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일 근

혼자 있으면 중후한 시간의 몸, 몸들이지만

모아놓으면 구겨지고 볼품없어지고

뒤집어진 내 뒷머리처럼 통속하다

누런 모자 쓰고 비닐 완장 차고

비상교육 받는 새벽 민방위 훈련장에서

몸서리 쳐지는 이 중년

몸이 세상의 화엄 만드는 화음이라 믿었는데

이제는 소리가 될 수 없는 불협화음의 몸, 몸들

몸이 칼 되어 오와 열 맞추던 시절 있었는데

앞줄 옆줄 아무 줄도 맞춰 설 수 없는 세월 왔다

후줄근한 몸으로 내가 나를 찾아왔다

시인은 의욕적이고 강단졌던 삶의 열기와 쇠라도 녹일듯 했던 탄탄한 몸을 가졌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이제는 의욕도 줄어들고 몸도 느슨하게 탄력을 잃어버린 중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하늘의 순리인 것을. 비록 불협화음의 몸을 품고 몸서리 쳐지는 중년의 나이를 건너지만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여유와 생을 관조할 수 있는 눈이 생기지 않았는가. 시인의 다 하지 않은 말을 바람 속에 듣는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