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와 고금이 크게 다를 바 없다. 대저 ‘제국(帝國)’이 멸망하는 이유는 강력한 외세의 위협도, 바깥에서 오는 충격파 탓도 아니다. 내부가 무너지는 게 가장 큰 몰락의 시그널이다.고구려는 1천500여 년 전 신라와 백제를 포함한 우리 땅 고대 3왕국 중 가장 큰 영토를 차지했고, 당대의 강대국이었던 인근 수나라와 당나라의 모골을 송연하게 한 군사 대국이었다.그럼에도 668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게 무참하게 패배해 기원전 37년 동명성왕이 세운지 705년 만에 역사 속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허망하고 슬픈 마지막이었다.신라는 고구려
‘삼국통일(삼한일통)’에 가장 큰 힘을 보탠 이가 누구인지를 논쟁할 때면 언제나 뜨거운 갑론을박 속에 견해가 갈린다.“백제를 병합하고 고구려를 무너뜨릴 국력의 토대를 마련한 무열왕 김춘추다”라는 의견이 있고, “그렇지 않다. 실상은 왕보다 더 큰 국가 무력의 실질적 지휘자였던 김유신”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그러나, 결국 역사는 풍문이 아닌 ‘팩트(Fact)’로 기록된다. 백제에 이어 고구려를 병합하고, 당나라를 축출함으로써 크건 작건 명실상부한 ‘고대 통일국가 신라’를 완성시킨 건 문무왕(文武王)이다.세상이 그를 부르던 이름은 김법
충남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조성된 ‘계백 장군 유적지’는 야트막한 수락산에 감싸 안긴 모습이다. 아래쪽으론 제법 큰 탑정호수가 푸른 물빛을 빛내고 있다. 아름다운 풍광.인간의 상상력이 가닿기조차 힘든 까마득한 옛날인 660년 7월 9일과 10일. 고대국가 신라와 백제는 생사결단의 싸움을 그곳에서 벌였다. 최소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황산벌전투’의 현장.지지난 주. 귀하디 귀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 촌음(寸陰) 사이에 결정되던 비극의 장소인 그곳을 2시간 가까이 천천히 돌아봤다. 황산벌전투에서 가장 장엄하고 비극
서라벌(현재의 경주)에서 황산벌(지금의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이르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경부고속도로와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최단거리 노선도 대략 250km. 600리가 넘는다.2023년 오늘이라면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3시간 만에 가닿을 수 있지만, 1천363년 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황산벌전투에 동원된 신라군의 숫자는 5만여 명.그들 중 말을 탄 지휘관은 소수였다. 무장한 고대 병력이 하루에 행군할 수 있는 거리는 고작해야 50리 정도. 멈춤 없이 걸어도 최소 12일이 걸리는 거리다.황산벌전투가 벌어진 때는
‘2030 세계박람회’ 개최지 결정이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세계박람회(EXPO)는 인류의 산업·과학기술의 발전 성과를 알리고, 개최국의 역량을 과시하는 장으로 경제·문화올림픽으로도 불리는 국제적인 행사다.우리나라는 현재 이 세계박람회의 부산 유치를 위해 각계각층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행사 개최가 가져올 긍정적인 경제 파급효과를 염두에 둔 주요 기업의 총수들은 물론, 정치권과 문화예술계에서도 힘을 보태고 있는 형국.여기에 한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통해 세계박람회의 부산 유치를 염원하는 이들도 가세했다. 그 중심에 국기원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호안끼엠(還劍) 호수’를 찾게 된다. 서울이라면 광화문, 대구라면 두류공원, 포항이라면 영일대해수욕장처럼 외국인은 물론 그 지역 주민들까지 산책과 휴식을 즐기는 공간. 기자 또한 지난 5월 두 차례에 걸쳐 그곳을 돌아봤다.호안끼엠 호수 산책로엔 거대한 조형물이 서있다. ‘리 왕조’의 태조 이공온(李公蘊·974~1028)의 동상이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처럼 우뚝하다. 이공온은 어떤 인물일까? 이 궁금증에 ‘리브레위키’가 답한다.“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현재 경북 봉화군은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그곳 봉성면 창평리엔 당신들의 조상인 ‘리 왕조’ 후손 이장발의 애국심을 기려 세운 충효당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일대에 역사와 문화, 휴양을 동시에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베트남역사관, 공연장, 연수·숙박 시설, 잘 꾸며진 정원까지 들어설 예정이다.”기자의 말을 들은 주한 베트남관광청 리 쓰엉 깐(65) 대사는 “그 소식은 들어서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가 이어졌다.“이미 천 년 전부터 활발하게 교류했던 두 나라의 관계가 재정립되고, 지금
