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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국사 책을 읽으며 머리 아픈 이유는 내 탓이지만 내 아버지 탓이기도 하다 그 아버지의 끝없는 아버지 그들 탓이기도 하다 이렇게 첩첩산중의 이야기만 하는 것도 이야기만 하게 만든 것도 내 탓이지만 아버지와 그 끝없는 아버지 그들 탓이기도 하다 뒷날 내 아들이 국사 책을 읽으며 머리 아플 이유도 아들 탓이지만 그 아들의 못난 아버지인 내 탓이기도 하다 고난의 아픈 역사는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음을 시인은 가족사에서 찾고 있음을 본다. 근본을 어찌 부정할 것인가.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를 탓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치열하게 살아오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의 자세를 읽을 수 있다. 지울 수 없는 혈흔과 같은 내림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에 눈을 두어야하지 않을까
시
등록일 2017.11.16
게재일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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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순결하다 누가 투명한 보자기에 몰래 비밀 하나를 써서 감추고 살짝 돌아서는 모습이 깡총한 것처럼 나는 고독하다 소유하지 못한 세상의 더 많은 것들을 욕망하다가 갑자기 솟구치는 음악이 위태로운 것 처럼 나는 불온하다 기억의 명료한 서랍 속에서는 아직도 사각사각 흰 눈이 내리는데 내려서 아주 질서정연하게 쌓이는데 가끔은 마른 풀냄새 같은 걸 안고와서 이쁘게 풀어 놓고 가는 바람을 바람의 속내를 마주 보지 못하고 짐짓 돌아서 있어야 하는 지금 나는 거짓이다 시인은 자신이 고독하고 불온하다고 말하면서 순결하다고 말한다. 자기고백을 시작하는 이 시에서 시인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목소리를 듣는다. 세상은 순결의 가면을 쓰고 불온하고 고독한 상태에서 태연하다는 것이다. 아무도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지
시
등록일 2017.11.15
게재일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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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설산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물속에 숨어 있는 소금을 받아내는 평생 노역이 있다 소금이 무한량으로 넘치는 세상 소금을 신이 내려주는 생명의 선물로 받아 소금을 순금보다 소중하게 모시며 자신의 당나귀와 평등하게 나눠 먹는 사람이 있다 시인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읽혀지는 참 착한 시가 아닐 수 없다. 소금이라는 매체를 통해 서로 나누고 공유하며 나란히 평행하는 삶의 자세를 소개하면서 평생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정신을 읽는다. 안분지족(安分知足), 세상을 향해 던지는 고요한 울림이다.
시
등록일 2017.11.14
게재일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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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줄기 쩍쩍 얼어붙는 판장에서 힘줄 시퍼런 명태 뛴다 대진 가자 동해가 길을 막고 몇날 며칠 눈이 지붕을 덮으면 세상 모르고 싸다니는 아이들 집안에 몰아넣고 겨울과 맞서는 북쪽 포구 허름한 술집에서 눈물 콧물 훌쩍이며 언 속에 소주 한 양재기씩 털어넣고 찌개 냄비에 얼굴을 묻었다가 돌아오자 세상을 뚫고 돌아오자 온천지에 폭설이 내려 길이 닫히고 소통이 단절된 듯한 북쪽 포구에서 시인은 쓸쓸한 마음을 풀어내고 있다. 변방이 주는 고적함과 그리움이 깊음을 본다. 허름한 항구의 선술집에서 쓸쓸한 세상을 소주잔에 타서 마시며 세상을 바라보자고 한다. 아니 세상을 뚫고 돌아오자고 한다. 폭설에 갇힌 항구도 사람들도 소주 몇 잔 마시며 세상을 바라보는 쓸쓸한 풍경 하나, 그림 하나를 본다.
