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소금 산이다. 아버지의 삶은 소금과 같은 것이었다. 쓴맛, 신맛, 단맛을 더욱 더 돋우고 스스로는 짜디짠 존재가 되어야한다. 아버지의 일생은 아버지라는 단단한 고체에서 액체 상태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용해의 삶이었다. 그것이 아버지이며 아버지다움이다.’재론의 여지없이 잘 조탁된 좋은 문장이다. 군더더기가 없고 따뜻하다. 누가 썼을까? 처음엔 오랜 세월 작가로 활동해온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의외였다. 위의 글귀를 쓴 사람은 문학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회사에서 33년 이상 근무하다가 최근에 정년퇴직한 차
담낭암, 대장암, 다섯 군데나 막힌 관상동맥…. 한 가지만으로도 쉽게 극복될 수 없는 심각한 병들이다. 6~7년 사이에 이어진 3번의 큰 수술. 경북교육포럼 이해우 대표의 중년은 생사가 걸린 ‘위기’, 그 자체였다.포항과 경주, 서울의 병원을 오가며 4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까지를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절망 속으로 숨거나 찾아온 병에 항복하지 않았다. 투병의 와중에도 박사 학위 논문을 썼고, 미국 대학의 객원교수로 가기 위해 열정을 쏟았다.이해우의 이력은 독특하다.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모자란 시간을 쪼
“화개천지홍(花開天地紅).”세상 어떤 꽃보다 먼저 봄을 알린다. 분홍빛 고운 ‘계절의 전령사’라 부를 만하다. 게다가 귀하게 피어 몇몇 사람만을 기쁘게 하는 게 아니다. 흔하디흔한 골목길에서부터 야트막한 산기슭, 심지어 청춘들 발길 분주한 대학 교정에까지 지천으로 피어나 바람에 꽃이파리 날리는 낭만과 서정. 그러니 ‘서민들의 꽃’이라 해도 좋으리라.벚꽃이 피어나는 3~4월이면 야박한 사람들 인심과는 무관하게 잠시잠깐 세상이 환하다.그래서다. 일찍이 선현들은 ‘꽃이 피니 하늘은 물론 땅까지 온통 붉다’고 감탄했다. ‘화개천지홍’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란 이야기일 터. 여기 강산이 2번은 변할 시간에 가까운 17년 동안 꾸준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퇴근길 청취자들의 친구로 오랜 세월 함께 한 포항MBC ‘라디오 열린 세상’에서 ‘김씨 아재’ 코너를 맡아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어온 이정대 씨.2004년 처음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부터 지금까지 깨끗하게 손을 씻고 대본을 받아드는 그는 항상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잊지 않는 방송인으로 살고자 애써 왔다. 긴장과 진땀의 연속이라 할 수 있는 생방송과
안개와 외나무다리. 영주시 무섬마을을 떠올리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2개의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기자가 영주를 여행한 것은 지금까지 모두 3번. 2012년엔 시인·소설가 20여 명과 함께 문학답사를 위해 찾았고, 지난 2019년엔 경북 지역 23개 시·군의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방문했다.최근 그곳에 다시 가본 이유는 앞선 2번의 여행을 통해 고색창연한 영주의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이었다.여러 종류의 나물로 맛깔나게 차린 저녁을 먹고 일찍 잠든 다음 날 새벽. 숙소를 나와 무섬마을을 느린 걸음으로 산책했다.
