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인도 (13)

▲ 빼어난 미적 감각으로 만들어낸 인도의 대표적 건축물 타지마할.
▲ 빼어난 미적 감각으로 만들어낸 인도의 대표적 건축물 타지마할.

벌써 꽤 오래 전 일이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직장생활이 7년을 넘어서던 시기. 달디 단 오아시스를 만났다. 1개월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황금보다 소중한 그 한 달을 어디서 어떻게 보낼지 고민했다. 그 고심의 시간 끝에 인도가 기자에게로 왔다.

새카만 그들의 순박한 미소
그리고 무조건적인 친절
첫 대면때의 충격·공포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

델리로 들어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타지마할을 보고, 인간 존재의 무상함과 삶의 덧없음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는 바라나시에 갈 수도 있었지만, 태생적으로 `물`을 좋아하는 기자는 인도 북부의 역사와 실존자각 대신 남인도의 바다를 택했다.

 

▲ 성자들이 모여든다는 풍문이 떠도는 도시 바라나시의 풍경
▲ 성자들이 모여든다는 풍문이 떠도는 도시 바라나시의 풍경

인도의 `경제수도`로 불리는 뭄바이로 들어가 역삼각형 대륙의 아래쪽 꼭짓점인 트리밴드럼까지 서남해안 바다를 따라 1천600km를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혼자서 떠나는 먼 여행. 설레는 마음에 2~3주 전부터 쉬이 잠들 수가 없었다.

`배낭여행자의 바이블`로 이야기되는 `론리 플래닛`을 포함, 관련 책을 여러 권 구입해 인도의 역사와 풍습, 지리와 사람들에 관해 진지하게 공부하기도 했다. 무엇 하나에 그토록 집착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 이후 처음이었다.

마침내 AI(인도항공) 여객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하던 날. 기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비록 생면부지의 땅이지만 나름 철저한 사전 조사와 학습을 통해 `인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인도 곳곳에선 독특한 양식으로 축조된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 인도 곳곳에선 독특한 양식으로 축조된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믿음은 홍콩과 델리를 경유한 비행기가 뭄바이국제공항에 착륙하자마자 무참하게 깨어졌다. 기자의 믿음은 착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공항에서 숙소를 향하는 에어컨 없는 고물 택시. 그 안에서 내다본 뭄바이의 새벽 풍경은 살벌했다. 수를 헤아리기 힘든 사람들이 이불도 없이 아스팔트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자고 있었다.

동양에서 가장 거대한 슬럼(slum)이 뭄바이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책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실상 앞에서 느낀 놀라움과 충격은 독서를 통한 이성적 자각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어디선가 끊임없이 풍겨오는 생선 썩는 냄새와 인도 특유의 자극적인 향신료가 비위 약한 기자를 괴롭혔다.

 

▲ 인도 북부의 한적한 시골마을. 맑은 물과 푸른 하늘이 조화를 이룬다.
▲ 인도 북부의 한적한 시골마을. 맑은 물과 푸른 하늘이 조화를 이룬다.

1~2km 이상 이어진 슬럼의 풍경들. 차 소리에 잠이 깬 여자 하나가 새까만 얼굴에 유난히 큰 눈을 빛내며 달리는 택시를 말없이 바라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과 공포`였다.

평소 배짱 하나는 두둑하다고 믿었는데, 이건 상상 밖이었고 예상을 뛰어넘었다. 몇몇 여성 여행자들이 뭄바이 혹은, 델리의 풍경에 기가 질려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다음날로 귀국 비행기를 탔다는 풍문이 과장된 것이 아니란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충격과 공포는 오래 가지 않았다. 가난한 그들의 순박한 미소와 무조건적인 친절은 인도 첫날의 놀라움과 두려움을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그 미소와 친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더 자주 그리고, 구체적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미리 말하자면, 기자가 인도에 머문 27일의 시간 동안 한 번도 사소할망정 위험에 처한 적이 없었고, 인도 사람들에게 상처받거나 실망한 때가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라서는 `가난한 사람도 아름다울 수 있는` 인도에 더 머물고 싶어 이런 메모를 끼적였다.

 

▲ 키 큰 야자수가 줄지어 늘어선 인도 중부지역 풍경.
▲ 키 큰 야자수가 줄지어 늘어선 인도 중부지역 풍경.

“나, 언젠가는 다시 여기로 돌아와 바르칼라 해변의 야자수 아래서 수채화처럼 늙어 가리라.”

잠시잠깐 머문 공간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망까지 품게 한 인도. 어떤 감동이 기자를 그렇게 만들어놓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답은 쉽게 나왔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었다.

가끔 서울역엘 간다. 거기서 만나는 걸인들. 담배 한 개비와 푼돈을 요구하는 그들의 얼굴은 열이면 열 모두 일그러져 있다. 백 번 이해한다.

