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오스트리아 ②

▲ 아름답게 축조된 비엔나의 성당 내부.

비엔나와 잘츠부르크를 포함해 오스트리아의 몇몇 관광지를 여행했을 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사람들의 여유와 느긋함이었다. 빡빡한 일상을 사는 도시인들이나 상대적으로 느슨한 생활을 하는 시골 사람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어지간한 일에는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는다.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오스트리아인들의 얼굴에는 느긋한 여유로움이 묻어나왔다. 그런 편안한 웃음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스트리아의 노동자와 자영업자, 공무원과 관광업 종사자는 여느 나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한다. 비엔나를 오가는 트램(tram·노면전차)을 아침 일찍 타보면 양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사무직 노동자부터 편안해 보이는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까지를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들은 자신과 식구의 생계를 위해 혹은, 사회적 자아실현을 위해 직장에 출근해 퇴근 때까지 부지런히 일한다. 통상 아침 8~9시쯤 일을 시작해 저녁 5~6시면 퇴근하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일상은 한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많이 다르다. 그들은 야근이나 잔업, 특근이나 철야근무라는 단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런 형태의 작업을 수행하는 오스트리아 노동자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들은 퇴근시간이 되면 직장 상사나 동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집으로 향한다. 평일 저녁과 휴일 대부분의 시간을 식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 푸른 하늘 아래 강이 흐르는 오스트리아의 소도시 풍경.
▲ 푸른 하늘 아래 강이 흐르는 오스트리아의 소도시 풍경.

▲ 정승(政丞)처럼 일하고 정승처럼 쉬는 사람들

출근 때와 마찬가지로 웃는 얼굴로 퇴근한 오스트리아인들은 노동 후에 주어지는 평화로운 여유 속에서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극장을 찾거나, 느긋하게 거실 안락의자에 기대앉아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과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을 감상한다.

절대다수의 오스트리아 노동자들은 저녁 6시 이후엔 일하지 않는다. 그건 조그만 상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24시간 문을 닫지 않는 편의점과 새벽 2~3까지 영업하는 식당은 비엔나에 없다.

담배 없이는 살 수 없는 흡연자라면 해가 지기 전에 여분의 담배를 넉넉하게 사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밤늦도록 이곳저곳으로 담배를 찾아다녀야 하는 낭패를 맛볼 수도 있다. 왜냐? 비엔나 어느 거리에도 저녁 6시 이후 문을 열어두는 담배 가게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농담이나 거짓말 같겠지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기자가 직접 겪은 일이기도 하고.

일과 동시에 휴식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오스트리아 사람들. 그런 풍토를 오랜 역사 속에서 `사회적 약속`처럼 확고하게 만들어놓은 그들이 부러웠다.

비엔나의 자영업자들은 더위가 닥쳐 일하기 힘든 여름이 오면 “고객 여러분, 가족과 휴가를 떠납니다. 한 달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가게 문에 내걸고 1개월을 쉰다.

 

▲ 오래된 건축물과 새로 만들어지는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비엔나 거리.
▲ 오래된 건축물과 새로 만들어지는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비엔나 거리.

한국인의 입장과 상황에서 보자면 터무니없이 과도한 여름휴가지만, 이를 당연시하는 사회적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오스트리아에선 누구도 긴 여름휴가를 문제 삼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즐거운 정승`처럼 일하고 `행복한 정승`처럼 쉴 줄 안다. 사회적 약속으로 굳어진 “일보다 가치우위에 있는 인간적인 삶”이란 명제가 자연스레 작동하는 사회. 비엔나와 잘츠부르크 곳곳에 산재한 예술품과 아름다운 정원, 미려한 건축물보다 바로 이런 사실이 더 감동적이었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이 글은 “한국은 오스트리아보다, 한국의 도시는 비엔나와 잘츠부르크보다 못하다”는 걸 알려주려고 쓰는 게 아니다.

한국 도시에 옛날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지 못한 건 석조건물이 대다수인 비엔나와 달리 나무와 종이가 집을 만드는 주재료였던 탓일 것이다. 그것들은 불에 약한 소재고, 한국은 수백 년에 걸쳐 전쟁의 화마(火魔)를 수십, 수백 차례 겪었던 나라다. 그렇지만, 타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목조건물은 비엔나의 어떤 건물 못지않게 근사하다.

