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이란④

▲ 야즈드 시내에 세워진 이슬람양식의 건축물.
▲ 야즈드 시내에 세워진 이슬람양식의 건축물.

이란 사람들은 “이스파한은 세상의 절반(Isfahan Nesf-e Jahan)”이라고 자랑스레 말한다. 이는 이 나라 사람들이 이 도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그대로 드러낸 문장이다.

수도 테헤란을 이틀 여행한 후 200여 개에 가까운 모스크가 멋들어진 모습을 뽐내는 `이란 최고의 관광지` 이스파한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수백 년 전 만들어진 여러 개의 근사한 교량과 그 옛날 영화를 짐작케 하는 공중목욕탕까지 즐비한 곳. 유럽 각국의 시인들조차 그 번영의 역사와 휘황한 이슬람 문화유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도시로.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한없이 수줍고 순진한 친구 `모하메드`
술 대신 진한 홍차와 물담배로 밤 늦도록 국경없는 우정 나눠

이스파한에 도착한 바로 그날 해질 무렵, 이맘광장 내부의 모스크 앞에서 덩치가 산만 한 청년을 만났다. 다소 험상궂다고 해도 좋을 외모와는 달리 한없이 부끄러움을 타는 그의 이름은 이란에선 흔하디흔한 모하메드. 독일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에서 일한다는 그가 기자에게 “친구가 돼달라”고 청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낯선 곳에서 현지인과 친구가 된다는 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기에.

 

▲ 고풍스런 이스파한의 호텔. 정원엔 붉은 꽃들이 만발했다.
▲ 고풍스런 이스파한의 호텔. 정원엔 붉은 꽃들이 만발했다.

이란식 물담배 `갤리언`과 엄청난 양의 설탕을 넣은 홍차를 파는 가게로 나를 안내한 모하메드는 한국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가 경험해본 외국이라곤 회사일 때문에 이틀 출장 다녀온 독일이 전부. 그렇기에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기자가 들려준 여행 경험담이 인상 깊고 고마웠던지 “내일 내 친구들과 만나 인사라도 나누면 좋겠다”고 했다. 이 역시 고마운 제안이었다. 다음 날 만나 악수를 나눈 모하메드의 친구들 역시 순박했다. 또한, 처음 보는 외국인을 편견 없는 친절한 태도로 대해줬다.

그 장소가 한국의 어느 도시였다면 두말 할 것 없이 새로 사귄 남자친구들끼리 술집으로 몰려가 부어라 마셔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이란. 어디에도 술을 파는 곳이 없으니, 아쉽지만 찻집에서 밤늦게까지 홍차와 물담배를 가운데 두고 `미남들(?)의 수다`를 떨어야 했다.

익숙지 않은 영어와 보디랭귀지로 더듬더듬 이야기를 주고받던 어느 한순간. 모하메드가 조심스럽게 고백 하나를 했다.

▲ 이란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도시 이스파한에는 미적 완성도가 높은 교량이 여러 개 있다.
▲ 이란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도시 이스파한에는 미적 완성도가 높은 교량이 여러 개 있다.
“홍(여행을 할 당시 많은 외국인들이 기자를 이렇게 호칭했다), 이건 비밀인데, 나도 딱 한 번 술을 마셔본 적이 있어. 독일 베를린에 갔을 때였는데 맥주란 걸 한 모금 먹었지. 그런데 말이야….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게 있었다니. 정말 놀랐어.”

서른 살이 넘도록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 사람에겐 맥주 한 모금이 준 취기가 그처럼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어진 모하메드의 말에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내가 술을 마셨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돼. 이 사실은 아내에게도 비밀로 했으니까.”

그랬다. 대다수 무슬림들은 종교적 신념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다. 하지만, 신념만큼이나 중요한 게 인간의 욕망 아닌가. 이란 사람들이라고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꿈꾸는 `일탈의 욕구`가 왜 없을까. 인간은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것들을 끝임없이 욕망하는 존재인 것을.

한국인들에겐 아무 것도 아닌 `한 잔의 술`이 모하메드에겐 자신이 믿는 신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일탈이 될 수도, 아내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비밀이 될 수도 있는 게 세상사다. 우리는 그런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모하메드의 고백처럼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은 또 있다. 이란 중부의 모래바람 부는 사막도시 야즈드를 여행할 때 머물던 호텔에서였다. 그곳 매니저로 일하는 스물여섯 살 미남청년 알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은밀히 기자를 부른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뜸 이런 부탁을 해왔다. 

▲ 사막도시 야즈드는 물이 귀하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워진 곳에 함께 조성된 인공연못.
▲ 사막도시 야즈드는 물이 귀하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워진 곳에 함께 조성된 인공연못.
“어이, 홍. 어제 우리 숙소에 여행 중인 네덜란드 여대생이 두 명 왔어. 그런데, 그중 하나가 나보고 데이트를 하자고 하더라고. 그런데, 큰일이야. 나는 어떻게 하면 여자가 기뻐하는지 알지를 못해. 네가 조언을 해줄 수 없을까?”

대체 이런 질문에는 어떤 답변을 내놓아야 할까. 진지하기 짝이 없는 그의 태도와 어투에 농담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기껏 내놓은 해결방안은 이랬다.

