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알바니아 ①

▲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중심가.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극장 앞 알바니아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중심가.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극장 앞 알바니아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가톨릭과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는 유럽에서 `소수자`인 무슬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여기에 더해 “당신들 나라 사람들은 악랄한 범죄조직에 몸담고 사는 이가 많다”는 오해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설상가상이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기자는 아직도 알바니아가 타의에 의해 소외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외로운 섬`처럼 느껴진다. 그랬다. 알바니아는 유럽대륙 안에 외따로 존재하는 섬이었다.

외로움과 고립됐다는 감정은 사람의 정서를 부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소외감 속에서도 인간은 강직한 마음과 선량함을 향한 신념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게 인간만이 가진 힘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알바니아를 여행했을 때, 외부로부터의 수난을 이기고 선함에 가닿은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다. 해서, 알바니아 여행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근거 없는 편견을 깨는 여행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 한국의 19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알바니아의 재래시장.
▲ 한국의 19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알바니아의 재래시장.
`마피아(Mafia)`는 지구 위 모든 사람들이 아는 악랄한 범죄조직이다. 인신매매와 마약거래, 청부살인 등의 끔찍한 범죄를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불법집단. 알바니아는 크나큰 오해 속에서 산다.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악당 중 하나가 알바니아 마피아”라는 편견이다.

물론 알바니아에도 범죄집단과 악인은 존재한다. 미국과 서유럽에 그 뿌리를 내린 알바니아 마피아 역시 매춘, 마약밀매 등의 반인륜적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들이 행하는 피비린내 나는 복수와 극악한 폭력이 악명 높은 것도 맞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보다 훨씬 부풀려진 과장에 가깝다. 그렇다면 무엇이 `알바니아 마피아`만을 지목해 그들의 악명을 드높였을까.

그것은 할리우드 영화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미국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는 그 어떤 것보다 문화적 파급력이 강하다. 전세계를 조밀하게 연결하는 할리우드의 배급망이 가진 거대한 힘. 그것은 사실을 과장할 수도 있고, 축소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오해 역시 역시 피해갈 수 없다.

▲ 유럽에서 무슬림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 알바니아. 곳곳에 이슬람성당인 `모스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 유럽에서 무슬림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 알바니아. 곳곳에 이슬람성당인 `모스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할리우드는 자신들이 발 딛고 선 `미국 자본`에 적대적인 것들에겐 쉬이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미국의 주류종교인 기독교의 대척점에 선 이슬람교, 자신의 나라에 우호적이지 않은 정권이 지배하는 국가들을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곱게 볼 리 없다. 그들에 대한 `영화적` 비하와 혐오는 그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다.

일례로 기자 또래의 40대 영화팬들은 소년시절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람보` 시리즈를 보며 자랐다. 그러나, 그 영화 속에서 묘사되던 베트남전은 과연 진실에 가까웠던가? 강자가 기술한 역사 속에 숨겨졌던 `베트남전쟁`의 잔인한 진상은 `람보`가 보여준 불요불굴의 정의로움과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용기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할리우드 영화가 가진 한계다.

자신의 입장만을 강변하며 서술하는 역사는 왜곡되기 십상이다. 영화에서 보는 화면 속 장면과 그것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진실은 분명히 다르다. 알바니아는 바로 이 `영화 속 화면`과 `진실` 사이에서 오해받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기자는 그 오해를 여행을 통해 몸으로 부딪치며 풀었다.

▲ 초록빛과 푸른빛이 어울린 아름답고 평화로운 알바니아 시골마을. 목가적 풍경이다.
▲ 초록빛과 푸른빛이 어울린 아름답고 평화로운 알바니아 시골마을. 목가적 풍경이다.
SNS를 통해 알바니아를 여행할 것이라고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알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여행을 말렸다. “그 나라는 악랄한 마피아가 밤거리에 득실대는 곳이니 위험하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걱정이었다.

몇 해 전 적지 않은 관객을 동원한 할리우드 영화 `테이큰`에서 묘사되는 알바니아는 그야말로 `심각한 국가`다. 철없는 10대 미국 소녀들을 납치해 마약을 먹이고, 성폭행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매춘부로 팔아치우는 `알바니아 마피아`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인면수심의 괴물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묘사되는 알바니아가 아닌 실제의 알바니아도 그럴까.

알바니아는 유럽 국가 중 이슬람교도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그 때문에 이슬람과 적대적 관계를 지속해온 미국과 할리우드에게 미운털이 박힌 것은 아닐까.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 상식에 기반해 생각해보자.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6·25전쟁 직후의 한국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게 일상인 곳이다.

