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이란③

▲ 이란 왕궁의 벽화. 비밀을 나누는 듯한 남녀의 모습이 흥미롭다.

인근 도시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알리라는 이름의 청년이 노트를 찢어 만들어준 `든든한 이란 가이드북(?)`만을 믿고 테헤란 버스터미널을 나섰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출근시간의 거리는 복잡했다. 누구에게 노트에 쓰인 문구를 보여줄까를 잠시 고민했다. 그리곤, 가장 착해 보이는 인상의 아저씨 앞을 가로막고 그걸 내밀었다.

페르시아어 적힌 쪽지 내밀자
1시간 넘게 숙소 함께 찾아줘
이교도에도 아낌없는 형제의 정
10명 중 7명 이름 `알리` `후세인`
넉넉한 품성, 여유로운 미소 넘쳐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 바뀌어

찾는 숙소와 그 숙소가 위치한 거리 이름이 페르시아어로 적힌 찢어진 노트 한 장.

그가 고민한 시간은 불과 10초도 되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부탁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회사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는 것은 물론, 교통경찰에게까지 물어가며 호텔을 찾아줬다.

아까운 자신의 시간을 1시간도 넘게 뺏겼는데 귀찮다거나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 친절이 놀라울 뿐이었다.

탈레반이나 IS와 같은 교조적 무슬림이 아닌 통상의 이슬람교도들은 여행자나 이웃에게 베푼 자비와 친절이 현세에서의 덕으로 축적된다고 믿는다.

그런 이유로 무슬림들의 친절은 제스처나 포즈가 아닌 진실에 가깝다고 한다.

이란의 도심에 자리한 관공서 벽에선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슬림은 형제”라고 쓰인 문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자는 종교를 가지지 않았으니, 이교도와 다름없다. 그럼에도 이교도에게까지 형제의 정을 베푼 그 아저씨의 선량함과 배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2천500년 전 번성했던 아케메네스 왕조의 유적 페르세폴리스. 허허벌판 가운데 광활하게 펼쳐진 고대의 흔적이 쓸쓸함을 부른다.
▲ 2천500년 전 번성했던 아케메네스 왕조의 유적 페르세폴리스. 허허벌판 가운데 광활하게 펼쳐진 고대의 흔적이 쓸쓸함을 부른다.

한국에서 사간 조그만 열쇠고리를 주겠다고 했지만, 소박한 사례까지 손사래 치며 거부하던 그가 환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다시 출근길을 서둘러야 할 터였다. 지각이 분명할 것이다. 그 사내를 불러 세워 내 이름을 큰소리로 말해줬다.

여전히 웃음 가득한 얼굴로 자기는 “후세인”이란다.

소리 없이 새겨지는 조용한 미소가 오래 전 헤어진 형 같았다. 그의 친절은 채 떨치지 못한 이란에 관한 의심과 공포를 남김없이 털어낼 수 있게 했다.

이처럼 바라는 것 하나 없이 착하기만한 사람들이 사는 땅이라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한들 그게 무슨 걱정이 될까 싶었다. 다행히도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 이란 남자들의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과장을 조금 더하자면 이란에선 사내들에게 이름을 따로 물어볼 필요가 없다.

10명 중 7명의 이름이 `모하메드` `알리` `후세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이란 남서부 지역에 위치한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의 유적 페르세폴리스.
▲ 이란 남서부 지역에 위치한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의 유적 페르세폴리스.

이 명칭 모두는 혈연적 관계로 얽혀있는 초기 이슬람교 지도자다. 모하메드의 사위는 알리고, 알리의 아들은 후세인이다.

이란 사람들은 그들과 자신의 이름을 똑같이 짓는 것으로 존경과 흠모를 바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란을 여행한 17일 동안 최소한 100명이 넘는 후세인, 알리, 모하메드를 만났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열 명 중 아홉이 1970년대 한국의 시골 노인들처럼 순박하고, 순진하고, 정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란 사람들의 조건 없는 친절과 인정으로 인해 아스팔트도 녹아내리는 섭씨 45도의 무지막지한 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차가운 맥주 한 잔 마실 수 없는 스트레스와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인한 짜증까지도. 눈가에 주름을 가득 만들어내며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이란 사람들의 모습엔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기품과 힘이 담겨있다.

이미 수천 년 전 아시아 서부에서 아프리카까지를 자신들의 발아래 두고 통치했던 페르시아 제국.

한때 지구 위에 존재한 인류 절반의 정치와 문화를 주도했던 기억을 가진 이란.

그 영광의 시절은 지나갔지만, 자부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촌스럽다고도 느낄 수 있는 페르시아의 여유로운 미소에는 이유가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강대국 미국과 대립함으로써 가혹한 경제제재를 포함한 각종 불이익을 겪어야 했지만, 이란 사람들은 그조차도 언젠가는 넘어설 운명이라 생각하고 의연하게 대처했다.

