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운 식

눈은 내리고 할 일이 없어

눈을 맞으며 골목을 어정거린다

술 잘 먹던 친구도 지난 가을

돈 벌러 객지로 떠나고

그 집 앞을 지나니

썰렁한 빈집에 눈이 자꾸 가네

소주 대병 받아놓고 주거니 받거니

신세타령 옛날얘기 농사얘기 많이도 했었는데

서울 어디에서 다리 뻗고

잠이나 잘 자는지

텅 빈 농촌의 풍경과 현실은 적막강산이 아닐 수 없다. 바쁜 농사철이 지나고 겨울로 접어들면 농촌은 황량한 공동묘지와 같다는 말은 지나친 말일까. 젊은이들은 일을 찾아 떠나고 남아있는 노인네들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움츠리고 소주 대병 받아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야말로 빈집 투성이의 농촌은 무덤과 같은 곳이라는 시인의 인식에 깊이 동의하면서 그들의 신세타령에 귀 기울이고 싶은 차가운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