“그 네덜란드 여자애는 데이트를 해본 경험이 너보다는 훨씬 많을 거야. 그러니, 네가 뭘 해주려 하지 말고, 그 여자애가 리드하도록 데이트의 주도권을 넘겨봐. 그게 좋을 것 같네.” 이처럼 형편없는 어드바이스였음에도 알리의 얼굴은 대번에 환해졌다.

너무나 닳고 닳은 세상을 살아온 우리. 그런 까닭에 여자를 즐겁게 해주는 방법을 처음 본 기자에게 물어보는 알리의 대책 없는 순진함이 감동적이기까지 한 순간이었다.

이스파한을 여행할 때 만난 이란 여대생들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붉은 꽃 흐드러진 정원이 고풍스러움을 더하는 숙소. 그곳엔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댄 지역의 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20여 명이 묵고 있었다. 

▲ 낙타 고기로 만든 스튜와 사프란을 넣어 지은 밥. 이란이 아니라면 보기 힘든 메뉴다.
▲ 낙타 고기로 만든 스튜와 사프란을 넣어 지은 밥. 이란이 아니라면 보기 힘든 메뉴다.
친구들과 함께 온 수학여행의 즐거움에 들뜬 스물, 스물한 살 소녀들은 밤에는 밖에 나오지 말라는 지도교수의 엄포에도 늦은 시간까지 정원 나무의자에 모여 앉아 기자와 체코에서 온 전기기술자에게 서툰 영어로 수십 가지 질문을 던지며 까르르 댔다.

“당신들은 왜 아내도 없이 혼자 여행을 하나요?”

“종교가 없다고요? 그게 말이 되나요?”

“한국과 체코 여자들은 남자가 보는 앞에서도 춤을 춘다고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바깥 세상에 대한 의문들. 여대생들의 웃음 끝에 매달린 순진함과 순수함이 더없이 좋아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어떤 질문도 피해가는 법 없이 솔직한 이야기를 이란 소녀들에게 들려줬다.

기자와 전기기술자의 답변에 때로는 깜짝깜짝 놀라고, 때로는 자기들끼리 귀엣말을 속삭이며 웃는 그네들의 모습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한국의 스무 살 여대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머리에 히잡을 썼느냐 쓰지 않았냐만이 달랐을 뿐.

▲ 1979년 회교혁명을 주도한 이슬람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사진. 이란 지폐에서도 호메이니의 얼굴을 볼 수 있다.
▲ 1979년 회교혁명을 주도한 이슬람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사진. 이란 지폐에서도 호메이니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란 사내들이 즐기는 기호품은…

끼니 외에 과자나 과일 따위를 먹는 걸 일컫는 `군것질`. 보통 군것질은 아이들이나 여학생들이 주로 즐기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란에서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돼지고기와 함께 음주를 엄격하게 금하는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이다. 술을 마실 수 없는 이란 남성들은 확실히 한국 사내들에 비해 군것질을 즐긴다. 공원이나 기차·버스 안, 심지어 거리를 걸으면서도 호두나 아이스크림, 과일주스를 먹고 마시는 콧수염 기른 건장한 남자들을 볼 수 있는 게 `신성 무슬림공화국` 이란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기호품을 특히 좋아할까.

▲ 이스파한에서 만나 친구가 된 모하메드. 물담배와 홍차를 즐기는 이란의 찻집.
▲ 이스파한에서 만나 친구가 된 모하메드. 물담배와 홍차를 즐기는 이란의 찻집.

▲설탕 듬뿍 넣은 홍차

이란만이 아닌 중동의 많은 국가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음료가 따뜻한 홍차다. 잘 단장된 찻집은 물론, 허름한 노점에서도 홍차가 담긴 잔을 든 남성들을 만날 수 있다. 더운 날씨로 인해 당분이 필요한 탓인지 한국보다 훨씬 달콤하게 마시는 게 특징이다. 조그만 찻잔에 설탕 3~4 티스푼을 넣는 건 기본. 좀 더 단맛을 원하는 이들은 아예 각설탕을 입술에 물고 홍차를 마시는 진풍경도 연출한다. 손님 접대에도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게 홍차와 집에서 만든 과자다.

▲사과 향기 진한 물담배

터키와 동남아시아에서는 `나르길레` 혹은, `시샤`라고 부르는 물담배도 이란 남성들이 사랑하는 기호품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갤리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흡연양식이 페르시아에서 최초로 시작됐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갤리언의 구조상 물을 통과한 연기를 흡입하게 되는데, 이때 말린 담뱃잎에 사과와 오렌지, 포도 등 각종 과일향을 첨가해 풍미를 더한다. 대부분의 이란 남성들은 사과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 있는 물담배를 선호한다.

▲갖가지 견과류

이란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놀랐던 건, 버스나 기차 안 승객의 70~80%가 땅콩과 해바라기씨, 피스타치오와 아몬드 등의 견과류를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역이나 버스터미널 매점은 물론, 도로변 간이휴게소에도 견과류는 최고의 인기상품이다. 기자 역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아쉬움을 해바라기씨나 아몬드를 씹으며 달랬음을 고백한다.

사진제공/류태규

홍성식 국장席 기자/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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