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베트남 ③

▲ `하롱베이 드래곤 보트 투어`. 기암괴석과 바다 풍경이 더없이 아름답다.
▲ `하롱베이 드래곤 보트 투어`. 기암괴석과 바다 풍경이 더없이 아름답다.

남부 사이공에서 출발한 베트남 기차여행. 종단열차의 북부 종착역인 하노이에 내렸을 때는 새벽이었다.

남태평양에서 발생한 쓰나미와 일본을 뒤흔든 지진으로 세계가 시끄러웠던 시기. 기상이변이 이어졌다. 하노이 날씨가 한국의 초겨울처럼 추웠다. “이런 날씨를 겪기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흔드는 현지인들.

그때 기자가 가진 옷이라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가 전부. 시장으로 가서 실로 뜬 점퍼를 15달러에 샀다. 그걸 껴입고, 긴 바지를 사 입었는데도 춥다. 하노이에 도착하기 전 여행했던 나라는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영상 30도 이상의 지역에 있다가, 궂은비 추적대는 날씨를 버티려니 죽을 맛이었다.


현지에서 먹는 베트남 쌀국수, 가격 싸고 맛도 일품
하롱베이 근사한 기암괴석 사이를 오가는 배에서
호주·헝가리·인도·스위스 등서 온 관광객들과 유유자적

목욕탕에 비치된 것과 비슷한 플라스틱 의자가 줄줄이 놓인 노천식당에서 500원짜리 쌀국수 한 그릇을 주문해 국물을 마셨다. 떨어진 체온이 돌아오는 느낌. 내처 한 그릇을 더 시켰다. 속이 든든해지니 마음에도 훈풍이 불었다.

숙소를 잡아두고 산책에 나섰다. 나라가 멸망 위기에 처했을 때 칼이 솟았다는, 국권을 회복한 후에는 거북이가 나타나 칼을 돌려받고 사라졌다는 전설이 떠도는 호안끼엠 호수. 호안끼엠의 한자 표기는 `還劒(환검)`이다. 칼을 돌려준다는 뜻. 많은 사람들이 호수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카페에서 베트남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베트남 음식은 인근 국가인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음식에 비해 조금 더 맛있다.

바게트의 가운데를 갈라 채소와 소시지 등을 넣어 매콤한 소스를 곁들여 먹는 베트남 샌드위치는 가격 대비 풍미가 그만이다.

 

▲ 독특한 향신료를 사용한 베트남 요리.
▲ 독특한 향신료를 사용한 베트남 요리.

한국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베트남 쌀국수도 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일품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가격도 싸다.

샌드위치는 500~1000원. 쌀국수 역시 깔끔하고 인테리어가 잘 된 식당에서도 3000원 이상을 받지 않았다.

아마 사이공에서였을 것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베트남식 요리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거리를 걷다 숯불에 굽는 양념한 돼지고기 냄새에 멈춰 섰다.

그 냄새를 따라 가니 대나무로 울타리를 친 식당이 나타났다. 주인도 종업원도 영어를 못한다.

그러나, 그게 무슨 걱정이랴. 손가락으로 익어가는 고기를 가리키며 “저것 먹고 싶어(I Want that)”라고 했다. 구운 돼지고기와 다양한 허브, 몇 가지 양념 종지. 거기에 라이스페이퍼(쌀종이)까지가 상 위에 등장했다.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지? 의문을 해결해줄 사람이 나타났다. 20대 초반으로 짐작되는 여성 종업원.

 

▲ 베트남인들이 아침에 즐겨 먹는 죽.
▲ 베트남인들이 아침에 즐겨 먹는 죽.

라이스페이퍼를 펼치고, 그 위에 고기와 허브를 놓은 후 몇 종류의 양념을 뿌린다. 그리고, 재빠르게 도르르 말아 접시 위에 놓아준다.

보기엔 어렵지 않은데 직접 해보니 잘 안 된다. 고기나 채소를 너무 많이 넣어 예쁘게 말리지가 않았다. 그 모습이 우스운지 깔깔거리던 종업원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라이스페이퍼를 말아줬다. 맛있는(?) 추억이다.

하노이에 갔으니, 하롱베이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르던 용이 추락하며 만들어졌다는 기암과 괴석. 근사한 동양화처럼 펼쳐진 드라마틱하고 멋들어진 바다 풍광.

용을 본떠 만들었다는 `드래곤 보트`를 타고, 1박2일을 바다 위에서 먹고 자는 여행객 대상 관광상품이 많았다. 그중 하나를 예약했다. 식사와 음료수 제공, 배 안에 마련된 싱글룸에서 숙박, 숙소에서 하롱베이까지 픽업을 포함 60달러.

 

▲ 베트남은 어느 도시건 과일 행상이 흔하다. 정겨운 삶의 풍경이다.
▲ 베트남은 어느 도시건 과일 행상이 흔하다. 정겨운 삶의 풍경이다.

출발 당일. `하롱베이 드래곤 보트 투어` 동행자들과 만났다.

호주에서 온 가족, 미국에 산다는 인도인 부부, 나이 지긋한 헝가리 노부부, 스위스에서 온 커플, 그리고 갓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는 폴란드 아가씨가 4명. 동행이 없는 기자에겐 더없이 멋진 여행 친구들이었다.

세상 모든 형상을 빚어놓은 듯한 기묘한 바위섬 사이를 가르며, 큰바다로 나가는 배 위에 올라 유유자적하는 하루.

폴란드 아가씨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차가운 백포도주를 마셨다. 목구멍을 뜨겁게 만드는 알코올 함량 40%의 `하노이 보드카`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물론, 폴란드 아가씨들에게도 권했다.

 

▲ 자전거를 개조한 베트남의 운송수단 시클로.
▲ 자전거를 개조한 베트남의 운송수단 시클로.

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꽤 많은 술을 마신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러시아와 몽골 사람들이 그랬고, 폴란드인들도 그랬다. 러시아와 몽골의 추운 날씨는 이미 유명하고, 폴란드 역시 겨울 평균기온이 영하 20도를 밑도는 혹한의 국가다.

저녁을 먹고, 2층 갑판에 각국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호주에 사는 아저씨는 집에 수영장과 테니스장이 있단다. 스위스에서 온 서른한 살 사내는 6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거기에 제 나라 말까지. 인도인 부부는 채식주의자라 배에서 제공되는 음식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 부부는 해산물과 육류 위주로 구성된 요리가 차려진 저녁 식탁에서 내내 감자튀김만 먹었다. 그것도 “식물성 기름으로 튀긴 것이냐?”를 수차례 물어보며. 세계의 채식주의자 중 절반이 인도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위에 세워진 사당.
▲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위에 세워진 사당.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산다는 퇴직한 수학 교사는 “한국 시인 중에 김춘수라는 사람이 있고, 그가 쓴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흥미를 보이며 묻는다. “어떤 내용인가요? 슬픈 겁니까?” 놀란 표정의 퇴직교사를 바라보며 우아하게 나이든 그의 아내가 조용히 웃었다.

이윽고 밤은 깊어 자정이 가까워왔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잠을 청하며 침대에 누운 시간. 배 안에 마련된 조그만 방을 나와 난간에 기대 어둠에 물든 바다를 바라봤다.

주위는 고요했고 일렁이는 물결 소리만이 귓전을 간질였다.

기자는 호치민과 보 티 사우, 이념과 전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차별과 평등, 사이공의 빌딩숲과 하롱베이 바다 밑을 헤엄치는 거대한 물고기를 떠올렸다. 그 복잡한 단어와 문장들이 불면의 밤을 예고하고 있었다.

사진제공/류태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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