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 영

신림 7동, 난곡 아랫마을에 산 적이 있지. 대림동에서 내려 트럭을 타고 갔던가, 변전소 같은 버스를 타고 갔던가, 먼지 자욱한 길가에 루핑을 이고 엎드린 한칸 방, 누나와 조카 둘과 나의 보금자리였지. 여름밤이면 집 앞 실개천으로 웃마을 돈사의 돼지똥들이 향기롭게 떠가는 것을 보며 수제비를 먹었지. 찌는 듯한 더위에 못 이겨 야산에 오르면 시골처럼 캄캄하던 동네, 개천 건너 그 동물병원 같은 보건소는 잘 있는지 몰라. 눈이 커다란 간호원에게 매일 아침 붉은 엉덩이를 내리고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대씩 맞고 다녔지. 학교가 너무 멀어 오전 수업을 늘 빼먹어야 했던 집. 아니 결핵을 앓던 나를 따스히 보살펴 주던 집. 겨울이면 루핑이 심하게 울어 조카의 어린 몸을 난로처럼 안고 자던 방. 아니 봄을 기다리던 누님과 나의 지상의 좁은 방 한칸.

가난하고 어려웠던 지난 시절, 이 땅 어디에선들 이러한 삶의 풍경들이 없었을까. 허물어져가는 방 한 칸, 볼품없는 생의 여건들 속에서 아이들은 해맑게 자라나고, 찌든 가난이 대물림되는 그 힘겨운 생활 속이었지만 거기엔 사람다운 따스함과 어떤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는 힘이 스며 있었다. 불편함과 결핍 속에서도 희망과 기다림이 얽혀 있었던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