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몬테네그로 ①

▲ 아름다운 바다와 고대의 유적을 만날 수 있는 몬테네그로의 해변도시 코토르.

아드리아해(海)가 아름답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재론의 여지도 없다. 푸른색 잉크 수 만 병을 흩뿌려놓은 듯한 사파이어빛 바다.

그 바다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오래된 도시의 붉은색 지붕들. 이 배경에 빠질 수 없는 양념처럼 등장하는 웅장한 석조 고성(古城)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 이탈리아의 아말피와 포지타노... 남부와 동부 유럽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의 절반은 아드리아 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의 생각에 고개 끄덕여 동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탈리아 포지타노의 깎아지른 절벽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는 아드리아해의 시끌벅적함도 흥겹고, 크로아티아의 중세도시 혹은, 쪽빛 물결 춤추는 흐바르(Hvar)섬에서 만나는 아드리아해 서쪽은 관광객이 드문 탓에 넉넉한 여유로움이 더해져 보다 멋지다.

그러나, 사견임을 전제한다며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움과 가장 낭만적으로 만날 수 있는 도시는 단연 몬테네그로의 코토르다. 사실 `도시`라기보다는 조그만 어촌마을에 가까운 그곳에서 기자는 “때론 폐허가 완벽보다 매혹적”이라는 문장의 참뜻을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 ① 코토르에선 축조된 지 수백 년이 넘은 성당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br /><br />
▲ ① 코토르에선 축조된 지 수백 년이 넘은 성당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코토르, 그곳에 가기 위해선 체력과 시간이 필요

한국의 여름만큼이나 뜨거운 동유럽의 여름. 입을 열어 국명을 말하는 이가 드문 나라이자, 아름다운 풍광에 관한 이야기를 풍문으로밖에 들은 바 없는 몬테네그로를 향했다. 목적지는 바다와 산이 동시에 반기는 코토르.

몬테네그로 이전의 여행지는 알바니아의 한적한 시골마을 베라트였다. 거기서 코토르까지는 우리식 표현으로 “천리 먼 길”.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식사도 거른 채 부랴부랴 여행 가방을 꾸렸다. 해가 지기 전에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의 국경을 넘어야했으니 마음이 바쁜 건 불문가지.

알바니아의 소읍 베라트를 출발한 낡은 버스가 시커멓고 가쁜 숨을 연신 토해내며 4시간 만에 티라나에 도착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알바니아엔 `버스터미널`이란 게 아예 없다. 행선지에 따라 길거리 또는, 광장에서 자신의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알아서 타야 하는데, 알바니아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여행자들에겐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디서나 궁하면 통하는 법. 입은 말을 하라고 뚫려 있는 것이다. “모르면 물어라”. 이건 배낭여행자가 가슴에 담아둬야 할 가장 중요한 슬로건 중 하나다. 열두 번을 묻고 또 물어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 국경에서 가까운 도시 수코드라로 가는 버스의 출발지를 찾았다.

 

▲ ② 깨끗하고 맑은 강과 웅장한 산은 몬테네그로의 자랑이다.
▲ ② 깨끗하고 맑은 강과 웅장한 산은 몬테네그로의 자랑이다.

당시 남동부 유럽의 기온은 섭씨 35도를 오르락내리락. 그야말로 폭염이었다. 한국처럼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는 드물고,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 대부분인 알바니아. 갈증에 목은 타들어가고, 날리는 흙먼지가 코를 막았다.

게다가 알바니아의 버스는 예정된 도착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 언제 올지 기약 없는 수코드라행 버스를 기다린 지 2시간이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서야 저 멀리서 털털거리며 다가오는 버스. 매연을 뿜어대는, 20년은 됐을 법한 구형 차량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좌석은 스프링이 튀어나와 삐걱거리고 셔츠는 땀으로 젖었는데 에어컨도 없다.

그런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렸으니, 수코드라에 도착하기도 전에 속된 말로 진이 빠졌다. 하지만, 거기서 멈춰설 수는 없었다. 몬테네그로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오전과 오후 하루에 딱 2번만 운행하는 울치니(Ulcinj)행 버스를 수소문해야 했다.

다행이었다. 40분 후에 출발한다는 `기쁜 소식`을 한 여행자가 들려준다. 이제야 알바니아-몬테네그로 국경을 넘는구나.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보니 올리브 몇 알과 손바닥만한 통밀빵 하나를 씹으며 베라트를 출발한지 13시간이 넘어서고 있었다.

 

▲ ③ 여행자들이 코토르 거리에서 판매되는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둘러보고 있다.
▲ ③ 여행자들이 코토르 거리에서 판매되는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둘러보고 있다.

