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베트남 ①

▲ 평화롭고 한가로워 보이는 베트남의 시골 풍경.
▲ 평화롭고 한가로워 보이는 베트남의 시골 풍경.

인도차이나반도를 떠도는 배낭여행자에게 호치민과 메콩강의 나라 베트남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비행기를 타고 태국 방콕에 도착해 구절양장 비포장길을 달려 캄보디아 프놈펜을 거쳐 통통거리는 쪽배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마침내 도착한 베트남의 한적한 시골 마을 쩌우독. 햇살이 눈부신 봄날이었다. 거기서 다시 버스와 배를 타고 베트남의 경제중심지 사이공까지 가는 데는 한나절이 더 걸렸다.

취향의 문제겠지만, 기자는 버스보다는 배, 배보다는 기차를 통한 여행을 선호해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만큼이나 유명한 베트남 종단열차를 타고 남부 사이공에서 북부 종착지 하노이까지 달려보고 싶었다.

야간·전세버스 관광 인프라 편리
호텔·게스트하우스 가격도 저렴
남중국해 푸른 파도 바라보며
맥주 마시는 기차여행 `낭만`


총연장 1726km, 평균 시속 50km, 사이공에서 하노이까지 소요 예정시간 33시간 30분. 비교적 여유로운 일정이었기에 그 코스를 3번에 나누어 베트남 땅을 거슬러 오르기로 했다. 사이공-나트랑, 나트랑-후에, 후에-하노이의 스케줄이었다.

여행자를 위한 베트남의 관광인프라는 처음 그곳을 찾았던 2003년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야간버스와 전세버스가 거미줄처럼 촘촘한 망을 이뤄 유명 관광지를 이어놓았고, 가격 또한 저렴했다.

그 버스가 여행사와 제휴된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앞에 내려주니 숙소를 구한다고 무거운 가방을 든 채 헤맬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동일한 구간을 이동할 경우 기차티켓 가격이 20달러라면 버스비는 10달러에 불과했다.

 

▲ 베트남 여성들은 강인한 생활력과 함께 남성 못지않은 용기를 지녔다.
▲ 베트남 여성들은 강인한 생활력과 함께 남성 못지않은 용기를 지녔다.

10달러라면 우리 돈으로 대략 1만2천 원. 형편이 넉넉지 않은 여행자에겐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그 차이는 “바깥 풍경 한 번 보지 못하고 밤을 새워 달리는 야간버스보다 넘실대는 남중국해의 푸른 파도를 끼고 달리는 기차가 훨씬 낭만적”이라는 취향을 바꾸지 못했다.

기자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한국의 대도시처럼 시끌벅적하고 매연이 코를 찌르는 사이공은 매력이 크지 않은 도시. 밤거리 풍경도 서울이나 대구의 번화가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틀을 그곳에서 지낸 뒤 멋진 해변과 맛있는 해산물이 유혹하는 나트랑을 향해 기차에 올랐다.

사이공에서 나트랑까지는 8~10시간쯤 기차를 타야한다. 도착시간이 들쭉날쭉이다. 왜 그러냐고?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의 KTX와 새마을호 기차가 얼마나 깨끗하게 정비·관리되고, 시간을 지켜 정확하게 운행되는지 알게 된다.

기자는 인도와 태국, 베트남과 터키, 이란과 알바니아, 슬로베니아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세르비아, 헝가리와 보스니아 등에서 기차를 타봤다. 그중 어떤 기차도 한국의 기차만큼 깨끗하지 않았다.

`연착`과 출발지연에 관해선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인도의 기차는 목적지에 멈추는 시간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3~4시간 연착은 기본이니, 승객들 중 누구도 30~40분 늦는 것에는 화를 내지 않는다. 이건 본론이 아니니 세계 각국 기차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베트남 종단철도의 사이공-나트랑 구간은 듣던 대로 아름다웠다. 식당칸에 앉아 쌀을 주정으로 빚은 독특한 풍미의 맥주 `333`을 마셨다. 나트랑-후에 구간은 사파이어처럼 푸르게 반짝이는 남중국해를 기차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달린다.

사이공을 출발해 나트랑까지 가는 기차에서도 그것 이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 창밖으로 펼쳐지는 베트남의 진짜 시골풍경을 눈에 담는 호사가 바로 그것. 맥주 안주가 따로 필요 없다. 풍광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 베트남 서민들의 소박한 한 끼 식사.
▲ 베트남 서민들의 소박한 한 끼 식사.

이윽고 느린 기차가 여유를 부리며 도착한 나트랑. 거기서 나흘을 머물렀다. 길이가 4km에 달하는 해변에 사람이 열 명도 보이지 않는 폭우 직후의 한적함이 더없이 좋았다. 커피나 홍차를 마시며 하루종일 바다와 파도, 갈매기만을 바라보던 날도 있었다. 모처럼 맞은 휴식의 시간이 달콤했다.

