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자본주의국가다. 자본주의의 최고 가치는 잉여가치의 창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원칙을 숭배하며 산다. 시장의 장사꾼들도 다를 수 없다. 남는 게 없는 장사란 할 이유가 없는 법.그러나, 언제나 자본이 인간에 우선해야 할까? 우리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관한 의미 있는 답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멀쩡하게 잘 자라주던 열일곱 살 아들이 예기치 않은 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사고 이후 눈물 마를 날 없던 어머니는 24시간 혼자서는 거동이 힘든 아들 옆을 지켜야 했다.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아직 먹어본 적
소녀는 헝겊과 바늘을 가지고 노는 게 좋았다. 때는 1960년대. 그 시절만 해도 결혼을 앞둔 신부는 어머니와 함께 한복을 짓고, 신랑과 사용할 베갯잇을 직접 만드는 경우가 흔했다.포항 외곽의 크지 않은 동네. 열두어 살 아이 이용순(현재 66세)은 시집 간 언니와 엄마가 한복과 이불 홑청을 만들고 남은 헝겊으로 인형 옷을 꿰매며 놀았다. 그러니, 바늘과 헝겊은 50년을 함께 한 이용순 씨의 오랜 친구다.죽도시장에서 백합주단을 운영하는 이용순 대표는 지금도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가게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재
6천935일간 새벽에 문을 열어 해가 지고서야 가게를 닫았다. 예외는 없었다. 그 기간 동안 쉬었던 날은 겨우 38일. 1년 중 설과 추석 당일에만 피곤한 몸을 뜨끈한 방바닥에 종일 누일 수 있었다. 결코 쉽지 않았을 삶이었다.너무나 바쁘게 살아온 탓에 남들처럼 살뜰하게 살피지 못했음에도 두 아들은 바르고 건강하게 자랐다.올해 스물여덟인 장남은 육군 대위, 작은 아들은 인테리어 업계에서 일한다. 주위 사람들은 인물 좋고, 인사성 밝은 아들들 칭찬에 입이 마른다.“이제 자식들도 자리를 잡았고, 당신들 나이도 적지 않으니 이번에는 함께
시장은 맥박 치는 삶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공간이다. 오랜 시간 명맥을 이어온 전통·재래시장일수록 더 그렇다. 1969년 무성한 갈대밭 인근에서 노점상들이 시작한 포항 죽도시장의 역사가 53년째 접어들었다. 이제는 동해안 최대 규모로 자리 잡은 죽도시장은 점포 숫자가 2천500여 개를 넘나든다. 거기에 삶을 의탁해온 수천 명 상인의 애환과 눈물과 웃음이 묻어 있는 질박한 사연을 모아 사람들 사이에 숨겨진 ‘생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2022년 시작하는 첫 번째 기획연재다./편집자 주 사람도 혈색이 좋으면 건강한 것 아닙니까. 얼
“지난 11월이죠. 2년 만에 열린 포항불빛축제 때만 해도 정말 좋았어요. 지긋지긋했던 ‘코로나19 사태’가 드디어 끝나고,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리는 줄 알고 기뻐했죠. 오랜만에 가게 안에 가득 찬 손님들을 보며 힘든 줄도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잠깐 꾼 백일몽이었던 모양입니다. 2022년 해맞이 행사가 취소됐다니 또 텅 빈 테이블을 보며 걱정 속에 새해를 맞을 것 같네요.” … 며칠 후 맞게 될 2022년의 첫 해돋이는 굳이 멋진 해변이나 높은 산 정상에서 보지 않는 게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 좋을 듯하다.2022년
해마다 끝 무렵이면 매양 사용하게 되는 사자성어이니 다시 입에 올리기가 무엇하지만, 2021년 한 해도 그야말로 다사다난(多事多難)이었다. 온갖 일이 많았고, 어려움과 힘겨움도 더불어 많았다.특히 다난(多難)이라 부를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숱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은 서민들의 한숨을 불렀고,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정치 상황에 많은 유권자가 실망하고 있다.한국에서의 어려움과 힘겨움만 해도 숨이 찬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공황과 공포는 올해 내내 지구 전체를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그러나
아마도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였던 호암 문일평(1888∼1939)일 것이다. “누군가가 궁금하다면 그가 먹는 음식을 보라”고 말한 사람이.역시 언론인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육당 최남선(1890~1957)의 책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엔 의외로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대중들의 관심 속에서 사는 명망가와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필부필부(匹夫匹婦)가 마찬가지다. 예외 없이 사람은 모두 먹어야 산다. 그래서 ‘먹는다’는 행위는 진지하고 때론 성스런 것이며, 음식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삶의 필수 요소다.단순히 한 끼 때우는 것
본격적인 겨울의 문턱이라는 소설(小雪)이 지나고, 중부 지방엔 눈이 내렸다는 뉴스가 들려왔다.며칠 전부터 부쩍 차가워진 날씨 탓에 옷장 깊숙이 넣어뒀던 두꺼운 모직 코트나 패딩점퍼를 꺼내 입고 출근과 등교를 서두르는 이들이 많아졌다.흐르는 시간은 누구도 멈추거나 건너 뛸 수 없다. 그건 수만 년 이어져온 부정할 수 있는 당연명제다.저 멀리 북쪽에서 불어오는 삭풍은 이제 곧 경북 일대에도 닥칠 것이고, 울긋불긋한 단풍이 떨어진 자리엔 하얀 눈이 쌓일 터.2년 가까이 우리를 괴롭힌 ‘코로나19 사태’의 수난 속에서도 또 이렇게 한 계절
