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이 열릴 때마다 황홀히 황홀히 그대 손길이 나를 애무한다 철퍼덕 철퍽 무너지는 나 점점 굳어가는 내 몸뚱이 문이 열릴 때마다 그대 손바닥은 부드러운 칼날이 되어 문이 열릴 때마다 나를 도려내는 그대 문이 열릴 때마다 나는 벗겨지고 잘린 비명도 없이 문이 열릴 때마다 나는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얼굴 굳어가며 나는 점점점 졸아든다 자칫 에로적인 성향의 시로 읽혀질지 모르나 시인은 새로이 열리는 세계와의 끝없는 대립과 단절을 얘기하고 있다. 새롭게 대하는 세계는 몸뚱이를 마비시키고 칼날처럼 예리하게 다가오는 공격적 횡포의 대상인 것이다. 시인에게 이러한 세계와의 불협화음이나 마찰은 그가 겪었던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의 비극성이 그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8.16
게재일 2017-08-17
댓글 0
-
혼자 있으면 중후한 시간의 몸, 몸들이지만 모아놓으면 구겨지고 볼품없어지고 뒤집어진 내 뒷머리처럼 통속하다 누런 모자 쓰고 비닐 완장 차고 비상교육 받는 새벽 민방위 훈련장에서 몸서리 쳐지는 이 중년 몸이 세상의 화엄 만드는 화음이라 믿었는데 이제는 소리가 될 수 없는 불협화음의 몸, 몸들 몸이 칼 되어 오와 열 맞추던 시절 있었는데 앞줄 옆줄 아무 줄도 맞춰 설 수 없는 세월 왔다 후줄근한 몸으로 내가 나를 찾아왔다 시인은 의욕적이고 강단졌던 삶의 열기와 쇠라도 녹일듯 했던 탄탄한 몸을 가졌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이제는 의욕도 줄어들고 몸도 느슨하게 탄력을 잃어버린 중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하늘의 순리인 것을. 비록 불협화음의 몸을 품고 몸서리 쳐지는 중년의 나이를 건
시
등록일 2017.08.15
게재일 2017-08-16
댓글 0
-
젊어 떠난 지손(支孫)들 달구소리로 낙향을 아뢰는 선산 소낭구를 지게작대기로 받치고 선 늙은 종손이여 쑥대밭의 위토탑과 무너진 사당 아래 맥도널드 광고판이 세워지는데 어디에 무릎을 꿇고 영천강 애진 은발의 갈대처럼 울며 고할 것이냐 쓰러지는 가업과 절손된 가문의 종손 농부여 영천강 북천 물소리가 키우는 커다란 적막 속으로 또 무슨 핑계로 천둥은 치는가 놋날 다루듯 소낙비는 치는가 너무 높은 봉분을 걱정하며 종손은 또 애가 마른다 천둥 그늘을 밟고 서서 우는 선산 굽은 소낭구 쑥대밭의 위토탑과 무너진 사당 아래 맥도널드 광고판이 들어서는 아이러니가 지금의 농촌 현실이다. 세계적 농업자본주의 폐해가 농부시인의 삶의 현장을 깊이 들이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애쓰고 피땀을 흘려도 수입산 외국농산물 때문에 갈수록
시
등록일 2017.08.13
게재일 2017-08-14
댓글 0
-
내 안에는 폐(閉)의 기능을 상실해버린 낡은 문 하나가 살고 있다 빗장 지를 휜 숟가락마저 부식된 지 이미 오래인 위태한 문 어긋나고 뒤틀려 안팎의 경계가 지워져버린 문 문짝을 땐다 반쯤 빠져 휘어진 중못 새로 갈고 찍찍 벌어진 문설주도 손보고닳아 내려앉은 모서리에미싱기름 몇 방울 목 축여무쇠 문고리 한 벌 암수로 박아놓으니제법 말짱하다문을 연다, 저렇듯 환한개(開)!문을 닫는다, 이렇듯 완고한폐(閉)!시인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침묵 속에서 완전히 자신을 봉인하고 외부와의 단절을 추구하는가 하면 어디로도 소통하고 열리는 자아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잘 열리지도 잘 닫히지도 않는 어중간한 문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한 침묵에 들도록 닫히는 문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완전한 문을 염원
시
등록일 2017.08.10
게재일 2017-08-11
댓글 0
-
기우뚱, 집이 혼자서 중얼거리면 벽에 그어 놓은 치부책에서 화투짝이 난다. 손님이 패를 돌리자 뒷방에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패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간 자국을 따라 뱀이 집안의 내력을 또아리 틀고, 일찍부터 술 취한 쥐들이 천장에서 몽상의 발자국 소릴 내고, 새들이 물어온 지푸라기를 따라 난 산길에는 돌맹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겨울 저녁내 살 비빈다. 시인이 설정한 빈 집에는 뱀과 쥐와 새들만 사는 것이 아니다. 외롭게 한 생을 마감해가는 노인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을씨년스런 풍경 속에서 시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빈집이라고 가만히 정체되어 있고 시간이 멈춰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부단히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한 공간으로서 빈 집도 의미있는