날이 개여 태양이 뜨거웠던 날엔 8천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나트랑 보트 여행`을 다녀왔다. 조그만 목선에 몸을 싣고, 국적과 인종이 다른 젊은이들과 점심을 먹고 포도주를 마셨다. 적당히 술기운이 오른 이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푸른 바다를 떠다녔다.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세상과 삶은 낭만만으로 이뤄져있지 않았다.

보트 여행 다음 날. 칼국수를 먹으러간 현지 한국식당에서 쉽게 잊을 수 없는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 교민을 상대로 발행되는 신문에서였다. 17세에 총살당한 베트남 소녀 `보 티 사우(Vo Thi Sau)`.

그녀는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하던 시절 태어났다. 자신의 조국을 배반하고 친프랑스 정책으로 일관하던 고위관료에게 폭탄을 던진 소녀 보 티 사우. 그 사건으로 20여 명의 프랑스 군인들도 크게 다쳤다. 베트남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녀는 이봉창이나 안중근과도 비교될 수 있는 인물.

하지만, 당시 베트남을 식민통치하던 프랑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이 보기에 보 티 사우는 테러리스트였다. 프랑스인들이 주도한 법정은 겨우 열일곱 소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프랑스식 관용`이 그녀에겐 적용되지 못했다. 그런데, 죽음 앞에 선 이 소녀의 태도가 베트남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전설 하나를 만들었다.

 

▲ 사진 오른편에 보이는 것이 베트남의 철로.
▲ 사진 오른편에 보이는 것이 베트남의 철로.

사형이 집행되던 날. 수천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 천에 눈이 가려진 보 티 사우가 끌려나왔다. 열일곱, 아직은 아이의 티를 벗지 못한 소녀에게 사형집행인이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이 질문에 보 티 사우는 두려움 하나 없는 의연한 말투로 이렇게 답했다. “눈가리개를 풀어라. 조국의 산천을 보며 당당하게 죽겠다.”

사실 베트남은 보 티 사우 같은 사람들의 힘으로 건설된 나라다. 프랑스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부터, 미국과의 전쟁 시기까지 베트남 여성들은 남성들 못지않은 용기와 열정으로 국가의 독립을 위해 몸을 던졌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제 베트남은 프랑스와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당당한 주권국으로 일어섰다. 폐허의 도시에 새롭게 건물을 세우고, `이념`이 아닌 `경제`로 눈길을 돌린 21세기 베트남. 오랜 수난 끝에 얻은 오늘을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베트남은…

공식명칭은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인도차이나반도 동부에 위치해 있다.

지정학적 요충지라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오랜 기간 겪어야했다. 1884년 이후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1960~70년대엔 미국의 침략을 겪었다.

북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라오스·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동쪽 해안은 통킹만, 남중국해, 보르네오해, 시암만과 인접해있고, 남북의 해안선이 3천444Km로 매우 길다. 면적은 한반도의 1.5배 크기인 33만958㎢. 북부는 아열대기후, 남부는 열대몬순기후를 나타낸다.

행정구역은 하노이, 사이공, 다낭, 하이퐁, 껀터의 5개 직할시와 59개의 성(省)으로 이뤄져있다.

인구는 약 8천800만 명으로 70%에 가까운 사람들은 농촌에 거주한다. 비엣족이 85.7%로 거주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타이족과 화교, 크메르족 등 50여 개의 소수민족이 함께 살고 있다.

공용어는 베트남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지식인들도 적지 않다. 종교는 불교(43%)와 가톨릭(36%)이 주류를 이루고 일부에선 까오다이교를 믿기도 한다.

화폐단위는 베트남 동(VND). 1만 VND은 약 530원이다.

 

▲ 한적한 베트남의 강변. 뒤편으로 야자수가 줄지어 서 있다.
▲ 한적한 베트남의 강변. 뒤편으로 야자수가 줄지어 서 있다.

1954년 북베트남 정권이 프랑스 지배세력을 몰아낸 뒤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분단됐던 슬픔의 역사도 가졌다. 이후 남북의 정권은 20여 년에 걸친 전쟁을 치른다. 이 전쟁에서 미국과 한국, 필리핀과 호주 등이 남베트남을 지원했고, 소련연방과 중국은 북베트남을 지지했다. 사이공이 북베트남 군대에 의해 함락되면서 전쟁이 끝난 것은 1975년.

종전 이후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던 한국과 베트남 정부는 1992년 국교를 정상화함으로써 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텄다. 현재는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여행과 사업을 위해 베트남을 찾고 있고, 베트남 젊은이들 사이에선 `한류열풍`이 불고 있기도 하다.

주요관광지는 `경제수도`라 불리는 사이공과 나트랑 해변, 고풍스런 멋이 있는 도시 후에와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감탄을 자아내는 하롱베이 등이다.

사진제공/류태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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