한국 기업의 현지 생산 공장이 다수 들어서 있고, 한 해 평균 200만 명에 가까운 한국인 관광객이 드나드는 베트남은 우리와 가장 친숙한 국가 중 하나다.갈수록 ‘국경’이란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21세기. 서로 다른 정치·이념 체계로 인해 갈등하고 반목했던 20세기 중반과 달리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떼어놓기 힘든 우방국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베트남은 아직 사회와 학교, 가정에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는 국가라는 공통점까지 가졌다.봉화군은 이런 시대적 추세와 유사한 민족성에 주목해 몇 해 전부터 베트남마을 조성에 진력하는
불과 50~60년 전엔 총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적과 적으로 만났다. 하지만 엄혹했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국가들 사이에 실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보편화되면서 한국과 베트남은 이제 ‘친구 이상의 나라’가 됐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다.짙푸른 바다가 유혹하는 베트남의 유명 관광지 다낭(Da Nang)을 찾는 한국 여행자는 한 해에 100만 명. 그중엔 경북도민도 수없이 많다.허니, 베트남어보다 한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그곳을 ‘경상북도 다낭시(市)’ 혹은 ‘경상북도 다낭군(郡)’이라 부르는 농담까지 나오는 상황.뿐 아니다. 근래
국가와 국가 간에는 영원히 지속되는 우호도 없고, 불화도 없다.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 역시 그랬다.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 베트남전쟁. 한국군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군대와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였다.1992년 수교가 이뤄지기까지 19년 동안 베트남은 한국 대중들에게 적성국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그런 불화가 있기 1천여 년 전 한국과 베트남은 호의적 관심을 가지고 교류하던 사이였다. 이런 사실은 그 당시를 연구한 여러 논문을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고려의 왕이 위기에 처한 베트남 왕족 이용상의 정치적 망명
1960~1970년대에 걸쳐 진행된 베트남전쟁의 비극은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나고, 냉전체제가 해체된 1990년대 이후 베트남은 한국의 주요한 우방국 중 하나가 됐다.양국 사이 교류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가속화 돼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사회 전 분야에 걸친 협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봉화군은 베트남마을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는 중이다.봉화엔 베트남 리 왕조의 왕족 출신 화산 이씨(花山 李氏) 이장발(李長發·1574~1592)의 정신을 기리기
언필칭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는 5월이 열렸다. 환하고 따스한 햇살, 머리칼을 날리는 시원한 바람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좋은 날들이다.그러나, 세계와 인간의 역사 속에 마냥 즐거워만 해도 좋은 시절은 없는 것. 한국의 5월은 ‘쉬이 지울 수 없는 아픔’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 명백한 사실은 너도 알고 나도 안다.“꽃잎에 지는 바람으로 5월을 노래하지 말라”고 일갈한 시인 김남주(1946~1994)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아래 추천하는 2편의 영화를 보며, 이토록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5월의 행복과 더불어 되새겨야 할
이른 아침과 밤에는 아직 춥고, 낮엔 벌써 여름이 온 듯 덥다. 이런 계절엔 감기에 걸리기도 쉽지만 입맛 역시 잃기 십상이다. ‘잔인한 달’ 4월엔 건강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 육체의 건강을 위해선 좋은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신 건강을 챙기려면 뭘 해야 할까? 여기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수백수천의 선현(先賢)들이 때마다 강조했으니.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와 중국에서 날아온 짙은 황사에 콜록대는 기침을 참기 힘든 늦봄. 여기 육체적 건강을 지켜줄 음식에 관해 쓴 책 2권이 있다. 읽으면 정