시
등록일 2017.11.13
게재일 201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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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우리를 떠나면 빈집이 된다 우리가 집을 떠날 때도 빈집이 된다 우리는 자주 떠나가려 하고 떠나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집은 아직도 빈집으로 있는데 그래도 그리움이 조금은 남아 있다 그러니 빈집은 완전 빈집이 아니다 그 속에는 아직 옛날 화려함이 남아 있고 빈방마다 그때의 화려한 꿈들이 들어 있다 빈집은 결코 빈집만은 아니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지붕 위에도 아직 참새들이 살아 있다 그 옛날을 노래하며 집을 지키는데 그래서 빈집은 아주 빈집이 아닌데도 집은 지금껏 빈집으로 남아 있고 하늘에는 빈 하늘만 남아 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전편에 스며있는 이 시는 고향집에서의 추억과 잊지 못할 서사들을 반추하고 있음을 본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그리움은 가슴 속에 일렁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힘겹
시
등록일 2017.11.12
게재일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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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운동화는 대문 옆 담장 위에 말려야지 우리 집에 막 발을 내딛는 첫 햇살로 말려야지 어른들 신발은 지붕에 올려놔야지 개가 물어가지만 않으면 되니까 높고 험한 데로 밥벌이하려 나가야 하니까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셨지 북망산천 가까운 사랑방 툇마루에 당신은, 단신 흰 고무신을 말리셨지 노을빛에 말리셨지 어둔 저승길, 미리 넘어져보는 거야 달빛에 엎어놓으셨지 저물어도 거둬들이지 않으셨지 마지막은 다 밤길이야 젖은 신발이 고꾸라져 있었지 신발을 제재로 한 재미나고 의미가 깊은 시다. 아이들의 신발은 깨끗하고 맑은 첫 햇살 드는 담장 위에 말리고 어른들의 신발은 높고 험한 데로 가서 밥벌이 해야하니 높은 지붕 위에 말리고. 머지않아 저승길 가실 할머니 신발은 사랑방 툇마루에 말려야한다는 시인의
시
등록일 2017.11.09
게재일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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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물한리 가네 물한리 가서 이 세상 쏟아내지 못한 말 쏟으려 하네 시원의 터 거기 나 물한리 가네 물한리 가서 물 속에 잠든 그리움 건져 올리는 물까마귀 되려네 꼬리 흔들던 다람쥐는 볼이 볼록한 채 달아나고 살집좋은 들고양이 눈을 빛내는 물가 아직도 공중을 빙빙 도는 저 가마우지 눈을 피해 가슴 속 뜨거운 말 담아 넣는 색짙은 날개짓이 되려네 물한리 한줌 소리없이 풀꽃이 피고 물한리 물한리 아득한 당신에게 흘러갈 나 낮은 물소리 되겠네 이 시에서 말하는 물한리는 존재의 해방이 있는 공간이며 자유롭고 안전한 공간을 일컫는다. 현실의 힘겨움이나 결핍, 고통,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안식의 공간이고 생명의 활기를 공급해주는 공간이다. 현대인들에게 물한리는 염원의 공간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유형무형의 물한
시
등록일 2017.11.08
게재일 20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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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만의 것이어야 한다 너는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 너는 나만을 가져야 한다 나는 너만을 가져야 한다 숲이 한 마리의 새만을 품지 않듯 작은 새도 하나의 숲에 머물지 않는다 구름이 지나면 바람이 일고 바람이 일어나면 구름도 길을 떠난다 나는 너를 놓아주어야 한다 나의 형틀에 갇힌 새여 너의 형틀에 갇힌 나 또한 놓아다오 남녀의 사랑을 비유적으로 쓴 소유의 슬픔에 대한 이 시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인간의 욕망은 집요하고 가끔은 절대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절대 놓아 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사랑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놓아주고 풀려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을 지배하는 이념이나 사상도 결코 불변의 가치를 가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극단의 사랑은 참다운 사랑이 아니다.
시
등록일 2017.11.07
게재일 20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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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허공을 무리지어 휘저어도 흰 피 토하는 그리움 뿐 산자락 내리 골 넓은 벌 자리하여 허무의 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몸부림은 끝내 사라질 바람의 울음일 뿐 불붙어 뜀박질하는 단풍들 지난 삶 제 모습 돌아보며 내쉬는 한숨 저것은 내 삶을 응시하는 서걱임일까 헤아릴 수 없는 소리의 외침일까 억새 비탈에 서서 시인은 서걱이는 울음소리를 듣는다. 살아오는 동안 가슴에 쌓여 울음이 된 상처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하얗게 꽃을 날리며 울고 있는 억새를 보면서 하나씩 풀어져 같이 날리어가는 느낌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허무하기 짝이없는 인생살이인 것을 아옹다옹 더 가지려고 더 나아지려고 발버둥쳤던 지난날들을 바람 부는 그 언덕에서 뒤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게 우리네 한 생이 아닐까.
