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록
대문 옆 담장 위에 말려야지
우리 집에 막 발을 내딛는
첫 햇살로 말려야지
어른들 신발은 지붕에 올려놔야지
개가 물어가지만 않으면 되니까
높고 험한 데로 밥벌이하려 나가야 하니까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셨지
북망산천 가까운 사랑방 툇마루에
당신은, 단신 흰 고무신을 말리셨지
노을빛에 말리셨지
어둔 저승길, 미리 넘어져보는 거야
달빛에 엎어놓으셨지
저물어도 거둬들이지 않으셨지
마지막은 다 밤길이야
젖은 신발이 고꾸라져 있었지
신발을 제재로 한 재미나고 의미가 깊은 시다. 아이들의 신발은 깨끗하고 맑은 첫 햇살 드는 담장 위에 말리고 어른들의 신발은 높고 험한 데로 가서 밥벌이 해야하니 높은 지붕 위에 말리고. 머지않아 저승길 가실 할머니 신발은 사랑방 툇마루에 말려야한다는 시인의 말에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생을 관조하는 시인의 혜안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