▲ 티라나 거리엔 낡은 아파트가 흔하다. 건물 외벽에 화살표를 그려놓은 게 독특하다.
▲ 티라나 거리엔 낡은 아파트가 흔하다. 건물 외벽에 화살표를 그려놓은 게 독특하다.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이 존속할 수 있으려면 그 공간에 `검은 돈`이 떠다녀야 한다. 범죄와 폭력으로 삶을 영위하는 집단은 투명한 사회에선 존재할 수가 없다. 어두운 거리와 음침한 방에서 주고받을 `검은 돈`이 없는 곳에 범죄조직이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알바니아 대부분의 도시엔 검은 돈이 없다.

알바니아 사람들의 대다수는 산자락 조그만 땅에 농사를 짓거나, 양을 키우며 살아간다. `마피아`처럼 거대한 범죄집단이 침을 흘릴만한 투명하지 못한 자본이 생겨날 곳이 없다. 그러니, `알바니아=마피아의 소굴`이란 등식은 그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만약 알바니아 마피아가 실제 한다면 그들은 이미 수십 수백억 원의 `검은 돈`이 부당하게 거래되는 파리나 베를린의 암흑가로 떠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위와 같은 생각 아래서 마케도니아를 출발해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로 향하는 국제버스를 탔다. 기자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딱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알바니아는 때 묻지 않은 산과 강 아래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선량한 무슬림국가였다.

더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수도 티라나는 북적이는 한국의 대도시와 대조를 이뤘고, 나지막한 담 너머로 서로가 농사지은 포도와 올리브를 주고받는 강변마을 베라트 사람들의 웃음은 환했으며, 이탈리아를 마주 보는 듀레스 해변의 적요한 파도소리는 색다른 아름다움으로 여행자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지금도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알바니아에서의 추억. 바보스러울 정도로 친절하기에 남의 것을 빼앗아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자기 것을 타인에게 나눠주는데 익숙한 알바니아 사람들. `마피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들의 미소를 어떻게 짧은 필설로 온전히 형용할 수 있을까.


알바니아는…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 위치
가난해도 친절한 매력 듬뿍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에 위치한 국가. 1479년부터 오스만투르크의 지배하에 있다가 1912년이 돼서야 독립했다. 그 영향으로 유럽 어느 국가보다도 무슬림의 비율이 높다. 인구는 약 360만 명. 국민의 70% 가량이 이슬람교를 믿는다.

가톨릭신자는 인구의 약 10%로 추정된다. 공식적인 명칭은 알바니아공화국(Republic of Albania)이지만, 알바니아인들은 스스로를 `독수리의 나라`라고도 부른다. 국기에도 머리가 둘 달린 독수리 문양이 그려져 있다.

수도는 티라나. 조용하고 고풍스런 마을 베라트와 근사한 바다풍경을 만날 수 있는 사란다 등이 주요 관광지로 손꼽힌다.

동쪽으로 마케도니아,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 아드리아해에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알바니아계 주민이 90% 이상으로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인접국 세르비아와는 인종과 종교 문제로 오랜 갈등을 겪기도 했다.

동서 구간은 비교적 짧고 남북 간의 길이가 340km에 이르는 길쭉한 나라로, 얼마 되지 않는 평야를 제외하면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로 이뤄져있다.

냉전시대엔 소련, 중국 등과 교류하며 폐쇄적인 정책을 이어갔다. 1990년대 초반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따라 민주정부가 수립되는 등의 변화를 겪었고, 현재는 개방적인 국가로 변모 중이다.

국토의 77%가 산악·구릉지역인 탓에 농사보다는 임업과 목축업 등이 발달했다. 갈탄, 천연가스, 크롬, 니켈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한 편으로 1990년대 이후엔 수출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쳤다. 보통의 한국인들이 상상하는 유럽과 달리 아직도 `소달구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빈국이지만, 그 가난과는 별개로 사람들은 소탈하고 친절하다.

양고기나 닭고기를 재료로 만든 요리에 염장한 올리브와 빵을 곁들이는 것이 서민들의 주식이다. 시골의 노인들은 양이나 염소의 젖을 발효시켜 묽게 만든 전통음료를 즐기기만, 티라나 같은 대도시 젊은이들에겐 콜라와 세븐업 등의 탄산음료가 더 인기다.

화폐 단위는 레크(Lek)로 1레크는 현재 가치로 한화 약 10원. 북·서유럽에 비하면 물가가 매우 저렴해 1천500레크 정도면 깔끔한 레스토랑에서 전채와 메인요리, 디저트까지 즐길 수 있다.

사진제공/류태규

국장席 홍성식 기자/hss@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