# 몬테네그로에선 `배낭`도 차비를 내야 한다?

덴마크와 독일에서 온 대학생들과 함께 울치니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재미있는 모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몬테네그로 버스에는 한국의 1970년대처럼 차장이 탑승하고 있었다. 승객들의 승·하차와 자리 배정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차장.

그런데, 놀랍게도 울치니행 버스의 차장은 열 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였다. 덴마크 청년 하나가 “어이 꼬마야”라고 농담을 하니, 정색을 하며 “내 이름은 꼬마가 아니고 스티브”란다. 영어 발음도 또랑또랑하고, 행동도 의젓해서 `소년`이라 불러줘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수코드라를 출발한 버스가 알바니아 국경을 넘어 몬테네그로의 최남단 도시인 울치니에 가까워질 즈음, 그 `꼬마 차장`이 승객들로부터 버스요금을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탔는지 기억했다가 승차거리에 따라 요금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모습이 듬직하면서도 귀여웠다. 이윽고 꼬마, 아니 `소년 차장` 스티브가 우리 일행 앞으로 다가왔다. 한 사람당 11유로를 내란다. 독일에서 온 대학생이 물었다. “다른 승객들에겐 10유로를 받더니 왜 우리한테는 11유로를 내라고 해?” 똘망똘망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분들은 큰 배낭이 없지만, 당신들은 저보다 큰 배낭을 가지고 탔잖아요. 그것들이 버스를 비좁게 만들었고요.” 대화는 한 번 더 이어졌다. “몬테네그로는 배낭한테도 차비를 받아?” 이 질문에 대한 `소년 차장`의 똑 부러지는 대답이 차 안 승객들 모두를 웃겼다. “배낭도 아름다운 바다와 산을 여행하잖아요. 그 비용이 1유로면 싸지 않나요.” 위트 가득한 `꼬마 스티브`의 미소 저편에서 짙푸른 바다와 웅장한 성벽의 도시 코토르가 다가오고 있었다.

 

몬테네그로는…

한때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던 발칸반도의 남서부에 위치한 국가.

구(舊) 유고슬라비아연방국의 하나였다가, 불과 10여 년 전인 2006년 독립했다. 정식 국명은 몬테네그로공화국(Republic of Montenegro).

북쪽으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동쪽으로는 세르비아, 남쪽으로는 알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서쪽으로는 아드리아해가 사파이어 빛깔로 아름답게 일렁인다. 몬테네그로는 `검은 산`을 뜻하는 세르비아어.

깎아지른 듯 거대한 바위산을 나라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기에 지어진 이름이다.

수도는 포드고리차(Podgorica), 인구가 66만여 명의 불과한 매우 작은 국가다. 면적은 한반도의 1/7인 1만3천812㎢. 몬테네그로계(43%)와 세르비아계(32%)가 인구의 다수를 이루고 있고, 소수의 보스니아계와 알바니아계 주민도 함께 거주한다.

세르비아정교를 믿는 이들이 국민의 70%. 이슬람교도도 20% 정도로 적지 않다. 얼마 되지 않지만 가톨릭신자도 존재한다.

화폐는 유로화를 사용하며 1유로는 한화로 약 1천250원(2016년 9월 기준). 1인당 GDP는 7천 달러 정도다. 공식 언어는 몬테네그로어인데, 문서와 서류 등에는 라틴문자와 함께 키릴문자를 동시에 표기한다.

몬테네그로는 아름다운 국가다. 서쪽 해안의 길이가 300㎞에 가깝고, 눈에 띄게 매력적인 풍경으로 이뤄져있어 관광성수기인 여름철에는 서유럽과 북유럽 관광객들 다수가 요트나 유람선을 타고 방문한다. 그들은 이름난 휴가지인 코토르(Kotor)나 부드바(Budva) 등에서 낭만과 휴식을 즐긴다.

코토르는 중세도시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된 곳으로 베네치아공화국시대의 향취가 아직도 거리 곳곳에 남아있다. 1166년에 축조된 `성 트뤼폰(St. Tryphon)성당`과 길이가 5km에 이르는 고대 성벽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 ④ 휴가철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요트를 타고 몬테네그로의 해변을 방문한다.
▲ ④ 휴가철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요트를 타고 몬테네그로의 해변을 방문한다.

수려한 해변도시 외에도 코모비산(山), 시냐에비나산 등은 웅장하고 장엄한 풍모로 멀리서 온 여행자를 압도한다. 폐수를 배출하는 공업지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강물도 투명할 정도로 깨끗하다. 여기서는 낚시나 래프팅을 즐기는 가족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침식작용에 의해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깎여나간 협곡도 몬테네그로가 자랑하는 빼놓을 수 없는 풍광의 하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스러움과 신비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타라(Tara)협곡`이 그 중 백미다. 한국과는 2006년 9월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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