시
등록일 2017.08.09
게재일 2017-08-10
댓글 0
-
오동보라가 좋으세요? 모본단 안감은 얇아야 하느니 힘은 싱이 잡아주는 거제 시침해서 창구녕으로 팔 빼는데 참 딱한 노릇은 팔이 넷인 거라 시작이 서툴면 울기만 하제 편치 몬하믄 다려도 주름지는 거라 앗! 따가버라 바늘이 피맛에 길드는갑다 시대가 변해도 등솔은 진솔로 박아야 하제 진동은 따라 곧아지고 자로 잰 드키 썩뚝 마르믄 손톱여물 써는 거라 가위 밥 주고 도련 따라 섶코 슬쩍 들 줄도 알아야 하느니 숙고사 물모시도 다를 바 없느니 옷 한 벌로 평생 사는 짐승들은 좋겠어요 음마, 이 가시나 무녀리네 시 전체에 얽어매는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가 정겹고 재밌다. 요란하고 현란한, 칼러풀한 색깔과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담백하고 수수한, 느리고 참참히 손길을 보태는 재래식 바느질의 과정을 섬세한
시
등록일 2017.08.08
게재일 2017-08-09
댓글 0
-
50년 전 떠났던 고향 그때보다도 더 초라해 시골 마을 한적한 동네 한복판 궁전같이 크기만 했던 기와집은 아버지가 태어나고 그리고 또 우리 형제자매가 태어나서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던 곳 증조부가 묻힌 뒷동산은 더 울창한데 거의 쓰러져가는 고향집엔 낯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산다 그리운 옛집에 대한 회상에 잠긴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 본다. 오래된 고택에는 가족사가 심어져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나도 태어나 자랐던 정겹고 사랑이 묻어나는 둥지인 것이다 비록 지금은 남의 집이 되어버렸지만 고향집에는 지울 수 없는 가족들의 얘기가 푸르게 살아있는 것이리라. 그리움이 밀려오는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7.08.07
게재일 2017-08-08
댓글 0
-
식구들과 함께 애써 살림 일구던 집이다 조잘조잘 책 읽으며 형제들과 공부하던 집이다 가족들 데리고 제금 난지 십년이 넘는 집이다 어른들 다 돌아가신 지 오래된 집이다 이제는 삼촌들과 아우들의 차지가 된 집이다 옛 식구들 껴안고 문득 살 부비고 싶은 집이다 손으로 두드려서는 문 열어주지 않는 집이다 더는 깊고 두터운 정 주지 않기로 한 집이다 남은 사람들 남은 방 잘도 차지하고 사는 집이다 삼촌들이며 아우들과도 인연 다 끊어진 집이다 그런 줄 잘 알면서도 가끔은 마음 달아오르는 집이다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옛집인데 이제는 남의 집이 된 시인의 옛집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스민 시다. 식구들과 혈육의 정을 나누며 오순도순 살아온 집에는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고 뇌리 속에는 그리운 것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그래
시
등록일 2017.08.06
게재일 2017-08-07
댓글 0
-
비 오시는 꽃밭이 어두워진다 꽃잎에 맺힌 물방울 속, 산과 하늘과 나무와 꽃들이 절벽처럼 에둘러 있다 세계의 문이 닫히듯 물방울 하나 폭 꺼진다 엷은 빛에 기대어 수천 겹 층을 이룬 만상의 색상, 마침내 얇고 어두운 막을 벗어나 꽃밭으로 녹아든다 여러 번 생을 살아도 거듭, 주저 없이 흘러가는 육체들의 검은 강 살붙이여 무변 허공을 질러와 또 점점 부푸는 물방울이여, 더는 매달릴 수 없을 때 누구도 닦아줄 수 없는 물방울 속으로 소리 없이 낯익은 미움이 지나간다 꽃의 발등이 적막하게 물에 잠긴다 생에 대한 미련과 욕망이 혼재돼 있는 시다. 비 오는 꽃밭은 화사함을 잃고 어둠에 잠긴다. 드세게 비가 내리면 여러 상처를 입으며 더 이상 아름다운 꽃밭이 아니다. 우리네 한 생도 그런 것은 아닐까. 참혹하고 적
시
등록일 2017.08.03
게재일 2017-08-04
댓글 0
-
