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이란 ②

▲ 이란 한 도시의 버스터미널. 여기엔 다행히 표지판에 영어가 함께 적혀 있다.

문자를 해독할 수 없는 사람들을 문맹(文盲)이라 한다. 세계에서 문맹이 가장 적은 국가들 중 하나에 속하는 한국. 그러나, 그건 한국 사람이 한국에 머물 때 이야기다.

낯선 문자를 읽지 못하고, 처음 가본 나라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 순간부터 꼼짝없이 `문맹 아닌 문맹`으로 살아야하는 것이 여행자의 운명이다. 이란에 도착하면서부터 기자는 문맹이 되고 말았다.

터키와 국경을 접한 한적한 이란의 시골마을. 손짓부터 발짓, 거기에 의성어까지 총동원해 어렵사리 이란의 수도로 향하는 버스가 정차된 터미널을 찾았다.

매표소에서도 `밤늦게 출발해도 좋으니 오늘 중으로 테헤란 가는 버스를 타야합니다`란 요구를 몸짓으로 전달했다.

콧수염과 턱수염은 물론 풀린 셔츠 속으로 보이는 가슴에까지 털이 무성하게 자라 `삼국지`의 맹장 장비를 떠올리게 하는 버스회사 직원이 버스표를 건네주며 “Stay Here(여기서 기다려요)”라고 했다. 이란에 들어온 지 대여섯 시간 동안 들은 가장 긴 영어 문장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이어졌다. 승차권을 들여다보는데 도대체 단 한 글자도 읽을 수가 없다. 출발하는 시간과 좌석 번호, 버스비와 승차장의 위치까지가 모두 다 스파이들이 사용한다는 `난수표`처럼 난해해 보였다. 영어가 아닌 페르시아어였던 것이다.

숫자 역시 대부분의 국가가 사용하는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페르시아식 표기다. 1과 2, 10과 100도 구별이 불가능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다가 글자까지 읽을 수가 없으니 청맹과니와 다름없는 형편이었다. 바가지 쓰지 않고 버스요금을 제대로 지불한 것인지, 출발 시간은 대체 언제인지, 줄을 지어 서있는 수많은 버스 중에서 테헤란으로 가는 건 어떤 건지 도무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당연지사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 이란도 유명 관광지엔 `관광 안내소`가 있지만, 거기서 큰 도움을 받기는 힘들다. 찾아가도 근무자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 이란도 유명 관광지엔 `관광 안내소`가 있지만, 거기서 큰 도움을 받기는 힘들다. 찾아가도 근무자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주위가 빙빙 돌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제 여행의 시작인데, 처음부터 이러면 앞으로는 더 곤란할 터.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니 차가 곧 출발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터미널 부근에서 밥부터 먹기로 했다. 바자르간에서 테헤란까지는 최소 12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다른 여행자들로부터 들었다. 온통 정신없는 상황에서 허기까지 밀려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일단 배부터 채우자.`

이란에서의 첫 식사. 그런데, 이건 또 뭐라고 해야 하나? 밥알 하나하나가 모두 따로 떨어져 논다. 찰기라고는 없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형국이다. 그 위에 얹은 양념한 양고기에서는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냄새가 났다. 익숙하지 않은 중동의 향신료를 엄청나게 사용한 듯했다. 손짓으로 주문한 그 요리를 먹으면서 콜라를 2병이나 마셨다. 한국에선 거의 마시지 않는 청량음료였지만, 그게 없었다면 밥을 삼키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데다가, 전혀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 “이번 여행은 쉽지 않겠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갔다. 그뿐인가. 이란은 `신성 무슬림 국가`라 술을 마시지 못한다. 어디서도 술집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음주가 불법인 나라를 찾은 술 좋아하는 여행자. 비극은 예정돼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하게 사라졌다. 기자는 그때까진 몰랐던 것이다. 이란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얼마나 친절하고 착한지를.

제일 큰 문제였던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조금 우습게도 테헤란 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해결됐다. 글자를 읽지 못하니 `화장실`이란 표지판이 아닌 `남자 그림`을 찾아 볼일을 해결해야 했다. 헌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남자화장실임에도 소변기가 없었다.

`아이쿠, 여자화장실로 잘못 들어왔네`라는 생각에 얼른 돌아 나가려는데 눈썹과 코가 잘 생긴 청년 하나가 웃으며 영어로 알려준다. “여기가 남자 화장실이 맞아요.”

