽃, 노란 꽃, 빨간 꽃 항시 푸를 것으로만 보았던 무성한 숲들도 새벽의 먼동으로 왔으니 해 다 진 어둠 속에서는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 흐릿하게 검은 흔적만 남기고 한 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시인이 저문 강가에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깊은 사념에 빠져듦을 볼 수 있다. 불꽃처럼 화려했던 순간들도 있었고 시리고 아픈 어둠의 시간들도 있었다. 이제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시인에게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시
등록일 2017.03.09
게재일 20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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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올 한 올 매화 꽃가지 붉은 색실이 풀리고 있다 흥얼흥얼 수로를 따라 흘러드는 눈 희미한 콧노래 어머니, 아득한 그곳에서 재봉틀 돌리시는지 한 땀 한 땀 흰개미들 내려와 풍경을 꿰매고 있다 낡은 영화 필름처럼 느리게 느리게 재봉틀이 돌아간다 어머니 노루발 지나간 바느질 자국에 다시는 몸 아픈 날들 오지 않으리라 모든 안팎이 사라지리라 봄비 내리는 날 시인은 어머니의 바느질을 하시는 모습과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를 떠올리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본다. 이른 봄날 터지는 매화꽃송이처럼 어머니의 재봉틀 노루발이 지나간 자리에 흰개미떼 닮은 실밥 자국이 나던 것을 떠올리며 시인은 몸 아파서 먼저 떠나가신 어머니를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다.
시
등록일 2017.03.08
게재일 2017-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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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그머니 허리를 펴는데 새벽 안개를 헤치며 서둘러 논둑길을 질러가는 시골 여학생 같은 보랏빛 나팔꽃이 잎 뒤에 얼굴을 가리고는 키득거립니다 시원했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나의 아침 방귀가 당신의 그 신중한 하루를 또다시 시끌벅적하게 만들었군요 새벽 논둑길에서 놓은 시인의 방귀이야기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시다. 방귀가 시의 모티브는 되었지만, 시인은 방귀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시끌벅적하게 하루를 열며 가는 시골 여학생들과 깨어나는 자연의 생명력에 초점이 놓여있는 작품이다. 싱싱한 생명력은 소란스럽다. 소박하면서도 소란스러움 속에는 자연스러움과 낙천성이 스며 있다. 다가오는 봄날, 엄동의 대지에서 움츠렸던 자연이 강한 생명력으로 시끌벅적하게 되살아나는 눈부신 시간들을 기다려본다.
시
등록일 2017.03.07
게재일 2017-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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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밝아진다는 건 그래도 슬픈 일만은 아니었다 지나간 다큐멘터리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데 작년 첫울음 울다 간 소쩍새가 한 문장 속에서 다시 깃을 친다 홀로 밤늦게 찾아와 길게 목을 풀던 첫손님 누군들 그 울음을 받아 적을 수 있었을까 늘 멀리만 보려던 닫힌 창가에 바짝 다가앉았다 손때 묻은 수첩을 꺼내든 이의 등 뒤로 눈이 까만 밤새가 울었다 올해 소쩍새 울음을 들으려거든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아니 더 늦을지도 모른다고 바람이 아직 차다고 그때나 한번 찾아와 보라고 정작 나는 그 새가 언제 우는지 기다려지기보다 어디서 우는지 울어야 하는지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 저 울음이 배어나왔을 저녁 어둠은 아직 창밖의 나무옹이 속에 웅크려 있었다 저물녘 누군가 앉아 있던 자리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울창하고 맑은 밤
시
등록일 2017.03.06
게재일 2017-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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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를 중퇴한 뒤 권투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공사판 막일꾼이 되었다 결혼을 하자 더욱 어려워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떨어먹고 도로 서울로 와 다시 공사판 급성신부전증이라 했다 삼남매 장학적금을 해약하고 두 달 밀린 외상 쌀값 뒤로 무허가 철거장이 날아왔다 산으로 가 목을 맸다 내려앉을 땅은 없어 재 한 줌으로 다시 허공에 뿌려졌다 나이 마흔둘 우리 시대의 우울한 초상이 아닐 수 없다. 구구절절한 한 사내의 서사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내려앉을 땅도 없어 허공에 목을 맸다는 시인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땅의 갑남을녀 중에는 이와 비슷한 궁핍과 결핍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의 책임일까. 빈익빈 부익부라는 사회현상이 낳은 가슴 아픈 얘기다.