단숨에 밤하늘을 두 쪽 내고 오르는 울음이 있다 누워있던 골목까지 다 따라 솟구친다 몸속에 날선 칼이 있어야만 저렇게 울 수 있을게다 저 울음이 자유로울 동안 모두들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 어둠도 목덜미 물린 채 꼼짝 못하고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도 새파랗게 울던 삐삐주전자도 시도 때도 없이 울던 알람시계도 소리 내지 못한다 울어라 울어 실컷 울어, 고양이만 우는 게 아니다 너도 울고 나도 울지만 한 번도 곁을 주지 않는 울음에는 평생 주인이 없다 한 번도 곁을 주지 않는 익명의 울음, 알 수 없는 울음에 시인의 마음이 가 있음을 본다. 철저하게 익명이면서 고독한 울음만이 듣는 사람을 숨죽이게 하고 짙은 어둠마저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리라. 인간의 근원적인 고립과 고독에 대한 시인의 깊은 인식이 비춰져 있는
시
등록일 2017.08.02
게재일 2017-08-03
댓글 0
-
귀여운 아이 하나가 벌써, 말을 하던가요 `엄마` 저의 일은 땅 위에 눈물 하나를 가만히 놓고 가는 일뿐이에요 라고 하늘에 망망히 웃는 아침 꽃밭가에서 우주의 한 현상이면서 사소한 일의 하나인 이슬 한 방울 내리는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시인의 인식이 참 밝다. 이슬 한 방울도 한 아이가 태어나는 일에 비유하며 생명을 얹어놓고 있다. 그냥 왔다가 햇살에 말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물 한 방울 흘리고 가는 일로 읽어내고 있다. 하물며 이슬 한 방울도 이 땅에 의미없이 왔다 사라지는 일이 아니거늘 우리네 한 생은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있는 일인가.
시
등록일 2017.08.01
게재일 2017-08-02
댓글 0
-
물푸레나무 아래서 너를 만나면 내 손엔 먹과 붓 한 자루 들려 있겠네 물푸레나무 가지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푸른 수액을 받아 햇살에 데워 먹을 갈면 너는 화선지를 곱게 펴고 천년을 족히 선명히 살아 숨쉴 심장에 각인된 붉은 문장 하나 꺼내 적겠네 검푸른 먹물을 찍어 매(梅) 난() 국(菊) 죽(竹) 그런 고매한 그림들 그리지 않아도 나는 좋겠네 물푸레나무 아래서 너를 만나면 네 푸른 노래 한 소절이면 더는 욕심 부리지 않겠네 물푸레나무 아래서 너를 만나면 천년을 마르지 않을 붓 한 자루 꼭 쥐고 절대로 놓지 않겠네 물푸레나무 푸른 수액을 달인 물에 먹을 갈아 글씨를 쓰면 천 년이 지나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티브로 시를 풀어나가는 시인은 이 땅의 여인네들의 아름답고 눈물겨운 전통을 이어가려는 마음을
시
등록일 2017.07.31
게재일 2017-08-01
댓글 0
-
이 세상 왔다 가는데 무슨 묘비가 필요한가 봄에는 진달래 산천 그것이면 족하지 않나 여름에는 흰 구름 산을 넘고 그 하늘만 바라보면 그것으로 족하지 가을에 단풍 들어 나뭇잎 지면 산들바람 불어 먼 산을 돌아나가고 겨울엔 흰 눈 내려 가지마다 꽃인데 그 꽃만 바라보면 되는 것을 돌에 새겨 둔 몇 자의 글귀가 영원히 잠자는 시인에게 무슨 소용 있으랴 경주의 원로시인인 정민호 시인은 평생을 겸허한 무위의 시를 써온 시인이다. 정민호 시인은 우리시대의 진정한 선비이고 비움을 실천해온 시인이다. 어느 시인의 묘비를 바라보면서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데 무슨 묘비가 필요한 것이냐고 반문하며 그 어떤 세속적인 명예나 소유나 욕망도 버리겠다는 마음을 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욕의 삶으로 일관되었던 시인
시
등록일 2017.07.30
게재일 2017-07-31
댓글 0
-
가창골 깊은 숲 속에서 울었다 당신과 나 이렇게 먼 거리를 두고 뼈마디 녹이는 그리움으로 어두운 골짜기에 모가지를 떨구고 흐느끼고 있는지 스산한 바람 끝으로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잠시 머물다 가는 당신은 내 발 목 묶어둔 채 저만치 물러서고 있어야만 하는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뼈마디 녹이는 그리움을 동반한다. 그 한 사람의 부재에 따른 슬픔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어두운 골짜기에 모가지를 떨구고, 흐느끼고, 끝내는 발목 묶어 두고 그리움을 깊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절절한 사랑의 시가 아닐 수 없다.
