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나라와 나라를 이어주던 하늘길이 대부분 막혔다. 외국으로의 여행을 꿈꾸던 사람들의 발도 묶였다. 이런 상황에선 ‘책을 통한 대리 만족’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독서의 계절’ 아닌가. 여행작가 백경훈의 책 2권과 함께 한국인에겐 다소 낯선 여행지 무스탕과 파키스탄으로 떠나보자. 코로나19가 한시바삐 우리 곁에서 사라지기를 기원하며. ‘숨겨진 왕국’이 유혹하는 땅으로 가고 싶다면…우리가 사는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다.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과
1960년대 베트남으로 보낼 군인들을 훈련시키던 장소 인근에는 현재 ‘몰개월 비행기공원’(포항시 남구 청림동)이 들어서있다.줄을 지어 늘어선 비행기를 보며 떠올리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자의 경우엔 베트남 하늘을 날아다니며 그 양을 측정할 수도 없는 네이팜탄과 고엽제(枯葉劑)를 쏟아 붓던 미국 공군 폭격기가 가장 먼저 그려진다.전쟁은 의도하지 않은 수천수만의 개별적 죽음을 부른다. 총알과 폭탄에는 눈이 달리지 않았기에 여자와 아이들도 피해가지 않는다.바로 그 전쟁이란 괴물이 발광(發狂)하는 베트남의 정글로 떠나야할, 이제
대중예술가와 정치인은 한두 가지 측면에서 유사하다. 둘은 모두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지지기반으로 존재하고 성장한다. 그렇기에 둘에게 가장 무서운 건 비난과 비판이 아닌 무관심이다. 그렇다면 ‘대중의 관심’은 어디서 생겨나는가? 정치인이나 대중예술가가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무를 줄 때다. 감동 없는 정치, 서민을 위무하지 못하는 정치에 무관심하던 한국인들이 시원스런 목소리를 가진 대중예술가 한 명이 선물한 위무와 감동에 환호하고 있다.2020년 추석 하루 전. 즐거워야 할 명절임에도 코로나19 사태로 우울함을 숨길 수 없던 가족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긴 장마, 수차례 태풍까지 겹쳐 올해 경북 바닷가는 어둡고 쓸쓸했다. 흔적 없이 꼬리를 감춘 여름. 아쉬움에 포항 동해면을 찾았다. 그곳은 소설 ‘몰개월의 새’가 잉태된 공간. 그 해변이 내년엔 다시 피서객들의 환한 웃음으로 북적이길 기대하며, 반세기 전 황석영이 겪었던 도구해수욕장의 여름을 떠올려 보았다. 이러한 감상이 낳은 결과물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황석영의 소설 ‘몰개월의 새’가 된 포항 외곽 마을1960년대 파월병 훈련소가 자리했던 ‘도구 바닷가’야트막한 건물·좁은 골목 연속된 시골마을
낯선 도시를 방문한다는 건 그 공간이 간직한 고유의 문물을 접하고,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행위다. 우리는 이걸 ‘여행’이라 부른다.신라 천년의 빛나는 유적·유물과 즐겁게 조우할 수 있는 경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국 최고의 여행지 중 한 곳. 하지만,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과 경기도에 사는 지인들은 가끔 묻는다.“경상도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던데, 경주도 그래?”이 물음 앞에 설 때면 기자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곤 했다.100년의 역사를 지닌 경주 중앙시장. 무거운 짐을 옮기
인간의 상상력은 한계와 끝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오만이나 착각일 수 있다.상상이 구체화되기 힘든 아주 오래된 사건이나 1천400여 년 전 까마득한 풍경 앞에서는 사람이 가진 상상의 힘이 무너지거나 무력화될 수도 있지 않을까?매번 신라의 고대 유적과 유물을 만날 때면 위와 같은 의문을 가졌다. 경주를 여행한다는 건 스스로의 상상력이 얼마나 큰 영역 안에서 작동하는지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4명의 왕이 93년에 걸쳐 만들어낸 사찰, 80m 높이의 거대한 목탑이 우뚝 서있던 공간, 서라벌 사람들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했던 황
비단 종교인만은 아닐 것이다. 무신론자들도 세상살이 번잡함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을 땐 절이나 성당, 또는 교회를 찾아간다. 주위에서 그런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기자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낯선 곳으로 떠난 여행에선 오래된 사원이나 이름난 중세 성당을 빼놓지 않고 방문하곤 했다. 종교를 떠나 인간 모두에겐 안식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를 찾았던 몇 해 전엔 불가리아 정교회 교당에 갔었다. 검은 망토를 두른 성직자의 나지막한 음성을 들으며 기대하지 않았던 안정과 편안함을 얻었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도시는 특유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입에서 발음되는 순간, 그 즉시 연속적으로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경주가 가진 이미지는 고풍스럽고 묵직하다.