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크로아티아④

▲ `아드리아해의 보석`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 대부분의 도시들은 푸른 하늘과 붉은 지붕이 만들어내는 조화로 아름답게 빛난다.
▲ `아드리아해의 보석`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 대부분의 도시들은 푸른 하늘과 붉은 지붕이 만들어내는 조화로 아름답게 빛난다.

크로아티아 내전이 남긴 상처를 눈앞에서 지켜봐야했던 아픈 경험을 뒤로 하고 두브로브니크와 작별할 날이 왔다. 여행은 인간에게 즐거움만을 제공하지 않는다. 때로는 슬픔도 여행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돼준다. 그런 즐거움과 슬픔의 체험을 통해 인간은 성장하는 것이고, 바로 그 `정신적 성장`을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해 여행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건축물 간직한 도시 `스플리트`
로마 황제 별궁에서 고대 낭만·매력 충만

두브로브니크를 떠나던 날도 붉은 지붕 위 햇살은 눈부셨다. 머물렀던 사흘의 시간을 통해 정이 들었던 것일까. 이별의식이 길어졌다. 민박집 부부는 기자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들이 미안할 이유는 없었다. 전쟁과 그로 인한 상처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으므로.

“언젠가는 꼭 한 번 크로아티아에 다시 오세요. 그때도 당신을 위해 방을 비워둘게요“라는 작별인사가 따뜻하게 들렸다. 선량한 얼굴과 착한 마음을 가진 부부를 뒤로 하고 버스터미널을 향해 가파른 돌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이런 소원을 빌었던 것도 같다. “상처 입은 저 사내와 곁에서 그 상처를 어루만지며 살고 있는 여자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상처를 이겨내고 행복에 이르렀으면.”

스플리트를 향하는 버스가 두브로브니크를 출발했다. “또 다른 아드리아해의 보석”이라 불리는 스플리트 역시 짙푸른 바다와 고대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 거기에 로마 황제의 별궁까지 들어서 있어 매력을 더한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아기자기한 광장엔 수백 명의 여행자들이 시끌벅적 몰려다니며 과일향 진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주스를 마시고, 생선과 새우 바비큐를 안주로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모처럼의 휴가를 맞은 사람들의 표정은 더없이 환했고, 목소리 또한 경쾌한 고음으로 술렁였다. 그러나 기자는 보통의 관광객들처럼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가슴으로 들어온 비극의 정서가 표정을 무겁게 바꿔놓았다. 크로아티아 내전과 죽음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녔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섬 여행`이었다.

 

▲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 시내는 `바다와 고대도시의 낭만`을 찾아온 관광객들로 <br /><br />   여름 내내 붐빈다.
▲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 시내는 `바다와 고대도시의 낭만`을 찾아온 관광객들로 여름 내내 붐빈다.

스플리트 항구에서 조그만 배를 타고 아드리아해의 섬으로 가서 사흘을 보냈다. 조그만 섬이라 외출해봐야 볼거리가 별로 없으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숙소 발코니에 홀로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종교를 가지지 않았음에도 날이 저물면 섬마을 성당으로 내려가 낡은 나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벽화 속에 그려진 마리아를 올려다보곤 하던 날들이었다.

예기치 않은 경험은 지적 열망을 낳기도 한다. 발칸반도의 비극적 현대사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비단 크로아티아 내전만이 아닌,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학살 등에도 관심이 갔다. 한국으로 돌아와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크로아티아 내전을 소재로 한 영화를 여러 편 관람한 것은 그 열망을 향한 나름의 실천이었는지도 모른다.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 두어 개의 섬을 떠돈 아드리아해 여행을 마치고 스플리트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로 향하는 티켓을 예매했다. 친절한 매표소 직원은 “버스는 밤 9시나 돼야 출발하니 어디 가서 저녁이라도 먹고 오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로마 황제의 별궁 인근에 늘어선 식당 중 한곳에 자리를 잡았다. 치렁치렁한 짙은 갈색 머리칼에 늘씬한 체형을 가진 여성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옆 테이블에서 샴페인을 마시던 그녀 역시 두브로브니크의 숙소 여주인처럼 새파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크로아티아 청년. <br /><br />   아름다움과 역사적 비극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곳에서도 인간의 삶과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크로아티아 청년. 아름다움과 역사적 비극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곳에서도 인간의 삶과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갓 스물이나 됐을까? 동석한 친구들과 즐겁게 재잘거리던 그녀가 거리에 놓인 야외 스피커에서 탱고의 선율이 흘러나오자 일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함께 온 남자들 서너 명과 파트너를 바꿔가며 추는 춤의 맵시가 비전문가인 기자가 보기에도 보통의 수준은 넘어서고 있었다.

