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기 철

기우뚱, 집이 혼자서 중얼거리면 벽에 그어 놓은 치부책에서 화투짝이 난다. 손님이 패를 돌리자 뒷방에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패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간 자국을 따라 뱀이 집안의 내력을 또아리 틀고, 일찍부터 술 취한 쥐들이 천장에서 몽상의 발자국 소릴 내고, 새들이 물어온 지푸라기를 따라 난 산길에는 돌맹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겨울 저녁내 살 비빈다.

시인이 설정한 빈 집에는 뱀과 쥐와 새들만 사는 것이 아니다. 외롭게 한 생을 마감해가는 노인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을씨년스런 풍경 속에서 시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빈집이라고 가만히 정체되어 있고 시간이 멈춰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부단히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한 공간으로서 빈 집도 의미있는 생명의 터전인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