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태 수

가랑비 내리다 발길을 거둔다 새들은

젖은 둥지 박차며 하늘 깊이 날아오르고

잎새 가득 단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줄지어 미끄러져내린다 그 사이로

작은 용수철들처럼 멧새 튕겨오른다

느릿느릿, 또는 빠른 걸음으로

바람이 지나간다 구름을 떠밀면서

풀숲의 빗물을 떨어뜨리면서

이따금 어떤 바람은 바위와 돌들

엎드려 잠든 길들도 흔들어 깨운다

비 갠 뒤 산길을 걸으며 싱그럽고 깨끗한 생명의 세계가 펼친 풍경 하나를 그려내고 있다. 함초롬히 되살아나는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는 무겁고 답답한 인간 세상과 다르다. 가볍고 신선하고 정직하고 순수하다. 생명감 넘치는 산길을 바짓 가랑이 적시며 걷고 싶은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