그 상황에서 누가 웃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에서 찡그리고 사는 이들은 걸인만이 아니다.

아침 출근길. 버스정류소에서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회사원과 공무원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이 찡그린 표정은 기사가 운전하는 자가용 뒷좌석에 몸을 기댄 고위관료나 기업 대표도 비슷하다. 이러니 “한국엔 행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극단적인 농담까지 나오는 게 아닐까.

 

▲ 오염되지 않은 푸른 강을 여유롭게 항해하는 인도의 하우스보트.
▲ 오염되지 않은 푸른 강을 여유롭게 항해하는 인도의 하우스보트.

인도를 여행하며 적지 않은 돈을 `박시시`(적선) 했다. 손발이 잘려나간 불구의 중년사내에서부터 젖먹이를 안고 때 묻은 손을 내밀던 10대 미혼모, 거기에 도저히 나이를 예측할 수 없는 주름진 얼굴의 노인에게까지.

그런데 놀라웠다. 그들 모두가 구걸을 하면서도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한 시인의 레토릭(수사)을 빌리자면 `얼굴 가득한 높고도 커다란 미소`였다. 인구의 70%가 하루에 1천원 이하의 돈으로 겨우 연명한다는 가난한 나라에서 만난 환한 웃음.

특히 아이들이 그랬다. 주행 중인 택시나 오토릭샤를 따라 한참을 달려와 헐떡이면서도 기자가 내미는 5루피 동전 혹은, 20루피 지폐를 받으며 천사처럼 웃었다. 그 웃음은 잔돈이 없어 적선 요구에 응하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한번 구걸을 시작한 아이는 죽을 때까지 걸인으로 살게 된다. 가난한 나라에 가서 잔돈푼으로 자신의 휴머니즘을 과시하는 여행객들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고.

그러나 생각해 보라. `가난한 어린 천사`가 세상사 때 묻은 우리에게 한 끼의 밥을 원하며 웃고 있는데, 그걸 그냥 내치는 게 옳은 일인가? 눈앞에서 일어나는 비극은 못 본 체 하면서, 세계평화와 인간존엄만을 강변하는 사람들을 기자는 믿지 않는다.

분명 기자는 다시 인도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하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금액을 `박시시` 할 것이다. 왜냐, 인도 아이들이 가르쳐준 `웃음의 힘`에 비하면, 돈이란 건 정말이지 하찮은 것에 불과하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한국 사람들, 돈이라면 벌벌 떤다. 아까워서 남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아까운 돈`은 그냥 두고, 돈 쓰지 않아도 만들 수 있는 웃음만이라도 나누고 살면 어떨까.

 

▲ 재래시장에서 기념품을 놓고 흥정하는 인도 상인과 유럽 여행자.
▲ 재래시장에서 기념품을 놓고 흥정하는 인도 상인과 유럽 여행자.

마음을 비우면 더욱 즐거워지는 인도여행

한국인들에게 인도는 익숙하고 편한 여행지가 아니다.

중국의 북경이나 상해 혹은, 일본의 동경처럼 3박4일 정도의 짧은 일정으로 훌쩍 다녀올 만큼 가깝지도 않고,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해변의 휴양지처럼 관광객을 위한 인프라가 좋은 것도 아닌 곳이 인도다.

하지만, 인도는 시간을 들이고 불편을 감수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여행지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불교 유적들을 한 나라 안에서 모두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이방인을 향한 따스한 미소를 확인할 수 있는 인도.

게다가 저렴한 물가는 여행자들에게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드넓은 국토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계절마다 펼쳐지는 화려하고 이색적인 축제. 이처럼 매력 가득한 나라 인도를 `행복하게` 여행하기 위해서는 아래 2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 `신비주의의 안경`을 벗어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한없이 신성한 나라` 또는, `해탈한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한 곳`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이런 선입견은 영화나 소설, 여행에세이 등에서 보거나 읽은 것 모두를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생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인도에도 비양심적인 도둑과 사기꾼이 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도 지천이다.

`성자(聖者)의 나라 인도`라는 환상을 깨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인도여행은 시작된다. 편견과 선입견을 가진다면 그 나라의 깊숙한 저변과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진실을 보지 못한다.

▲ 짜증이 나더라도 웃음을

무더위와 비위생적인 환경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인도 일부 지역의 한낮 기온은 섭씨 40도를 오르내린다. 한국에선 경험하기 힘든 더위다.

거기에 허름한 식당의 접시와 컵 위로는 파리가 몰려다니기도 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라붙어 지긋지긋한 호객 행위를 하는 장사치도 적지 않게 만나게 된다.

여행을 하다보면 짜증나는 상황과 마주칠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엔 편안한 마음으로 웃어버리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여행이란 `집` 밖으로 나서는 것이고, 집 밖이 집처럼 편안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사진제공/송선호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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