한국은 문화·예술의 중심축이 서울로 설계된 국가라는 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현실이 이러하니 지방 도시의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힘겨울 게 불을 보듯 뻔하다.여기에 지난해 초부터 예기치 못한 복병처럼 문화예술계를 궁지로 몰아넣은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쳤으니, 포항 예술가들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할까?한국국악협회 포항지부장 이원만(58)씨는 20대 때부터 문화운동을 시작해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의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기 드문 예술가다. 국악으로 시작했지만, 최근엔 대본 작가와 제작감독 등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
청정한 자연환경과 넉넉한 인심을 가진 청송군은 작지만 살기 좋은 지역이다. 여기에 ‘청송 사과’라는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특산물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지난해 초부터 한국을 휩쓴 ‘코로나 19 사태’라는 달갑지 않은 광풍이 청송에도 예외 없이 불어 닥쳤다.전국 모든 지방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청송군도 코로나19의 차가운 바람을 극복할 민생경제 부활 대책을 머리 맞대고 고심하고 있다.윤경희 군수는 얼마 전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났다. 올해 1월 말까지 집계된 전 세계 코로나 사망자 수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말로
8145060분의 1.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이다. 사람이 하루에 벼락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맞을 확률과 비슷하단다. 가능성이 제로(0)에 가깝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매주 적지 않은 이들이 로또복권을 구입한다.복권 구매자들은 말한다. “5천 원짜리 한 장 혹은, 1만 원짜리 한 장으로 사서 지갑에 넣어둔 로또로 인해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잊고 한 주를 웃으며 견딜 수 있다”고.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이 20~30억 원을 가볍게 뛰어넘는 한국. 부자들에겐 10~20억 원을 오가는 로또복권 당첨금이 크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
그가 세상에 머문 시간은 겨우 32년. 안타까운 죽음으로부터도 이미 2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파서 더 아름다웠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뜨거운 눈물처럼 선명하다. 몹시 드문 사례다.한국엔 통기타 연주와 서정적인 노랫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대구광역시는 가수 김광석(1964~1996)의 고향으로 기억된다. ‘서른 즈음에’ ‘거리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이유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등병의 편지’ ‘기다려 줘’ ‘사랑했지만’‘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삶의 무대를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편안한 공간, 익숙한 사람들에게 끌리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하지만 모든 인간이 똑같을 수는 없는 법. 어떤 사람은 정주(定住)가 아닌 떠돎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기도 한다.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모범적인 영어강사로 살아온 이미하(57)씨는 늘상 보는 풍경과 매일 만나는 사람들 곁을 떠나 캄보디아라는 낯선 나라에서 새롭고 설레는 삶을 살아가는 꿈을 꾸고 있다.대부분의 동년배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안주하려는 나이에 20대 청춘처럼 불확실한 미래로 겁 없이 뛰어들고자 하
지난 시대 운동선수들에겐 “죽도록 열심히, 무조건 지도자가 시키는 방식대로”가 금과옥조(金科玉條)의 지침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그게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됐다.최근엔 체육계 전반에 걸쳐 고질적 문제로 제기돼 온 지도자와 학생간, 선배와 후배간 ‘학교 폭력’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10대 때부터 체육계에 몸 담아온 트레이닝과학연구소 박성률(57) 대표는 이를 안타까워했다. 아시안게임 조정 4위 국가대표로 활약독일서 ‘트레이닝 방법론’ 등 학위 받아대학교수·스포츠과학 연구원 등으로30년 이상 전문 체육지도
드물게 ‘빼어난 경관’이 그 지역의 명칭보다 유명한 경우가 있다. 문경시의 ‘새재’(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 사이에 있는 높이 1천26m의 고개)가 그렇다. 아찔한 바위산과 울울창창한 숲이 어우러진 새재의 풍경은 ‘문경’이란 도시의 명칭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4년 전 한 번, 지지난해 또 한 번 문경새재를 찾았다. 여름엔 시원스런 그늘을 만들어 선물하는 것으로 관광객과 문경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오만가지 꽃이 피는 봄이면 그 향기가 깊은 골짜기까지 진동하는 곳.여행하는 이들이 드물어 조용한 겨울에도 더없이 낭만적이고,
누가 아름다운 사람인가?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면 답변은 너무나도 다양할 터. 하지만 가장 간명한 대답은 “자신의 자리에서 아이덴티티(Identity)를 지키며 사는 사람”이 아닐까?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에서 미국 미사일 기지를 지키는 해병 대령 제셉(잭 니콜슨 분)은 자신이 감옥에 갈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말한다.“위국과 위민, 명예를 너희들은 농담할 때나 사용하지? 그러나 우린 달라. 그 단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살아왔지.”다소 파시스트적인 성향을 보이는 군인 제셉 대령의 위 대사에 관한 사람들의 평가는