 

▲ 찰기가 전혀 없는 밥과 독특한 향신료를 사용해 구운 양고기. 이란 서민식당의 흔한 요리다.
▲ 찰기가 전혀 없는 밥과 독특한 향신료를 사용해 구운 양고기. 이란 서민식당의 흔한 요리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란 남자화장실엔 소변기가 없다. 그 나라 사내들은 칸막이 속으로 들어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작은 볼일`을 본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고, 무슬림만의 독특한 화장실 문화다. 살다보니 화장실에서도 `문화충격`을 받게 되는구나 싶었다.

어리둥절한 상태 그대로 화장실을 나오니 방금 전 말을 건넨 청년이 물었다. “어디에서 왔냐”고, “이란은 처음이냐”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그처럼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란에 도착해 이틀간 겪어야했던 의사소통의 힘겨움을 넋두리처럼 풀어놓았다.

“말이 하나도 통하지가 않아요. 앞으로 여러 도시를 가봐야 하고, 숙소를 찾아다녀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눈앞이 캄캄합니다”라고. 내려앉은 하늘 아래 선 듯한 기자의 고충. 그러나, 그가 내놓은 해결방안은 의외로 간단했다.

“찾으려 하는 동네 이름과 호텔 이름이 뭐냐”고 물어본 청년은 대답을 듣자마자 자신의 노트 한 장을 찢어 `난수표처럼 난해한` 페르시아어를 두어 줄 휘갈기고는 그걸 건네준다. `OO거리 XX호텔을 찾아가는 한국인입니다. 이 사람을 도와주세요`라는 문장이라고 했다.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때부터였다. 이란에 머물며 이스파한과 페르세폴리스, 쉬라즈와 야즈드 등의 도시를 찾아다닌 17일 동안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란 사람을 만나면 일단 다음날 찾아갈 도시와 호텔 이름부터 알려줬다. 그러면, 그는 페르시아어로 그걸 써주었고, 그게 가장 든든한 가이드북이자 여행지도가 됐다.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걸 보여줘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종잇조각에 불과하지 않느냐?” 그러나, 그런 고민은 이란에서라면 하지 않아도 좋다. 기자의 경험에 의하면 이란 사람 10명 중 9명은 그 쪽지를 본 순간 여행자의 손목을 잡고 가고자 하는 바로 그 동네, 그 장소까지 정확하게 데려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이란 타브리즈에서 테헤란으로 가는 길. 황량한 사막의 풍경이 이어진다.
▲ 이란 타브리즈에서 테헤란으로 가는 길. 황량한 사막의 풍경이 이어진다.
이란여행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

최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풀리고, 그로 인한 개방의 물결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란. 하지만, 아직은 오랜 시간 지속돼온 무슬림사회의 경직성과 종교적 금기가 완벽하게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이란여행에선 외국인이 조심해야 할 사안이 몇 가지 있다. 상대방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도 아래 열거하는 것들은 주의하자.

▲ 여성과의 신체 접촉은 금물 : 이슬람교는 친족을 제외한 남성이 여성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도인 테헤란의 개방적인 소수 여성들을 제외하면 모르는 남성과 말을 섞는 것조차 저어하는 게 대부분의 이란 여성들이다. 특히 시골로 가면 멀리서부터 외국인 남성을 피해 대문 안으로 숨어버리는 히잡 쓴 여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무리 반갑더라도, 또는 친절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하더라도 이란 여성에게 악수를 청하거나 그녀들의 어깨를 두드려서는 안 된다. 가벼운 목례로 감사를 전하는 게 이란 여성을 위한 예의이자 배려다.

▲ 모스크에 들어갈 땐 손발을 씻어야 : 무슬림들의 교당인 모스크는 이란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신성한 공간이다. 이슬람교도들만 입장이 가능한 모스크가 많지만, 일부 모스크에서는 다른 종교를 가졌거나, 신을 믿지 않는 이들의 출입도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스크 안에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무슬림들의 기도를 방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곤란하다.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는 입구에 마련된 수돗가나 우물에서 손과 발을 씻고, 머리칼을 정돈하는 무슬림식 예의를 갖추는 것도 여행자가 잊지 않아야 할 사항이다.

▲ 술 반입 때는 강제 추방될 수도 : 무슬림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종교적인 이유에서다. 소도시 조그만 밥집에서부터 번화한 대도시 중심가와 유명 관광지의 식당가 어디에도 돼지고기를 요리해 판매하는 곳은 없다. 술도 마찬가지다. 이란의 남성들은 술 대신 홍차와 물담배, 견과류 등을 즐긴다. 이러한 이슬람의 `금주 원칙`은 외국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 한 방울의 술도 이란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만약 국경검문소나 출입국사무소에서 술을 가진 것이 적발되면 강제 추방될 수도 있다. 모주꾼들이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사진제공/류태규

국장席 홍성식 기자/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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