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할머니는 일학년’의 세 주인공.

저녁 먹고 나니 잠이 쏟아진다. 소파에 누워 스르륵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얼마나 잤을까? 깨어보니 밤 12시가 다 되어 간다. 다들 잠자리에 들었기에 나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잠을 재촉해도 눈이 말똥해졌다. 30분 뒤척이다 다시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

다들 잠든 밤이니 스펙터클한 영화도 싫고, 살인이 난무하는 서스펜스는 어깨가 아파 더 싫고, 호러 영화는 무서워서 혼자서 보는 것은 무리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소박한 영화를 골라야지 하며 쭈욱 둘러보다가 고른 영화가 ‘할머니는 일학년’이다. 다큐멘터리인가 하는데, 시작하자마자 가슴이 저리기 시작한다. ‘집으로’영화가 떠오른다. 하지만 ‘집으로’ 영화보다 조금 무게감이 있다고 할까. 장면마다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대사가 많거나 아주 슬퍼서라기보다는 그저 눈물이 났다.

아들을 홀로 키웠던 까막눈의 할머니, 엄마를 잃고 새로 얻은 아빠까지 사고로 잃은 일곱 살 여자 아이 동이, 베트남에서 시집와서 노름꾼 남편과 팥쥐 엄마 닮은 시어머니를 둔 며느리, 이렇게 셋이 한글을 배우는 이야기이다.

할머니는 아들이 사고로 죽으며 남긴 수첩을 유품으로 받았다. 거기에 적힌 아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읽지 못하니 안타까워 초등학교에 무작정 찾아간다. 배경을 자세히 보니 시월에 수업을 다녀온 영양의 초등학교였다. 동네로 달려가는 버스가 지나친 길은 주실마을 앞 숲길이었다. 영양에서 찍었구나 싶어 자막이 올라갈 때 도와주신 분들의 이름까지 자세히 읽었다.

세 사람이 글을 배우는 과정에서 서로를 의지한다. 할머니는 글을 배우자 세상에 대해 문을 열고, 베트남 새댁은 남편을 집으로 들어오게 하는 쪽지를 쓰고, 동이는 가족을 얻는다. 글은 이래서 배워야 한다. 글자는 더 큰 세상으로 가는 문이 되어 주니까. 새벽까지 나는 실컷 울었다. 눈은 퉁퉁 부었지만 밤낮없이 돌아다녀 몸살이 날 것 같던 내 몸이 가뿐해졌다. /이향기(포항시 북구 장성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