기어코 왔다. 봄이다. 그러나, 이 봄이 마냥 반겨 맞을 귀한 손님 같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에선가?이미 수천 년 전 이런 노래가 세상을 떠돌았다.“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이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몹쓸 오랑캐들이 사는 땅에는 향기로운 풀도 아름다운 꽃도 피지 않으니, 봄이 왔지만 진정한 봄처럼 느껴지지 않는구나’라는 뜻.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호지(胡地)’는 오랑캐(야만적인 이민족)의 땅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이라면 호지가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명사가 될 수 있었겠으나, 이젠 창졸간에 출현한 바이러스
기자의 개인적 경험에 한정시켜 말하자면 유능한 의사보다 더 만나기 힘든 게 ‘따스한 의사’다. 환자의 아픈 육체만이 아닌 두려운 마음까지 다독여 위로를 통한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의사 말이다.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포항 고창대유외과의원 고창대(52) 원장은 따스한 의사임이 분명해 보인다.2000년대 초반. 막 개원한 젊은 외과의였던 고창대는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를 만난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술하자는 가족들의 권유에도 그녀는 고 원장에게 수술 받기를 원했다. 이유는 하나.이전에 앓았던 병을 말한 후 “얼마나 힘드셨어요?”라는
경상북도 북부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유사한 말을 듣게 된다. 상주시, 안동시, 예천군 주민들은 “우리 고장이야말로 조선 유학(儒學)의 본산(本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과대 포장도 아니다. 이 지역이 배출한 유학자의 숫자와 학문적 성취로 일가를 이룬 선조의 숫자, 곳곳에 산재한 서원(書院)을 볼 때 지역민들이 가지는 긍지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상주시를 여행했던 몇 해 전. 경천대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도 산책 나온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몇 분에게서
‘경북의 오지(奧地) 중 오지’로 불리는 봉화군.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에도 봉화는 한적한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북적거리는 인파와 현란한 네온사인을 피해 유년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 있는 ‘시골 마을에서의 며칠’을 꿈꾸던 관광객들은 봉화군의 피할 수 없는 매력에 빠졌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부산과 서울, 대구와 광주 등 인구가 최대 1천 만 명에서 최소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에서만 살아본 이들에게 겨우 몇 만의 주민들이 1970~80년대의 따스한 공동체적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봉화군은 그 자체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벽과 바닥엔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두 청년이 입은 옷도 얼핏 보기에 비싼 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밝고 환하다. 꿈이 있기에 가질 수 있는 미소다. 월세가 15만 원이라는 포항 꿈틀로의 허름한 ‘뮤직 테라피(Music Therapy·음악을 통한 치유)’ 작업실. 하지만 거기선 15억 원, 아니 150억 원의 원대한 꿈이 움트고 있다.김명진(29)과 윤관(28)은 그럴듯한 학력도, 사회적·문화적 배경도 갖추지 못한 젊은 뮤지션이다. 그럼에도 자긍심과 자존심은 어지간한 유명 음악인도 흉내 내기 어려울
인간에겐 지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고난이나 어려움이 세상 무엇보다 크고 아프게 느껴진다. 그건 사람의 한계이기도 하다.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 2021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하다.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금 숨 쉬며 살아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아득한 먼 옛날. 문자로 기록되지도 못한 시절부터 인간은 언제나 고통과 수난 속에서 살았다. 그걸 당신이 인정하건 그렇지 않건.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더 멀리는 중동과 아프리카에 고대국가가 존재했다. 의학기술이 현대처럼 발
서른셋.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나이도 아니다.청년의 도전의식을 가진 33세 여성이 자신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영업해온 낡은 숙박시설을 깔끔하게 리모델링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신세대 숙박업소를 만들었다.포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죽도시장 안에 자리했던 대구여인숙을 ‘오다가다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시킨 이현진 대표가 바로 그 사람.21세기를 사는 20~30대 한국 청년들 중 해외여행 한 번 해보지 않은 이들을 이제 찾아보기 쉽지 않다.그들이 유럽 여행에서 주로 이용하는 숙박시설이 바로 게스트하우스.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