갓 태어난 병아리색의 노란 티셔츠에 분홍빛 미니스커트가 멋지게 어울리는 미인의 춤은 근처 레스토랑에 자리한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산책하던 동네 주민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그녀의 스텝에 따라 함성과 박수가 이어졌고, 댄스 파트너가 되겠다는 남자들이 이곳저곳에서 등장했다. 즐겁고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억될 인상적인 밤을 여러 사람에게 선물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소간 마음이 누그러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자는 두브로브니크 민박집 주인사내에게서 확인해야 했던 내전의 고통, 그리고 발칸반도 비극의 역사에 관한 상심을 온전히 떨쳐내지 못했음에도 아래와 같은 바람을 조용히 읊조렸다.

“해맑은 웃음의 저 청년들에겐 내전과 학살이라는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종교와 인종의 다름을 이유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패악이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춤추고 노래하는 행복한 날들을 몇몇 선택된 자들만이 아닌 인류 모두가 누리기를.”

기자는 요즘도 가끔 꿈을 꾼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민박집 주인여자의 선량한 미소와 그녀 남편의 삶을 파괴한 전쟁. 그리고, 로마 황제의 별궁 앞 광장에서 정열적인 춤을 추던 스플리트 여자에 관한 꿈이다. 그 아름다움과 비극에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언젠가는 아드리아해로 떠날 배낭을 다시 꾸리게 될 것 같다.

▲ 도시에 들어찬 건물마다에서 `미적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건 크로아티아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br /><br />
▲ 도시에 들어찬 건물마다에서 `미적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건 크로아티아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유럽에선 디스카운트가 불가능하다?

해외여행은 이미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아닌 일상이다. 몇몇의 사람들만이 아닌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한두 번쯤은 외국으로 휴가나 관광을 다녀온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그렇기에 해외여행을 둘러싼 여러 가지 풍문도 떠돈다. 그중 하나가 `동남아시아가 아닌 유럽에서는 기념품 가격이나 숙박비를 깎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그곳이 동남아건 유럽이건 풍속에 조금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살이의 모습은 크게 다를 게 없다. 아래 `3가지 팁`만 기억해둔다면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동유럽 국가에서도 어렵지 않게 디스카운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성수기 피해 비수기를 노려라

많은 사람들이 바캉스를 떠나는 한국의 8월과 마찬가지로 유럽에도 여행성수기가 있다. 구름처럼 사람이 모여 있고, 그들 모두가 호텔을 찾는 시즌엔 “가격을 깎아주세요”라고 요구하기가 힘들뿐더러, 식당과 숙소 주인들도 디스카운트를 해줄 이유가 없다.

가능하면 사람들이 몰리는 성수기를 피해 여행비수기를 택해 휴가를 떠나보자. 한적한 해변과 호수를 독차지하는 색다른 경험과 함께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레스토랑과 숙소를 이용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 역시 성수기와 비수기의 숙박료가 크게는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대접받는 여행`을 만끽하고 싶다면 남들이 가지 않을 때를 노려보자.

 

▲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골목 곳곳엔 조그맣고 예쁜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하다.
▲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골목 곳곳엔 조그맣고 예쁜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하다.

◆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자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건 한국만이 아닌 전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속담이다. 아무리 한적한 여행비수기라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불만을 말하듯 디스카운트를 요구한다면 어떤 사람이 이를 좋게 받아들이겠는가. 웃음에는 비용이 필요 없다. 활짝 핀 웃음으로 “호텔비가 우리에겐 너무 비싸요. 조금만 깎아주시면 복 받으실 겁니다”라고 말하는 손님 앞에 야박하게 굴 숙소 주인이 있을까.

특히나 크로아티아나 마케도니아 등의 동유럽 국가는 서유럽에 비해 아직 `자본의 때`가 덜 묻은 지역이라 미소를 `할인의 무기`로 이용해도 전혀 부끄러울 게 없다.

◆ “고마워요”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오늘날 일본이 언필칭 `관광대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친절함이 있었다. 2008년 `아시아의 하와이`로 불리는 오키니와를 여행했다. 당시 만난 일본인들은 “실례합니다”와 “감사합니다”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입버릇처럼 사용했다.

우리도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상대방이 베푸는 작은 친절과 배려에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을 전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숙박비를 할인해주는 호텔 지배인, 식사비를 일정 부분을 디스카운트 해주는 레스토랑 주인에게 웃으며 “고맙습니다”라고 말해보자. 다음 날은 그 할인폭이 더 커질 게 분명하다.

사진제공/류태규

국장席 홍성식 기자/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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