시
등록일 2017.11.06
게재일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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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우주선 군단이 하늘을 낮게 지나가듯 구름떼가 일제히 이동하다 대책 없는 사물들 죄다 비명 지르고 빛을 잃다 네 말처럼 이 세상은 죄가 없다 천둥벌거숭이 하나 두 팔 벌리고 사방 뛰어다닌다 외계인의 재앙영화 같은 얘기로 시작되는 이 시는 존재의 절망에 대해 쓰고 있음을 본다. 우리는 천둥벌거숭이인지 모른다.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거나 망각한 채 두 팔 벌리고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는 것처럼 방향성과 목적성 없이 어디론가 마구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
등록일 2017.11.05
게재일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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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내 앞에 있었다 지진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강력한 쓰나미의 해일이 지구를 덮쳐 버렸다 오 맙소사! 우리는 재앙의 비를 사랑이 비라고 고쳐 불렀다 아무리 사랑의 비라고 고쳐 불러도 사랑은 대답이 없었다 폐허의 가슴과 가슴이 지붕을 이뤄 오래 폐허로 살았다 당신은 어느 날 내 몸의 폐허까지 온몸에 휘감고 해일에 휩쓸려 몸 날렸지만 내 몸부림치는 폐허는 더 터를 넓혀 갔다 흔들흔들흔들흔들 아직도 여진은 계속 지진, 해일, 폐허 같은 시어를 동원해 사랑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처참한 재해의 재앙 같은 것이 밀려오는 비극적 사랑을 말하면서 동시에 그 아픔들을 견디고 이겨내어 구원에 이르는 성숙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본다. 사랑은 비극인 동시에 희극이며 아무리 상처가 깊어도 해볼만 한 것이라는 느낌을 안겨주
시
등록일 2017.11.02
게재일 2017-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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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 둥근 금줄이여 어느 하루 편한 날 없었다 빛이 끝나는 그곳을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보아도 잴 수 없는 거리여 하늘의 천둥 번개도 바다의 해일도 지우지 못하는 내 마음 수평선이여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시인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경계선을 말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어 놓은 선은 도저히 다가가서 들어설 수 없는 단절의 관계를 의미한다. 시인은 그러한 냉엄한 관계를 상징하는 직선을 지워내고 화해와 공유의 둥근 선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11.01
게재일 20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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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까지 갈 거야 그리운 서울 가는 길 부드러운 산과 들, 밥알 같은 마을 위에 깨끗한 눈물처럼 햇살이 맺힐 때 그래 형제들아 이대로 신의주까지 갈 거야 개여울의 물살처럼 가슴은 흔들리고 그날이 오면 한라에서 백두 삼수갑산서 목포까지 걷기대회가 열릴 거야 나팔이 울리고 장구가 덩더쿵거리고 꽹과리 신이 나면 남에서 북에서 얼싸안고 뛸 거야 토끼풀과 머루를 따먹으며 다디단 황토로 배를 채우며 끝에서 끝까지 걷고 걸을 거야 외줄기 서울길 치달리다 보면 철조망도 포고문도 뚫어버리고 화약고 지뢰밭 밀어버리고 말 달리 듯 한없이 갈 것만 같아 죄어오는 숨막힘 터질 듯 할 거야 서울에서 좀 더 북쪽으로 내달으면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 철조망이 있고 남북을 잇는 도로는 막혀있다. 시인은 서울을 거쳐 북쪽으로 달려가 남북
시
등록일 2017.10.31
게재일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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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려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어찌 보면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들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추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가을갈이를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데간데 없었다 불꽃들도 흙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는 어느새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 관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한 웅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고추밭에서 익은 늙은 호박이 검은 벌레들에게 제 살갗을 다 주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죽
시
등록일 2017.10.30
게재일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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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전에 내 몸이었던 것이 땀이 되어 나를 비집고 나온다 표정 순하던 내 얼굴들이 물이 되어 흘러내려 사라진다 내 얼굴은 물의 흔적이다 당신의 반갑고 서글픈 몸이 여름 산백합으로 향기로운 것도 세상의 이치로는 무리가 아니다 반갑다, 밝은 현실의 몸과 몸이여 아침 풀이슬에서 너를 만나고 저녁 노을 속에서 너를 보낸다 두 팔을 넓게 펼치면, 어디서나 기막히게 네가 모두 안아진다 언제고 돌아갈 익명의 나라는 지금쯤 어디에서 쉬고 있을까 잠시 전에 내 몸이었던 것, 또 떠나고 잠시 전에 내 몸이었던 것이 땀이 되어 나로부터 이탈한다는 것은, 잠시 전의 내 몸이 잠시 뒤에는 주검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까지 가정한 표현으로 읽을 수 있는데 이것은 시인의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낳은 것이다. 영원이라는 무변의 시간