천년 세월 동안 이름을 간직한 오래된 사찰, 거대하고 부드러운 반구(半球)의 형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수많은 고분들, 남산에 뿌리를 내리고 세파를 견디며 숲을 이룬 부드럽게 굽은 소나무….경주는 위와 같은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진녹색의 풍경 속에 자리한 고색창연한 도시 서라벌. 이는 산과 가람, 왕릉 등이 결합해 만들어낸 압도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생의 허무와 쓸쓸함이 견딜 수 없는 감정으로 밀어닥치는 날.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의미를 찾기 힘들고,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혼자서 고요 속으로 침잠하고 싶은 날은 누구에게나 온다.그럴 때 당신에게 잠시잠깐이나마 위로와 편안함을 선물할 여행지를 알고 있다. 경주 시내에서 동쪽으로 35km쯤을 달리면 닿을 수 있는 양북면 감은사지(感恩寺址).지척에서 바다가 출렁이는 이 ‘오래된 절터’는 주요 유물이 출토된 거대한 석탑과 금당(절의 본당)·강당(경전을 읽고 토론하는 학습장)터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본문에 앞서 먼저 사적인 경험 한 토막.1970년대 초·중반. 영남의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던 외가를 자주 찾았다. 그때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에 TV는 물론, 라디오와 전기밥솥도 없거나 드물던 곳. 모든 것이 지금과 비교하자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그럼에도 벽촌 구석구석까지 인터넷이 개통되고, 여든 살 촌로들도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2020년 오늘보다 매력적인 게 분명 존재했다. 동네를 걸으면 콧속으로 스며들던 향긋한 아카시아 향기, 기와를 머리에 인 고풍스런 집들이 만들어내는 풍경, 드물지 않게 멋스런 초가(草家)가 있었고,
맑은 공기와 조용한 도심 풍경이 인상적인 영천시. 거기서 태어나 역사 속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삶은 모두가 눈여겨 볼만하다. 학문적 성취는 물론 기개와 지조까지 지킨 포은 정몽주(1337~1392), ‘조선 가사문학의 큰 별’로 불리는 노계 박인로(1561~1642), 화약 개발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최무선(1325~1395). 이들 모두의 고향이 영천이다. 영천시는 세 사람을 지칭해 “우리 고장의 3선현(三先賢)”이라 부르며 그들의 업적을 기록하고,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정몽주, 박인로, 최무선의
한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마찬가지다. 지자체의 가장 큰 역할은 주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누리며 건강하게 살도록 지원하는 것. 여기에 지역 경제 발전을 통해 삶의 안락함을 더해준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터.청송군의 지향과 목표도 위와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2020년 초여름. 벌써 민선 7기의 절반이 지났다. 그 2년의 시간 동안 청송은 어떤 가시적 성과를 이뤄냈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이를 점검해본다. 민선 7기 공약평가 2년 연속 최우수 등급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2관왕’청송사과축
‘길은 길 위에서 끝이 없다’는 말이 있다. ‘길’은 ‘집’과 더불어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가장 주요한 공간 중 하나다.길은 또한 변화의 장소다. 수백 년, 혹은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내는 길은 없거나 매우 드물다. 시대와 세상의 흐름에 따라 길은 형상을 달리하며 시시각각 변한다. 그게 길의 타고난 운명이다.한때는 호화찬란한 건축물이 가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 막막한 폐허가 되기도 하고, 인적 드문 곳에서 산새만이 조용히 지저귀던 오솔길이 거대한 도읍(都邑)의 광대한 길로 바뀌기도 했던 게
‘한문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하면 길게 기른 수염에 하얀색 모시 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노인이 떠오른다. 더불어 ‘서당’과 ‘훈장’이란 단어가 눈앞으로 스쳐 지나간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어쩔 수 없는 선입견이다.그런데 ‘조금’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고려대 한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재욱(49) 강사는 글에서 보이는 감각과 말에서 느껴지는 센스가 재기발랄한 20대 청년 같다. 에너지가 넘치고 자유분방하며, 심지어 모던하다. 그에겐 대중의 선입견을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바로 그 자유로운 에너지와 모던한 힘으로 김재