 

▲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국회의사당.
▲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국회의사당.

▲`긴 휴가`가 자연스러운 사회적 분위기 형성돼야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즐기는 `1개월의 여름휴가`도 그렇다. 한국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집중된 정책으로 압축 성장을 이룬 케이스의 국가다.

우리들 의식 속엔 여전히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 안락한 노후를 준비하자”는 성장시대의 슬로건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게다가 국가가 국민의 노년을 보장해주는 시스템도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다. 젊음이 사라진 후 다가올 노년을 생각해서라도 휴식보다는 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살아온 것이다. 한국이 지나온 역사와 현재의 상황은 오스트리아 역사·현실과는 분명히 다른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 부러움까지 감출 필요는 없을 듯하다.

새파란 하늘에서 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깨끗한 도시 비엔나. 근사하게 축조된 국회의사당 분수 앞에서 연인과 밀어(蜜語)를 속삭이던 금발머리 여대생과 며칠 연속해서 담배를 사러가며 친해진 구멍가게 아저씨의 노래하는 듯한 독일어 발음 “당케 쉔~”이 아직도 가끔 떠오른다.

얼굴 어디에서도 그늘을 찾아볼 수 없는 비엔나 사람들의 환한 미소. 그 청량한 웃음을 떠올릴 때면 인간의 삶 속에서 일과 휴식의 적절한 배분을 효과적으로 이뤄낸 그들의 여유와 느긋함이 내심 부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이어지는 뜬금없는 궁금증 하나.

오늘날 우리가 오스트리아 사람들보다 더 많이 일하면서도 턱없이 짧은 휴가밖에 누리지 못하는 건 고려 왕조나 조선 왕조가 합스부르크 왕가보다 무능했기 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것 같다.

 

▲ 비엔나의 깔끔한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한 끼 식사.
▲ 비엔나의 깔끔한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한 끼 식사.

비엔나를 즐기는 색다른 방법

재론의 여지없다. 비엔나는 `미술관`과 `궁전`의 도시다. 서유럽과 동유럽을 잇는 위치적 특성상 한국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를 찾는다. 거기서 독일이나 이탈리아 혹은, 헝가리나 체코로 가는 기차에 올라 유럽일주를 즐기는 것.

다음 여행지로 떠나기 위해 비엔나에 1~2일쯤 머무르는 관광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활짝 핀 장미와 잘 다듬어진 나무들이 반기는 벨베데레 궁전을 찾거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과서에서 봐온 그림을 눈앞에서 직접 만나기 위해 미술관에 간다.

하지만, 이것들은 너무나 틀에 박힌 관광코스가 아닐까. 여행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것.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래 방식으로 여행하며 비엔나를 즐겨보길 권한다.

◆트램을 타고 종점까지 가보기

비엔나는 시내 중심가는 물론 가까운 교외까지 트램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한국의 대도시와 달리 오스트리아의 트램은 땅 밑이 아닌 `땅 위`를 달린다. 굳이 비싼 투어버스나 택시에 타지 않고도 비엔나의 풍경을 고스란히 눈에 담을 수 있다.

비엔나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트램을 타고 1시간쯤 무작정 달려보자. 종점에서 만나게 되는 시원스런 강변 풍경이 당신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새하얀 구름이 머리 위에 떠있는 전원 속을 산책하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휴가 때가 되면 시골마을에서 여유를 즐긴다.
▲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휴가 때가 되면 시골마을에서 여유를 즐긴다.

◆다양한 동서양 요리 맛보기

지구 구석구석까지 진출해있는 중국음식, 어느 나라에서나 고급 요리로 인정받는 일본음식, 고기와 생선은 물론 채소까지 불에 구워먹는 터키음식, 까다로운 절차에 따라 격식을 갖춰 먹는 프랑스음식, 동양인들에겐 생소한 아랍음식, 여기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갈비탕과 김치찌개까지 두루 맛볼 수 있는 곳이 비엔나다.

시간 여유가 있는 여행자라면 골목마다 한두 군데는 있는 `비엔나 맛집`을 찾아다녀보는 것도 유쾌한 경험이 될 것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눈과 입을 동시에 즐겁게 하는 요리와 만나는 즐거운 `보물찾기`를 해보자.

사진제공/안찬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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