시
등록일 2017.10.29
게재일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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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방향에, 모든 시간에 존재하고 그 사랑으로 하여 끝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정한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이 시에서 시인이 의도하는 것은 비단 사랑하는 사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것에라도 적용하고 있음을 본다. 미미한 이슬 한 방울에도, 산자락에 몰래 피어난 풀꽃 한 송이에도 시인의 그런 순정한 마음은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10.26
게재일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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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아직도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삶을 한번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 온갖 야한 체위로 성애를 조각한 사원, 초월을 기쁨으로 이끄는 계단 올라가면 영원한 바깥을 열어주는 문 이 있는 그곳 고향으로의 귀환은 누구나 염원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이고 치유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삶을 한번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이라고 말한 시인의 심중에서 우리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고향은 영원한 바깥을 열어주는 문이 있는 곳이라는 표현에서 고향은 머물지 말고 떠나가라고 일러주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낀다. 세상에 나가 상처받고 지칠 때 돌아오라는 고향의 말인지 모른다.
시
등록일 2017.10.25
게재일 201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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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내리다 발길을 거둔다 새들은 젖은 둥지 박차며 하늘 깊이 날아오르고 잎새 가득 단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줄지어 미끄러져내린다 그 사이로 작은 용수철들처럼 멧새 튕겨오른다 느릿느릿, 또는 빠른 걸음으로 바람이 지나간다 구름을 떠밀면서 풀숲의 빗물을 떨어뜨리면서 이따금 어떤 바람은 바위와 돌들 엎드려 잠든 길들도 흔들어 깨운다 비 갠 뒤 산길을 걸으며 싱그럽고 깨끗한 생명의 세계가 펼친 풍경 하나를 그려내고 있다. 함초롬히 되살아나는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는 무겁고 답답한 인간 세상과 다르다. 가볍고 신선하고 정직하고 순수하다. 생명감 넘치는 산길을 바짓 가랑이 적시며 걷고 싶은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7.10.24
게재일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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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사기와 담배꽁초와 소주잔 틈에서 사랑하는 친구들이 잠들어 있다 멱살 움켜잡던 시퍼런 분노도 소주잔에 쓰러지던 서러운 눈물도 개나리 고개 달밤도 지나고 우리는 간다. 가슴 깊이 출정가 부르며 돌아오지 않으리 결코 봄과 함께 아니라면 결코 사랑하는 여자여, 기다리지 말라 돌아오지 않으리 결코 결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시대의 치열한 투쟁의식이 전편에 깔린 작품이다. 출정가를 부르며 투쟁의 현장으로 나서던 시인의 비장한 결의를 읽는다. 봄과 함께 아니라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자신의 한 생을 시대의 변혁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바치겠다는 강단진 정신을 본다.
시
등록일 2017.10.23
게재일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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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 옥수수밭 위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맨손으로 일군 땅 위에 금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옥수수밭 옆에 서너 살짜리 여윈 아이 업고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젊은 아기엄마를 보았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아이를 낳아서 얼마나 힘들게 키웠을까 혼자 그 생각을 했다 고난의 시절을 함께 걸어오지 않은 나는 진정 이들의 벗인가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하는 이들과 험난한 길 함께하지 않은 나는 이들의 형제인가 그 생각을 했다 오늘 이렇게 손잡고 웃지만 내일도 함께 웃으며 가진 걸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벗인가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았다 평양으로 가는 길 폐허의 하늘 위에 뜨거운 노을이 지고 있었다 평양에서 열렸던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여했던 시인이 평양 교외에서 마주친 북한여자를 보며 느낀 것을 쓴 민족시다.
시
등록일 2017.10.22
게재일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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