의연함에 더해진 웃음의 배후에는 페르시아의 역사가 가져다준 도저한 낙관이 있지 않았을까.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 도시인과 촌부 모두가 얼굴에 담고 있는 환한 미소. 즐겁고 넉넉한 품성으로 여행객을 대하는 이란 사람들을 볼 때면 “이 나라를 여행하는 게 즐거운 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이 아닐까”란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또한, 이란의 매력은 사람에게만 있지 않다. 각종 볼거리 역시 풍부하다.

달리는 버스와 기차의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아득한 사막 풍경은 어린 날의 기억을 돌아보게 하고, 매혹 가득한 도시 이스파한에 웅장하게 들어선 이맘광장의 황금빛 모스크는 이슬람 건축예술의 절정을 관광객에게 선물한다.

 

▲ 이란의 모스크들은 둥근 지붕이 아름답다. 햇살을 받으면 그 아름다움에 신비감이 더해진다.
▲ 이란의 모스크들은 둥근 지붕이 아름답다. 햇살을 받으면 그 아름다움에 신비감이 더해진다.

2천500여 년 전 아케메네스 제국의 황제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의 별궁(別宮)으로 사용된 페르세폴리스는 폐허조차도 장엄하게 아름답다.

이란은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모래바람 부는 황량한 벌판에 이슬람 경전과 폭탄을 든 테러리스트만 있는 국가`가 결코 아니다.

기자가 이란 여행을 결심하고 이를 주위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대부분이 격려보다는 우려를 표했다. 아예 나서서 말리는 이들도 있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가 지구 위에 수도 없이 있는데, 왜 하필 위험한 이란이냐”는 이유에서였다.

실체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나 할리우드 영화로 만나게 되는 이란은 사실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과연 이란의 전부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란에 관해 대부분의 한국인이 가진 편견과 일그러진 선입견.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직접 그 나라를 가보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터. 이란으로의 배낭여행은 이처럼 소박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 이란 소도시의 거리 풍경. 늘어선 노점이 한국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 이란 소도시의 거리 풍경. 늘어선 노점이 한국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이란의 대중교통

동서양을 막론하고 서민들의 발이 되는 건 버스와 택시, 기차와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이다. 여행지에서 버스와 기차에 오른다는 건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이란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대중교통 수단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어떻게 운용되고 있을까.

■ 버스

무슬림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라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풍경이 이란 시내버스 안에선 매일 펼쳐진다.

차량의 앞부분에는 여성들이, 뒷부분엔 남성들이 따로따로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다.

버스가 만석을 이루는 출퇴근 시간이라고 해도 이 원칙은 깨지지 않는다.

`하늘이 두 쪽 나지 않는 한` 여성은 남성들이 있는 뒤편으로, 남성은 여성들이 자리한 앞쪽으로 가지 못한다.

시외버스도 이와 비슷하다. 매표소에서부터 좌석 배정을 남녀가 따로 앉아서 가게 만든다.

이 원칙에선 외국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런 제약이 있는 대신 이란의 버스비는 엄청나게 저렴하다.

기름 값이 싼 게 그 이유다. 시내버스는 약 50원, 시외버스로 10시간을 달려도 승차권 가격은 5천원 남짓이다.

 

▲ 이스파한 도심에 위치한 인공연못과 미려한 양식의 건축물.
▲ 이스파한 도심에 위치한 인공연못과 미려한 양식의 건축물.

■ 기차

유럽에서 사용하다가 폐기 직전에 수출한 것 같은 낡은 기차가 낙타처럼 느릿느릿 이란의 사막을 오간다.

인접국 터키에서 출발해 72시간을 달려 수도인 테헤란으로 오는 국제열차도 1주일 1번쯤 있다.

이란에서의 기차여행이란 `막막한 모래밭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 아래를 달리는` 희귀한 경험을 관광객들에게 제공한다. 국토가 광활한 탓에 1박2일의 기차여행은 흔하다. 좁은 침대칸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는 게 고생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국에선 쉽게 해볼 수 없는 체험이라 도전해볼 만하다.

이란 사람들이 나눠주는 해바라기 씨와 피스타치오 등을 나눠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 지하철과 택시

테헤란의 지하철은 도심 곳곳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다.

1구간권 티켓이 200원 정도라 부담 없이 수도의 주요 관광지를 오갈 수 있다. 서울이나 부산의 지하철만큼 깨끗하고 세련된 서비스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거기 타는 순간 `연예인`처럼 주목받는 희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택시의 경우엔 한국과 달리 미리 가격 흥정을 해서 목적지를 향한다.

`합승택시`는 가는 방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서 운행한다.

동승자를 모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다소 지루하지만, 일반택시보다 저렴하다는 점에서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에게 인기다.

사진제공/류태규

국장席 홍성식  기자/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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