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경 림

하얀 눈 위에

작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

빨갛고 가녀린 발이 뿅뿅뿅 밟고 갔으리

언덕이 끝나는 곳에서

발자국은 끝나고

새파란 허공에

새 한 마리 해맑은 실루엣으로 찍혀 있다

내 발자국 끝나는 곳에서 나도 저처럼

둥실 떠올라

허공에 그림자로 찍힐 수 있을까

해맑기는커녕 검고 칙칙한 얼굴이 되어

누더기로 허공에 남을까

그것이 두렵지만

창작과비평 시집 제 1권은 신경림 시인의 `농무`다. 평생 민초들의 상처와 아픔을 절절한 가슴과 목소리로 민족시를 써온 시인이 허공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한 생을 성찰하면서 허공에 발자국을 찍는 새처럼 깨끗하고 해맑게 생을 마감할 수 있을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본다. 치열하게 살아온 한 생이지만 혹여 검고 칙칙한 얼굴로 누더기로 허공에 남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빠져듦을 본다. 노 시인의 겸허한 목소리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