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캄보디아①

▲ 크메르인들의 미적 감각이 완성시킨 아름다운 왕의 사원 앙코르와트.

온종일 붉은색 흙먼지가 날리는 비포장도로, 인간의 심장을 설렘으로 뛰게 만드는 붉은색 일출과 일몰, 그 나라의 흙빛 또는, 석양빛처럼 불그레하게 달아오른 사람들의 얼굴….

프놈펜에서 시엠립까지 버스길은
한국의 70년대 농촌풍경 연상케

대평원과 야자수, 스콜까지 더하면
바쁜 일상을 벗어난 `낭만의 절정`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의 도시 캄보디아 시엠립을 추억할 때면 잇따라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2011년 봄. 수도 프놈펜에서 시엠립으로 향하는 낡은 버스. 비현실적으로 커다란 태양이 무인지경의 막막한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모습을 봤다. 그날 이후 기자에게 캄보디아와 앙코르와트는 `거대한 붉은색 낙인`으로 새겨졌다. 불과 40여 년 전 기억의 저편. 이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농촌공동체적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잔인한 크메르루주(Khmer Rouge) 청년들 탓에 국민의 5분의 1이 허망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아야 했고, 당시 무너져 아직도 재건되지 못한 사회적 인프라로 인해 국민의 절대다수가 빈곤의 한가운데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나라.

▲ 시엠립 곳곳엔 짙푸른 이끼에 뒤덮인 고대 유적이 산재해있다.
▲ 시엠립 곳곳엔 짙푸른 이끼에 뒤덮인 고대 유적이 산재해있다.
어둡고 습한 역사의 그늘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채, 크메르루주 집권 당시 마구잡이로 뿌려진 지뢰에 손발이 떨어져나간 사람들의 슬픈 표정을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무시로 마주해야 하는 그곳. 낭만적인 관광지라기보다는 상처 입은 짐승들의 공동체에 가까운 공간임에도 어째서 기자는 2003년 이후 무려 4번이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찾았던 것일까? 답하기가 쉽지 않다. 이 여행기는 그 답을 에둘러 찾아가는 과정이 될 듯하다. 실용적 차원이 아닌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지구 위 가장 아름다운 석조건축물`이라 불러도 좋을 앙코르와트. 그리고, 동양 최대의 담수호 톤레샵 호수를 만날 수 있는 캄보디아 시엠립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다.

▲ 캄보디아 시엠립의 비밀스런 사원 앙코르와트에선 천 년 전 크메르 왕과 신(神)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그들 앞에서 춤추는 천상의 여신 압사라의 자태는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아름답다.
▲ 캄보디아 시엠립의 비밀스런 사원 앙코르와트에선 천 년 전 크메르 왕과 신(神)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그들 앞에서 춤추는 천상의 여신 압사라의 자태는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아름답다.
정치적으로 안정기에 들어선 2000년대 이후엔 관광객이 대폭 늘어나면서 한국에서 시엠립으로 가는 직항 전세노선이 생겼다. 대부분 3~4일의 짧은 휴가를 이용해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주로 전세기를 이용한다.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것보다 저렴한 비용에 목적지로 직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시엠립 현지의 일정을 관리하는 가이드를 따라 상황버섯 등의 건강식품이나 라텍스로 만든 침구를 판매하는 가게에 수차례 들러 `울며 겨자 먹기`로 쇼핑을 해야 한다는 것이 기분을 상하게도 한다.

이웃나라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비행기를 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엔 거의 `독점노선`인 탓에 항공권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런 이유로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족들은 프놈펜에서 버스를 타고 시엠립을 향한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수입한 털털거리는 중고버스를 타고 이젠 보기 어려워진 1970년대 농촌 풍경 속을 달리는 색다른 맛이 있는 코스다. 모두 나름 장단점이 있는 방식이지만, 기자가 추천하고 싶은 건 태국 방콕에서 아란야프라텟과 캄보디아 국경마을인 포이펫을 거쳐 시엠립으로 가는 방법이다. 새벽에 방콕을 출발하면 점심 먹기 전 포이펫에 도착할 수 있다. 포이펫은 시엠립으로 가는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국경도시. 여기서 3~4명이 모여 택시를 대절해 3시간 정도 달리면 시엠립 시내에 도착할 수 있다. 비용은 30~40달러 내외. 1인당 10달러 정도다.

이 코스가 매력적인 이유는 포이펫 시내를 벗어나면 만나게 되는 평원 때문이다. 야자수와 잡초,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막막한 풍경. 네온사인 빛나는 도시, 숨 가쁜 직장인으로 살면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원시(原始)가 선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평원을 수십km 달리다가 운 좋게 스콜이라도 만나게 되면,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방랑자의 낭만은 절정에 이른다. 일상에선 결코 볼 수 없는 풍경과 만난다는 건 여행하는 사람만이 누리게 되는 특권이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포이펫-시엠립` 코스를 택했을 때마다 그 평원 한가운데 잠시 택시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도로를 지나는 차와 사람은 물론, 풀숲 들쥐조차 몸을 숨긴 적요한 풍경 속에서 마시는 `앙코르맥주` 한 모금이 얼마나 달콤한지 말로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시엠립에 도착하면 각자 형편과 취향에 따라 숙소를 찾으면 된다. 공항에서 시내로 나오는 큰 길가에는 수영장과 깨끗한 로비를 갖춘 대형호텔이 흔하고, 시엠립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스타마트`와 `펍 스트리트(Pub Street)` 사이에는 10달러 내외의 대중적인 숙소가 지천이다. 저렴한 호텔도 에어컨과 욕실을 갖췄으니 크게 불편할 게 없다.

