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은 경

비 오시는 꽃밭이 어두워진다 꽃잎에 맺힌 물방울 속, 산과 하늘과 나무와 꽃들이 절벽처럼 에둘러 있다 세계의 문이 닫히듯 물방울 하나 폭 꺼진다 엷은 빛에 기대어 수천 겹 층을 이룬 만상의 색상, 마침내 얇고 어두운 막을 벗어나 꽃밭으로 녹아든다 여러 번 생을 살아도 거듭, 주저 없이 흘러가는 육체들의 검은 강

살붙이여 무변 허공을 질러와 또 점점 부푸는 물방울이여, 더는 매달릴 수 없을 때 누구도 닦아줄 수 없는 물방울 속으로 소리 없이 낯익은 미움이 지나간다

꽃의 발등이 적막하게 물에 잠긴다

생에 대한 미련과 욕망이 혼재돼 있는 시다. 비 오는 꽃밭은 화사함을 잃고 어둠에 잠긴다. 드세게 비가 내리면 여러 상처를 입으며 더 이상 아름다운 꽃밭이 아니다. 우리네 한 생도 그런 것은 아닐까. 참혹하고 적막한 우리의 삶을 비오는 꽃밭, 검은 꽃밭에 비유하고 있는 이 시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