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처럼 꾸며진 허명화씨의 거실.

거실을 공부방처럼 꾸미기로 했다. 차일피일 미루어둔 일이라 양치 안 한 식후처럼 불편하던 터였다. 거실을 지나다니며 ‘정리를 해야지’하면서 신경이 쓰이는 순간부터 마음도 들쑥날쑥 했더랬다. 며칠 전 집 정리 tv프로그램을 본 것이 결정적이었다. 늘 바쁘다는 남편에게 아이들도 자랐으니 거실을 공부방으로 만들면 완벽한 공간이 될 거라고 바람을 잡았다.

한 동안 거실을 중심으로 삼고 지내온 흔적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우선 버려야 할 것들을 아이들과 타협해야만 했다. 피아노 위에 도토리 키 재기로 앉은 인형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어릴 적 사촌들에게 받은 거며 벼룩시장을 통해 하나둘 쌓인 것들이다. 이웃에 나눔을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반대에 부딪쳐 후줄근 한 건 버리고 그 수를 줄이기로 했다.

다음은 책장이다. 무엇보다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 떠나보내기 아쉬운 책들과 어린이집과 유치원 때의 추억의 활동 파일들, 학원 수업 자료, 문제집들, 해마다 늘어나는 나와 남편의 책들까지 한 몸이 되어 아우성 치고 있다. 이 공간이 안고 있는 무게를 쏟아내야만 했다. 고심 끝에 방과 거실의 책장 위치를 바꾸기로 했다. 옮기는 건 남편의 몫이다. 키가 높았던 책장이 새로운 장소에서 옆으로 누우니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어울렸다. 서로의 책들을 묵혀둔 빨랫감을 빨아버리듯 말끔히 정리했다.

공부방 꾸미기의 가장 골칫거리는 TV였다. 남편에게 TV시청보다 가족 간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보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견물생심이라고 대거리를 해보지만 tv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남편의 지론이다. 그렇다고 방으로 옮기기도 침대위치까지 바꿔야 하는 탓에 쉽지 않았다. 떡하니 놓여있는 tv와 남편을 째려보며 주말에만 보기로 약속하고 한 발 물러선다.

옆집과 마주하고 있는 빈 벽에는 방에 있던 세계지도와 대한민국전도를 내걸었다. 탐험가가 되고 싶어 하는 둘째가 지도를 가까이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역사에도 관심이 생기고 지도를 보며 유럽이랑 아시아가 하나로 이어졌다는 것도 알게 되니 벌써부터 성공인 셈이다. 비어있는 거실 한가운데는 베란다에 잠들어 있던 긴 탁자를 가져와 책상으로 쓰기로 했다. 탁자까지 자리를 잡으니 시작할 때 그렸던 공부방의 모습이 갖춰졌다.

마지막은 이 공간을 채울 우리 가족의 모습이다. 공부방으로 정리된 모습에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재잘 풀어 놓을 것이고 나와 남편은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그러면서 책을 볼 것이리라. 때로는 가족회의와 나의 열람실도 되어 주면서. 책상에 앉은 아이들 사이로 초겨울 햇살이 한 가득이다. 바라보는 내 마음에도 빛이 난다.

/허명화(포항시 북구 우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