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통신

캐나다 토론토 김용출씨 집 주변의 하얀 드레스같은 옷을 입은 나무.
캐나다 토론토 김용출씨 집 주변의 하얀 드레스같은 옷을 입은 나무.

11월 27일 올겨울 첫눈이 왔다. 종일 오더니 많이도 왔다. 11월에 폭설이 내린 것은 1966년 11월 2일 이후 처음이란다. 무려 19.4cm를 왔기 때문이다. 겨울 채비로 황량했던 대지도 나무도 흰 솜털 이불을 덮은 것 같다. 갑자기 하얗게 채색된 사위(四圍)가 동화(童話)속의 나라를 연상케 한다. 옛날, 어린 시절 겨울 어느 날, 고향 집, 아침에 일어나면 장독대 위에 하얗게 쌓여 있던 눈, 첫눈만 보면 단숨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다. 동화 속의 나라가 거기쯤일까. 동화속의 나라라면 북유럽을 빼놓을 수 없다. 그곳 눈의 나라들에서는 눈을 나타내는 말이 3백여 개나 된다지. 눈을 사랑한 연고일 것이다. 그중에 첫눈은 연인이라는 말도 있겠지.

이곳, 토론토, 우리 집 주위, 며칠 전까지 푸르던 나뭇가지는 어느새 눈꽃을 이고 있다. 날씨가 조금만 풀리면 금방 떨어질 눈꽃이지만 절세의 미인이 따로 없다. 사진을 찍었다. 눈이 부시다. 저리도 희고 깨끗한 순백(純白)에 내 마음마저 경건해진다. 다 덮었다. 지상의 잡다한 것들을 포용한 저 순백, 순진무구(純眞無垢), 그래서 더 아름답다.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덮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한다. 순백을 생각하면 신부의 드레스를 빼놓을 수 없다. 신부의 드레스가 순백이어야 할 이유를 눈꽃에서 본다. 순결한 신부, 그는 눈꽃과 같으리라.

11월 말부터 겨울이 우기(雨期)인 이곳 캐나다는 사나흘이 멀다 하고 눈이 올 것이다. 그러면 도로 위의 눈은 아스팔트와 함께 짓이겨져 흉한 색깔로 변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눈이 원수가 된다. 천대받는 눈이 된다. 제발 눈이 그만 왔으면 한다. 그래도 나는 첫눈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으리라. 아스팔트 위의 눈이 아닌 저 능선을 덮은 하얀 눈을 보리라. 첫눈에 반해서 사랑하고 결혼했다는 청춘남녀와 같이 첫눈이 준 설렘과 환상을 버리고 싶지 않다. 순백의 저 눈이 이 세상의 온갖 고통을 다 덮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첫눈의 감상에 젖는다.

/김용출(캐나다 토론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