시
등록일 2017.07.27
게재일 2017-07-28
댓글 0
-
이 악어는 우리가 본 악어 중 가장 크게 여겨진다 과장이 심했기 때문인데 그러나 무섭지 않은 악어 어슬렁거리지 않고 화가의 작업실 한 구석에 놓여 있다 두터운 갑피는 하나하나 다른 모양으로 우리 삶터 곳곳에 숨어 있다가 화가에게 들킨 것이다 쓰레기 하치장, 폐차장, 고물상 어디에나 그는 악어 조각을 찾아다녔다 악어가 될 만하면 뭐든 사 모으고 주워 모았다 온갖 쇠 파이프들 용접하면서 그는 악어처럼 마음과 몸 뒤틀었다 불꽃이 튀어도 악어처럼 악문 쇠 놓지 않은 채 온몸 뒤틀어댔다 시인이 말하는 악어는 무엇일까. 우리들 삶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버려진 쇳조각을 시인은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날카롭고 예리하고 무게를 가진 쇳조각은 문명이 낳은 부산물이다. 무엇이든 덥석 물 것 같은 이 악어는 문명이라
시
등록일 2017.07.26
게재일 2017-07-27
댓글 0
-
추억으로 짜놓은 황금빛 깃털 달콤하던 순간을 쪼려면 매번 따라나온 적막이 빛나는 부리를 지워버리네 그녀의 미래는 풀었다 다시 짜는 과거 조금씩 작아지고 낡아가며 실패한 군대 깃발처럼 솔기가 터져 매일 밤 새로운 부리를 깁고 있다네 그녀의 옷장이 분주하다네 오래된 옷장에는 오래된 시간들과 그 시간들이 녹아있는 추억들이 소복하다. 그 달콤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적막에 쌓인,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들로 쌓여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간들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현실과 희망차게 다가올 미래를 열어가려는 시인에게는 오래된 옷장 속의 낡은 추억들마저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그게 인생이다.
시
등록일 2017.07.25
게재일 2017-07-26
댓글 0
-
단순한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가 감기에 걸렸습니다 단순한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가 호두나무 울타리 속의 그대를 떠올렸습니다 가을이 되면 모과향으로 변하는 그대의 미소 며칠 동안의 기침이 노을로 바뀌자 나는 붉은 이마를 식히기 위해 거리의 저녁들을 마구 쏘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시인이 말하는 단순한 사랑은 무얼까. 문자가 품고 있는 의미처럼 그저 복잡하지 않는 단순한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 바깥의 많은 조건들이나 경우들을 배제한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사랑은 그리 화려하지도 시끌벅적하지도 않다. 가만히 그대를 떠올리고 감기에 들기도 하고 가슴을 붉게 달아오르게 하고 거리의 저녁을 마구 쏘다니게 하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7.24
게재일 2017-07-25
댓글 0
-
낙강아, 목숨처럼 귀한 그대 이름 걸고 고상한 몸짓으로 아무렇게나 북북 시를 써 갈겨 내려 가던 그 많던 시인묵객들 어디로 가버리고 아, 비방 어디로들 떠나버리고 그대는 저렇듯이 찢기고 할퀴고 처절하게 유린당한 채 눈물만 흘리고 있는가 말하라 낙강아! 대답하라 강물아! 유유히 흐름을 이어가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그 속에 녹아있는 깊고 긴 연대기를 읽는 시인의 가슴이 젖어있음을 느낀다. 민족의 반 허리를 면면히 흘러가며 수많은 시대의 민초들의 삶을 건너다 보고 품어주며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해준 강이 낙동강임을 풀어내고 있다. 강변에서 시를 읊던 시인 묵객들도, 총을 쥐고 피흘리던 유월의 병사들도 이제는 모두들 먼 시간의 강둑 너머로 떠나가버린 것을 시인의 젖은 가슴은 되살려내고 있는
시
등록일 2017.07.23
게재일 2017-07-24
댓글 0
-
꽃을 들지 마라 함부로 꽃을 든 죄 천지에 사무쳤으니 저기 진달래꽃 씹으며 문둥이가 온다 시인이 바라보는 이승은 병든 세상이요, 구원과 한량없는 자비가 필요한 화농의 세상이다. 불타는 번뇌의 세상이다. 시인은 그런 세상을 문둥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처절한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을 것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7.20
게재일 2017-07-21
댓글 0
-
내 전생(前生)은 공룡이었을까 독수리이었을까 아니다 아니다 한 방울 빗물이었거나 한 알 모래이었으리 지렁이로 마음 바꿔 살면서 자취 없이 이승을 지우고 흙먼지로 환생하리라 한 생을 살아오면서 가끔은 내 근본에 대한 그리움이랄까,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전생에 나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시인은 겸허한 마음으로 한 알 모래였을 것이라 생각하고 무욕의 정신을 가다듬고 후생에도 미미한 흙먼지로 되살아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얼마나 겸허한 마음인가. 비우고 또 비워내고자 하는 무욕의 시인 정신을 본다.
시
등록일 2017.07.19
게재일 2017-07-2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