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하나. 망망대해 더 넓은 한가운데 거친 파도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좌우로 번갈아 가며 쉼 없이 기울기를 멈추지 않는 바다다. 언제부터였는지, 언제까지 일지, 종잡을 수 없이 점점 더 거칠게 흔들리고 있다. 손을 뻗어 휘저어 보아도 손 하나 걸치고 의지할 곳 없는 바다다. 함께 하자며 위로해주거나 관심 둬주는 이 없는 오롯이 혼자가 되는 바다다. 이상(理想)과 현실이 뒤섞여 파도의 물거품처럼 시야를 가린다. 잃어버린 방향을 찾고자 하는 의지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여기가 어딘가. 나는 무엇인가. 바다는
11월 27일 올겨울 첫눈이 왔다. 종일 오더니 많이도 왔다. 11월에 폭설이 내린 것은 1966년 11월 2일 이후 처음이란다. 무려 19.4cm를 왔기 때문이다. 겨울 채비로 황량했던 대지도 나무도 흰 솜털 이불을 덮은 것 같다. 갑자기 하얗게 채색된 사위(四圍)가 동화(童話)속의 나라를 연상케 한다. 옛날, 어린 시절 겨울 어느 날, 고향 집, 아침에 일어나면 장독대 위에 하얗게 쌓여 있던 눈, 첫눈만 보면 단숨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다. 동화 속의 나라가 거기쯤일까. 동화속의 나라라면 북유럽을 빼놓을 수 없다. 그곳 눈의 나
옥상에 그녀가 산다. 이른 봄부터 부지런을 떨어 꽃망울을 맺어 우리 집 옥상을 환히 밝히는 예쁜 그녀, 미니장미. 6월 어느 날 꽃을 잘 기르는 친구에게서 화초를 튼튼하게 해 준다며 비료를 선물 받았다. 한창 꽃을 피우는, 기특하고 예쁜 그녀에게 힘을 보태주고 싶은 마음에 영양제라 생각하며 비료를 한 움큼 넣어주었다.그런데 아뿔싸, 애정이 넘쳤는지, 손이 너무 컸는지, 나의 일방적인 애정행각으로 의도치 않게 꽃이 마르고 초록 잎이 연두로 변하면서 우수수 낙엽 지고 쪼그라들었다. 한창 꽃 필 시기에 황량하게 말라버린 그녀를 보며 어쩌
아내가 관여하는 단체에서 장난감 같은 콩나물시루와 나물 콩을 받아들고 들어왔다. 시루 안 지름이 겨우 12센티밖에 되지 않아 두 식구가 한번 먹을거리도 되지 않을만하게 작았다. 호기심 반, 장난 반의 심정으로 콩을 하루 동안 물에 담갔다 시루에 안쳤다.시루를 식탁 의자 위에 올려놓고 오가며 심심풀이로 물을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콩나물 머리가(대가리가) 커지고 줄기가 나오며 시루 위로 솟구쳐 올라와 무너지려 하였다. 처음 시도하다 보니 요령 없이 콩을 너무 많이 넣은 것이다. 임시변통으로 반 뼘 높이로 테를 매고 나서 사흘이 지나자
“너의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고 시작하는 신경숙님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엄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두 아들의 엄마인 나 자신도 생각해 보았다.엄마가 아니면 공감할 수 없는 가슴 먹먹한 내용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인줄 알고 무엇이든 자식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사람 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엄마도 누군가의 딸 이었거나 한 남자의 여자였으며 사랑 받기를 갈망하는 존재임을 잊어버리고‘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기를 강요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
차를 샀다. 지지난해 12월이니 일 년차 무료점검 기간이 지났고 이년이 지나면 무료가 아니란다. 내게 팔았던 그 사나이가 1년이 다가올 무렵 전화라도 주었으면. 차를 판 후로 연락이 없다. 물론 새로운 차가 나왔다고 팸플릿은 고정적으로 온다. 6개월에 한 번 정도 차를 잘 타고 다니는지 안부라도 전한다면. 자동차 서비스공장에 가서 무료 서비스를 받았는지 슬쩍 팁을 준다면 이 사람을 나의 네트워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소개하겠다. 하지만 소식이 없다.보험을 들었다. 아들이 길에서 자전거 타고 가다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병원에 입원해
나는 딸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 예쁜 빨강과 꽃받침 같은 초록의 꼭지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변함없는 조합처럼 질리지 않는 색이다. 점점이 일정한 비율로 박힌 딸기 씨의 그 질서는 또 어떤가! 모나지 않은 삼각뿔 같은 딸기의 모양은 가로로 썰어도, 세로로 썰어도 식욕을 마구마구 일으킨다.잘 익은 딸기의 달큰하고도 아름답기까지 한 냄새를 맡노라면 내 모든 후각세포가 들고 일어나 환호하는 듯하다. 딸기를 씻고서 잘라낸 딸기 꼭지를 주방 싱크대에 두어도 온통 딸기향이 진동을 한다. 작은 몸으로 한 공간을 채우는 녀석의 힘이 대단하다.원래 딸기
