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병 호

오래 전에 지운 아버지의 얼굴이

내 아이의 얼굴에 돋는다

밤마다 강 건너에서 거칠게 흔들던

몸짓이

날 물리치려던 것이었는지, 부르려

던 것이었는지

어둔 꿈길을 막니처럼 아릿하게 거

스르면

겨울 천정에 얼어붙었던 철새들은

그제야 낡고 깊은 날갯짓을 한다

불온한 전생(全生)이 별자리를 밟고

서녘으로 흐른 사이

달이 지고 해가 뜨기 전의 지극(至

極)이

강물에 닿아 문득 시들어버린 내가

잎 진 나무로 강가에 몸을 잠그면

가지 끝에 옮아 피는 앙상한 길

내 몸 빌려 검게 꽃 피는 아버지

모두가 한 물결로 펄럭인다

생은 몇 번씩 몸을 바꿔

별이었다가 꽃이었다가 닻이었다가

유곽이었다가 성당이었다가

어제처럼 늙은 내 아이가 되는데

새벽이 오는 변방의 강가에 기대어

아버지와 아이의 멸망을 지켜볼 뿐

나는 차마 묘석처럼 깜깜하지 못했

시인은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의 아이의 얼굴에 투영되어 있음을 본다. 천년을 건너온 이 지울 수 없는 운명의 유전을 깊이 깨닫고 있다. 인생은 몇 번씩 몸을 바꿔 별이었다가 꽃이었다가 닻이었다가 유곽이었다가 성당이 된다는 시인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렇듯 유전하는 것이 인생이다. 아버지와 나와 아이에게로 흘러오고 흘러가는 지울 수 없는 운명의 한 꼭지를 들여다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