‘천년왕국’ 신라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있는 경주는 ‘거리 자체가 박물관’이란 수식어에 맞춤한 도시다. 산처럼 솟은 거대한 왕릉과 역사서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사찰들, 곳곳에 산재한 석탑과 불상, 여기에 화랑도와 풍류정신처럼 1천년을 이어져온 무형의 자산까지.고고학자들에게는 신화적 상상력을 제공해 역사 탐구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고, 관광객들에겐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선물한 서라벌의 유적과 유물들. 이것들은 여러 말 할 없이 한민족(韓民族)의 소중한 보물들임이 분명하다.경주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보물 외에도 새롭게 주목받는 여
무기화된 화약의 연구·개발로 300년 이상 이어지던 왜구의 노략질과 횡포를 막아내 고려의 백성들로부터 칭송받았던 최무선(1325~1395).영천시가 내세워 알리고 싶은 ‘지역의 대표 인물’ 중 한 명인 그가 전투에 나섰을 때 나이는 50대 중후반. 지금과 달리 고려시대엔 회갑을 앞둔 사람이라면 노인 대접을 받았다.그럼에도 일생을 매달린 화약 개발에 대한 에너지와 열정을 왜구와의 싸움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최무선은 청년의 심장으로 평생을 살았던 과학자이자 장군이었던 것이다.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무렵인 14세기 후반. 왜구
영천은 크지 않은 도시다. 하지만, 거기서 태어나 수천 년 이어져온 역사 속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하게 남긴 큰 인물은 적지 않다.고려 말 출생해 빼어난 학자이자 지조를 지킨 충신으로 이름을 남긴 포은 정몽주(1337~ 1392).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정성으로 살피고, 성리학의 기틀을 세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읊었던 시조 ‘단심가’는 7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의 기억 속에 여전히 존재한다. 포은은 영천 사람이다.‘조선 가사문학의 거두(巨頭)’로 불리는 노계 박인로(1561~1642)도 영천을 빛낸 뛰어난
포항 장기면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낸 소년에게 골프는 낯설고 생소한 스포츠였을 게 분명하다. 부모는 농사와 해녀 일로 자식들을 키웠다.넉넉하지 못한 형편 탓에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소년은 공장에서 작업 중 사고로 손가락을 크게 다쳤다. 한창 피가 뜨겁던 20대 초반. 당연지사 절망과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그러나 소년은 목전에 닥친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았고, 노력을 불쏘시개 삼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발견해 주목받는 삶을 살고 있다. 프로골퍼 최호성(47) 씨 이야기다.최 선수는 지난 5월 포항시 홍보
10대 때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소년이 있었다. 집을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하는 것인지 몰랐지만, 그 아이는 무작정 ‘집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꿈을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며 키워간다면 꿈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귀 위에 연필을 꽂고 건물을 바삐 오르내리는 이들을 지켜보던 소년은 자라서 건축가가 됐다. 참샘건설 최광식(47) 대표 이야기다. 중학생 때부터 관심 가진 건축의 세계토목 전공하며 밑바닥부터 실력 다져스물셋에 부모님집 짓게된 귀한 경험30년 가까운 건
소설을 쓴다는 건 허구의 문장을 수단으로 세계와 인간의 진실을 탐구하는 행위다.소설가가 꼭 똑똑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 소설가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 아닐까. 고민 없이 해결되는 문제는 없고, 진실은 고민의 시간을 통해 찾아지는 것이므로.소설가가 인간의 소프트웨어라 할 정신 영역을 심화·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의사는 하드웨어라 부를 수 있는 육체의 안정적 보존과 효과적인 치유를 담당하고 있다.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법 공부하다 27세에 의대생으로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