▲ 밤이 내린 여행자들의 거리에 나와서 시원한 맥주를 즐기는 세계 각국의 청년들.
▲ 밤이 내린 여행자들의 거리에 나와서 시원한 맥주를 즐기는 세계 각국의 청년들.
2003년 겨울. 처음 시엠립을 찾았을 땐 구걸하는 아이들 탓에 거리를 걸어 다니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갈 때마다 줄어들었고, 이제는 왁자지껄 시끄러운 주요관광 포인트가 아닌 곳에선 싸구려 기념품을 팔거나, “1달러만 주세요”라며 손을 내미는 아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날 `크메르`라는 이름으로 인도차이나 반도를 호령했으나, 현재는 아시아의 최빈국 중 하나로 간난신고의 삶을 이어가는 캄보디아 국민들. 그래서일까? 시엠립 시내는 한때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 살던 늙은 마술사의 낡은 외투를 보는 것처럼 측은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타프롬사원엔 돌 속으로 뿌리를 내린 커다란 나무가 서 있다.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영화 `툼 레이더`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 타프롬사원엔 돌 속으로 뿌리를 내린 커다란 나무가 서 있다.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영화 `툼 레이더`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그러나, 가난이 사람의 모든 것을 완벽히 파괴하지는 못하는 법.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들의 처지와는 관계없이 낙천적으로 보이고, 웃음에도 인색하지 않다. 아마도 `미소의 힘`으로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한 집단학살의 역사를 애써 잊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인간과 역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떠올리며 뜨거워진 머릿속을 식히는 방법은 단순해지는 것이다. 해 뜰 무렵. 들러붙는 잠을 떨쳐내며 세수를 하고, 거리에 즐비한 오토바이택시 중 하나를 골라 탄다. 이제 앙코르와트와 만날 시간이다.

캄보디아는…

공식적인 명칭은 `캄보디아 왕국(King dom of Cam bodia)`. 인도차이나 서남부에 위치한 나라로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수도는 프놈펜. 면적은 18만1천35㎢로 한국보다 약 2배가 크다. 남북의 길이가 450㎞, 동서가 580㎞로 사각형과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인구는 약 1천5백만 명. 1970년대 겪은 혹독한 학살로 인해 여성 인구가 좀 더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인구의 90%는 크메르족. 소수의 베트남인과 중국인 등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메르어를 사용하지만, 나이 지긋한 지식인들은 식민지 체험을 겪어서인지 프랑스어와 영어에도 능하다. 국민들의 절대다수(약 95%)는 불교신자. 소수의 무슬림(2%)도 존재한다. 오렌지 빛깔 가사(袈裟)를 걸친 어린 스님들을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익숙한 거리 풍경.
▲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익숙한 거리 풍경.
외형상으로는 `왕정국가`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정부 수반인 총리가 행사한다. 31년째 캄보디아의 실질적인 권력자로 내외부에 알려진 사람은 캄보디아인민당(CPP)의 훈센(Hun Sen). 화폐단위는 리엘(Riel)로 1달러(한화 약 1천150원)는 약 4천 리엘. 대부분의 대도시에서는 자국 화폐와 달러가 함께 사용되고,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인 시엠립에서는 원화가 통용되기도 한다.

1975년부터 1979년 사이에 폴 포트와 카잉 구엑 에아브 등이 주도해 벌인 대학살은 `킬링필드(Killing Fields)`로 불리며, 영화로도 제작돼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캄보디아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들로 세계사에 기록됐다.

▲ 캄보디아와 태국의 재래시장에선 향과 맛이 뛰어난 열대 과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캄보디아와 태국의 재래시장에선 향과 맛이 뛰어난 열대 과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기온은 고온 다습한 열대몬순기후를 나타내고, 1년 내내 영상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은 드물다. 가장 더운 시기는 3월과 4월. 건기인 12월과 1월이 비교적 서늘하고 이때가 여행하기에 좋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많은 비가 내리는 우기다. 천연고무와 농수산물, 목재 등이 주요 수출품이고, 자동차 및 관련 부품, 전자기기와 철강 등은 수입에 의존한다. 프놈펜과 시엠립, 시아누크빌 등에는 무역업과 관광업에 종사하는 한국인들도 다수 거주한다. 어두운 현대사를 극복하고, 찬란했던 고대 크메르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노력은 프놈펜의 청년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예의 바르고, 동시에 당당한 모습으로 외국인들을 맞이한다.

사진제공/구창웅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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