‘어둠이 내리면 작은 등불 하나 밝힌다. 암흑의 천지를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그 누구의 호젓한 마음 하나 밝히기 충분한 빛이다. 언젠가는 어두운 밤하늘 수많은 별 중의 하나 되어 영원히 빛날 그 빛이다.’사진에서의 대상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도 하고 그 대상이 과거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도 한다. 또한, 내 눈앞에서 존재하고 있다 하더라도 미래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진에서의 대상은 존재한다는 것과 사라졌거나 사라지리라는 것을 함께 의식하
지붕은 경계다. 지붕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분리해주는 경계다. 쉼이 필요한 나를 대신해 언제나 하늘을 대면하며 변화무쌍한 수많은 변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태양의 뜨겁고 과한 열정도, 거센 폭우의 성난 야성도, 엄동설한의 한기도 거부하지 않고 막아준다. 지붕의 표면은 나의 얼굴이며, 지붕의 형태는 나의 외형이다. 지붕은 지금의 나를 냉정하게 표현하여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더 나은 나를 꿈꾸게 한다. 나는 지붕 아래에서 지붕 밖 세상을 꿈꾼다. 지붕은 내가 힘차게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휴식을 준다. 지치고 힘겨울
오늘 사진을 네 장이나 찍었다. 내 모습을 찍기는 오랜만이다. 자세를 잡아주는 남자분의 손길이 조심스럽다. 찍기 전 목걸이가 거슬린다고 빼란다. 내가 혼자 빼려고 애쓰고 있으니 그것도 손수 빼주신다. 자상도 하시지. 목부터 전면 옆모습, 그러더니 누우란다. 난 마지못해 누웠다. 옆으로 돌아누운 모습까지 찍고서야 됐다고 나가 있으란다.의사가 사진을 보더니 목이 많이 삐었단다. 한동안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약도 처방해준다. 그리고 물리치료실로 갔다. 이곳은 물리치료를 잘한다고 지인이 추천한 병원이다. 뜨듯한 찜질팩을 목과 허리에 대고
거실을 공부방처럼 꾸미기로 했다. 차일피일 미루어둔 일이라 양치 안 한 식후처럼 불편하던 터였다. 거실을 지나다니며 ‘정리를 해야지’하면서 신경이 쓰이는 순간부터 마음도 들쑥날쑥 했더랬다. 며칠 전 집 정리 tv프로그램을 본 것이 결정적이었다. 늘 바쁘다는 남편에게 아이들도 자랐으니 거실을 공부방으로 만들면 완벽한 공간이 될 거라고 바람을 잡았다.한 동안 거실을 중심으로 삼고 지내온 흔적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우선 버려야 할 것들을 아이들과 타협해야만 했다. 피아노 위에 도토리 키 재기로 앉은 인형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
지금 나는 내가 스무 살 일 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엄마는 열아홉 살부터 아들 다섯을 드문드문 낳았다. 나는 엄마 나이 서른여덟에 늦둥이 고명딸로 태어났다.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런 내가 몇 개월 동안 현실의 아픈 손가락의 고통으로 고생 중이다. 저녁이면 붓고 아프고 구부러지지도 않는다. 밤잠을 이룰 수도 없고 통증은 새벽까지 이어진다. 어떤 이는 류머티스라 하고, 어떤 이는 퇴행성관절염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갱년기 증상이라고도 했다.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을 찾았다. 원인을 알아야 뭐든
눈을 번쩍 떴다.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잠에서 깨었다. 옆자리 남편도 눈을 떴다. 동시에 일어난 셈이다.평소보다 한 삼십분 일러서 뭉그적거렸다. 옆으로 얼굴을 돌려보니 기분이 좋은 듯 남편이 혼자서 실실 웃고 있었다.꿈을 꾸었단다. 그것도 얼굴이 하얗고 토실토실한 복돼지 꿈이란다. 화들짝 놀랐다. 시집간 딸은 이미 만삭이고 여러 사람이 태몽을 들고 나왔기 때문에 태몽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재물이 들어 올 꿈이 아니던가.바싹 다가들며 자세히 말해 보라고 했다. 복권을 사야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복돼지 꿈은 확실한데 옆
저녁 먹고 나니 잠이 쏟아진다. 소파에 누워 스르륵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얼마나 잤을까? 깨어보니 밤 12시가 다 되어 간다. 다들 잠자리에 들었기에 나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잠을 재촉해도 눈이 말똥해졌다. 30분 뒤척이다 다시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다들 잠든 밤이니 스펙터클한 영화도 싫고, 살인이 난무하는 서스펜스는 어깨가 아파 더 싫고, 호러 영화는 무서워서 혼자서 보는 것은 무리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소박한 영화를 골라야지 하며 쭈욱 둘러보다가 고른 영화가 ‘할머니는 일학년’이다. 다큐멘터리인가 하는데