“포항시민 전체가 두 번씩 먹을 양은 팔았을 걸요.”대체 이처럼 크게 히트 친 상품이 뭘까? 궁금증이 일어날 만하다. 한스드림베이커리 한상백(52) 대표가 만든 갈릭바게트(바게트 사이에 마늘 소스를 넣은 빵)의 인기는 예나 지금이나 대단하다.포항의 인구를 50만 명으로 잡으면 지금까지 대략 100만 개의 갈릭바게트를 만들어 판매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빵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는 한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꿈과 스케일이 남들보다 컸던 사람.교육자였던 아버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10년째 병상에 누워있던 1980년대 후반. 기울어진
최근 ‘독특한’ 책 한 권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작품집에 수록된 8편의 소설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포항을 소재로 삼고 있는 ‘어룡이 놀던 자리’. 이는 전례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일종의 ‘사건’처럼 느껴졌다.책을 펴들었다. 소재는 ‘포항’으로 단일하지만, 수록된 개별 작품에서 읽히는 메시지는 각기 달랐다.‘디어 마이 엉클’에서는 한국전쟁이 야기한 비극의 그림자가, ‘관목(貫目)’에선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의 아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이, ‘불꽃 지다’로 가면 비루한 상황에서도 놓칠 수 없는 인간의 순정한 마음이 기자의 눈앞으로 성큼
앞다투어 화들짝 피어난 꽃들이, 한순간 난분분 떨어져 황홀한 분홍빛 풍경을 만들어내는 봄날이다. 4월은 연인끼리, 식구끼리, 심지어 혼자이어도 꽃 무더기 속으로 훌쩍 여행하고 싶은 좋은 시절.하지만, 세상엔 꽃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도서관은 지상에 존재하는 천국”이라 했다. 그의 말을 조금 확대하면 서점도 마찬가지 아닐까?지금까지 개나리와 진달래, 매화와 벚꽃 사이를 거닐며 봄의 낭만을 즐겼다면, 이번 주말엔 책들 속에서 천국을 찾아보는 게 어떨지. 아래 봄꽃 닮은 문장으로
견인불발(堅忍不拔)과 기호지세(騎虎之勢).여성 사업가를 지칭하는 단어로 적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농업회사 하이청 박해성(57) 대표를 만나며 떠올린 이 두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예기치 않은 불행과 그 불행을 넘어서려는 그녀의 노력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서울에서 태어나 별다른 부침(浮沈) 없이 살아온 박 대표는 20대 후반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남편의 치료를 위해 경상북도를 처음으로 찾았다. 일정 기간이 지나자 부군의 병이 호전되는가 싶었는데, 또 다른 고난이 박 대표를 찾아왔다
새벽 4시에 홀로 카메라를 들고 구미 원평동 재개발 지역에 들어섰다. 한 번 사라지면 다시는 옛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는 풍경을 사진 속에 담아 사라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하지만, 그런 ‘예술적 필요성’을 건설사 관계자와 경비원들에게 이해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철거와 신축이 계속되는 도시의 재개발 현장은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다. 안전을 위한 감시와 예기치 않은 사고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다.오래전부터 원평동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을 진행 중인 사진작가 김은정씨가 카메라를 들어 딱 한 번 셔터
입춘도 지났으니 이제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이 분명하다. 시간의 흐름이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법. 유난스러웠던 2023년 혹한(酷寒)도 곧 추억 속으로 사라져 옛날이야기가 된다.나른함과 안온함을 동시에 선물하는 봄 햇살을 받으며 옛날 영화 한 편쯤 골라 보고 싶은 시기. 알다시피 ‘옛날 영화’란 고리타분한 설정과 비슷비슷한 스토리를 반복하는 단순한 영화를 지칭하는 게 아니다.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극장은 물론 넷플릭스 등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 높은 걸 보면 ‘옛이야기’는 여전히 마르지 않는 예술의 재료로 역할하고 있
몇몇 사람들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고향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한다.현대도시는 태어나고 자란 공간에 대한 기억을 흐리게 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인간의 유소년 시절 ‘기억’과 ‘그리움’은 대부분 고향과 연관돼 있다. 이는 동서와 고금이 다르지 않을 터.지지난해 시작해 최근까지 포항과 관련된 책 5권의 기획·출간에 깊숙이 관여한 사람이 있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내 고향 포항’에 대한 애정을 무시로 드러내는 김도형(55)씨다.경희대 국문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