시
등록일 2017.03.05
게재일 201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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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개 한 마리처럼 나는 네 개의 발을 가진다 흰 돌 다음에 언제나 검은 돌을 놓은 사람 검은 돌 다음에 흰 돌을 놓는 사람 그들의 고독한 손가락 나는 네 개의 발을 모두 들고 싶다. 헬리콥터처럼 공중에 그들이 눈빛 없이 서로에게 목례하고 서서히 일어선다 마침내 한 사람과 그리고 한 사람 바둑은 흑백의 돌을 차례로 번갈아가며 놓는 게임이다. 시인은 이런 기본적인 원리에 갇혀있기를 거부하면서 흰돌을 연달아 두 번 놓거나 하는 일탈을 떠올리며 인간의 규범과 규칙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발을 땅에 디디지 않고 공중에 네 개의 발을 모두 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날 수 없는 인간은 바둑을 번갈아 놓아야 하는 원리처럼 인생이라는 게임의 규칙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한계에 이르고 만다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3.02
게재일 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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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소금창고를 가지고 있다 낡고 오래된 창고 안에는 소금덩이들이 무더기로 부려져 있다 소금창고를 물려받던 열댓 살 무렵 소금 저장법을 알 리 없는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녹아 흘러버리는 소금을 어쩌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 탓에 소금물은 그렁그렁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그녀가 아들을 잃고 남편이 떠나던 이십여 년 전 무심코 열어본 소금창고에서는 짜디 짠 소금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창고의 문은 여간 닫히지 않았고 곁에 있던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그녀의 눈 속에는 소금창고가 있다 이맛살과 눈주름이 폭삭 내려앉은 창고 안에는 넘심넘실 녹아나가는 소금물을 꾹꾹 눌러 말린 소금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누렇고 검게 그을린 소금덩어리 아들을 잃고 남편을 먼저 보낸 이 시 속 서사의 주인공 여인에게 소금
시
등록일 2017.03.01
게재일 201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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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아침 억만 개의 햇살 쏟아져내리고 어디서 왔는지 그 여우바람, 햇살을 흔들어 수면 가득 물보석판을 벌인다 물보석이 탐이 나는지 넋 놓고 바라보던 잉어들 그만 눈이 먼 잉어들 잉어들 잉어들 그걸 또 목에 걸고 싶어 여기저기 연이어 튀어오른다 제 몸이 온통 금덩이인 황금 잉어들이 눈부신 이 아침 수곡지에서 시인은 잉어 이야기를 하면서 내심 인간을 떠올리고 있다. 황금 잉어는 그 자체가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을 자아내는 존재다. 저수지의 물과 햇살과 바람이 어울리면서 그 황홀경은 극에 달한다. 그러나 그 황홀경의 이면은 헛되다라는 시인의 인식이 깔려있다. 인간의 모든 순간들은 어쩌면 황금잉어처럼 황홀경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거대한 환영에 사로잡혀 있고, 그 황홀경을 위해 한 생을 바치는 우매하기
시
등록일 2017.02.27
게재일 201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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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내리고 할 일이 없어 눈을 맞으며 골목을 어정거린다 술 잘 먹던 친구도 지난 가을 돈 벌러 객지로 떠나고 그 집 앞을 지나니 썰렁한 빈집에 눈이 자꾸 가네 소주 대병 받아놓고 주거니 받거니 신세타령 옛날얘기 농사얘기 많이도 했었는데 서울 어디에서 다리 뻗고 잠이나 잘 자는지 텅 빈 농촌의 풍경과 현실은 적막강산이 아닐 수 없다. 바쁜 농사철이 지나고 겨울로 접어들면 농촌은 황량한 공동묘지와 같다는 말은 지나친 말일까. 젊은이들은 일을 찾아 떠나고 남아있는 노인네들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움츠리고 소주 대병 받아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야말로 빈집 투성이의 농촌은 무덤과 같은 곳이라는 시인의 인식에 깊이 동의하면서 그들의 신세타령에 귀 기울이고 싶은 차가운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7.02.26
게재일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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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을 산 나비 한 마리가 내 손에 지친 몸을 앉힌다 천 년 전 앙코르와트에서 내 손이 바로 꽃이었다는 것을 나비는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그 해에 내가 말없이 그대를 떠났듯 내 몸 안에 사는 방랑자 하나 손 놓고 깊은 노을 속을 다시 떠난다 뜨겁고 무성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뒤뜰로만 돌아다니는 노란 나비 흙으로 삭아가는 저 큰 돌까지 늙어 그늘진 내 과거였다니! 이제 무엇을 또 어쩌자고 노을은 날개를 접으면서 자꾸 내 잠을 깨우고 있는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라는 천 년 전 유적지에서 시인은 영원의 시간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지금 앞에 날아와 앉는 나비 한 마리는 천 년의 시간을 살았고 천 년 전 꽃이었던 나의 손과 해후하고 다시 이별한다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적지에서의 저녁은 천 년 동안의 망각
시
등록일 2017.02.23
게재일 201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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