자다가 떡이라더니! 집 옆으로 흐르는 동천강 상류를 정비하면서 누구나가 부러워할 만한 뚝방길 산책로가 생겼다. 동천강은 외동읍 북쪽 어디에선가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 울산 태화강과 합쳐지면서 동해로 흘러 들어간다.뚝방길 서쪽은 강이고 동편에는 작지 않은 들판이라서 양편의 풍광이 사철 바뀌게 된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지도 않는데도 세월은 흘러간다. 찬바람과 함께 들국화가 피고 갈대 순이 펄럭일 때 들판은 노란색이 짙어지며 황금색으로 변한다. 가끔씩은 인기척에 놀란 꿩이나 고라니가 튀어나와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뚝방길 끝부분에
라넌큘러스의 계절이다. 개구리 왕자처럼 볼품없는 미나리 같은 줄기에서 장미처럼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이 있다. 바로 라넌큘러스. 이름도 개구리를 뜻하는 라틴어 ‘라이나’에서 유래했는데, 주로 연못이나 습지에서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300장이 넘는 하늘하늘한 꽃잎이 둥글게 포개져 있어 얼핏 보면 장미로 착각하기 쉬운데, 겉모습은 습지가 아니라 볕이 잘 드는 정원에 피어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생김새만큼이나 다루기 어려운 꽃이라 습도가 맞지 않으면 쉽게 잎이 마르거나 시들어 버린다. 게다가 두꺼워 보이는 줄기는 속
수첩을 선물 받았다. 초록색 표지의 스프링 형식이었다. 손바닥만 한 공책을 보니 또 다른 공책이 떠올랐다.남편과 연애 시절이었다. 삐삐로 소식을 전하던 시절이었지만 내겐 그런 거 하나 가질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보는 사람이었지만 편지를 썼다. 하지만 보내면 늘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저 스프링 공책이었다.내가 먼저 마음을 적어 주고 다음 만날 때 써서 가지고 오라고 했다. 안 썼다면 나오지 말라는 반협박을 얹어 주었다. 1년 동안 연애하며 그렇게 손바닥만한 공책 한 권을 주고받았다.세월이 지난 어느 날
걸음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걸어왔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길이었고 순식간에 지나간 찰나였다. 세상은 헤쳐 나아가야만 하는 거친 정글이라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걷기만 했던 지난날이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자신감이었다. 이제와 잠시 내려놓고 뒤돌아보니 참으로 만만치 않았던 길이었다. 길의 마디마디를 넘을 때마다 어김없이 치열하고 비장한 전투였다. 죽기 살기로 덤비고 이기려 안간힘을 다 쏟았었다. 그렇게 힘겹게 마디마디를 넘길 때면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위안 삼았고 자신을 대견해하며 칭찬하고 위로했었다.
평상시 꼭 챙겨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값이 뛰면 괜히 더 먹고 싶어지고 생각나는 건 나만 그런 걸까?몇 년 전 수박값이 폭등했을 때 그랬고, 올해 긴 장마와 잦은 태풍으로 토마토 공급이 어려워, 패스트푸드 햄버거 매장에서도 토마토는 넣어 드릴 수 없다는 사과문까지 나온 요즘,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토마토가 들어간 샐러드, 파스타가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샌드위치에도 구운 토마토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영락없는 청개구리 같다.잘 익은 방울토마토를 낮은 온도의 오븐에 구워(꽤 긴 시간 공을 들여)낸 구운 토마토의 달달
오래된 동네의 골목길은 내가 즐겨 찾는 사색의 장소이다. 지치고 힘이 들거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면 안식을 위해 고향을 찾듯 발길이 가는 곳이다. 그 골목길들은 대부분, 숨을 몰아쉬어야 할 만큼 가파르고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그 언저리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의 굴곡진 삶을 고스란히 닮았다. 겹겹이 모여 서로의 어깨를 기대고 있는 투박한 지붕 아래로 몸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대문이 나 있고 그 대문 앞에는 자그마한 콘크리트 계단이 한두 칸씩 디딤돌처럼 자리하고 있다. 좁고 작은 부족함이 일상이 되어있는 미니멀 라이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