“경주에는 아직도 많은 역사의 수수께끼가 숨겨져 있습니다.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신라의 문화와 예술을 공부해보면 어떨까요?”재미있는 말솜씨와 탄탄한 지식으로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세간의 평가는 과장이 아니었다.지난 20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역사 강사 최태성의 강연회 ‘아름다운 신라 화원 동궁과 월지’에 참석한 이들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과 함께 신라 유적의 가치를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안압지에서 월지까지’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연회에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 300명의 시민들이 초대됐다. 초등학
의미 있는 역사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달하기로 이름 높은 역사 강사 최태성 씨가 안내하는 ‘동궁과 월지’는 어떤 모습일까?오는 20일 오전 10시 30분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컨벤션홀에서 열리는 강연회 ‘아름다운 신라 화원 동궁과 월지’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들려줄 것으로 기대된다.경북도와 경주시가 주최하고, 본사가 주관하는 이번 강연회는 ‘경주의 재발견’이
특정한 어느 한 곳을 지칭할 것도 없다. 한국의 산 대부분이 ‘가을의 마법’ 단풍으로 절경을 펼치고 있다. 경상북도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의 가혹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찾아온 만추.오래전 미당 서정주(1915~2000)는 요즘과 같은 날들을 아래와 같이 노래했다.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단풍은 ‘초록에 지친’
일본제철은 한동안 세계를 주름잡던 철강 기업이었다. 불과 5년전까지 만 해도 일본제철은 구조조정은커녕 몸집 불리기에 집중했다. 2012년에는 스미모토 금속공업을, 2016년에는 일신제강을 합병했고, 한때는 세계 2위 철강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그러나 중국이 본격적인 증산에 나서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후발주자였던 중국 철강업은 빠르게 기술력을 축적, 대량 생산을 본격화했다. 일본제철은 당장 공급 과잉 해소라는 사태에 직면했다. 이때를 전후해 기술력 측면에서도 한국 철강기업에 밀리기 시작했고, 이는 수익성 악화로 귀결됐
일본제철은 한때 세계 철강업계의 벤처마킹 단골 메뉴였다. 세계적 기술력으로 품질 좋은 철강 생산을 했고, 지역사회와의 협업 등 배울 점이 많아서였다. 포스코 또한 초기엔 일본제철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으며 성장판을 마련했다.그런 일본제철이 최근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3위 철강 기업 일본제철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철강도시 포항으로서는 일본제철 사례가 궁금증을 낳을 수밖에 없다. 현지 매체에 보도된 내용 등을 통해 그 배경을 살펴봤다.1950년 창업한 일본제철은 매출 6조2천억 엔(62조 원), 종업원 수 10만6천 명에
만약 신(神)이나 절대자가 실재한다면 어떤 곳에 머무르기를 원할까?웅장하고 화려한 교회나 성당, 절이나 모스크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을지, 아니면 작고 소박하더라도 자신을 섬기는 진실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환하게 웃을지.한국은 대도시이건 조그만 도시건 교회 건물이 높고 큰 것이 보편적이다. 첨탑에 세운 십자가를 눈에 띄게 네온사인으로 장식하는 경우도 흔하다. 성당과 절 역시 대형화하는 게 일종의 흐름이나 추세인 걸 부정하기 어렵다.농담처럼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유럽에서 한국으로 여행 온 사람들이 밤늦게 산에 올랐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평소 TV 드라마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궁금증을 가질 만했다. 포항 외곽 조그만 전통시장에 50여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이곳저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은 눈에 익지 않은 낯선 광경이었다.포항시 북구 청하면 미남리에 자리한 청하시장은 1920년대부터 형성돼 과거엔 인근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시내에 대형 마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갈수록 규모가 축소돼 지금은 5일마다 한 번 열리는 장날에만 예전 기억을 간직한 이들이 찾아오는 조그만 장터. 그곳에 왜 이렇게 많은 20~3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관련해 러시아의 자존심이 무너진 일이 언론을 통해 한국에 알려졌다.러시아는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스푸트니크V’. 하지만, 이 백신은 아직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 사람들조차 스푸트니크V의 효과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이런 상황이니 비교적 오가기 쉬운 인근 동유럽 국가로 미국이나 영국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러 가는 러시아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러시아의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심각한 현재진행형이다. 지난주에도 1일 확진자가 3
무엇보다 귀한 인도의 관광 자원은 사람들의 미소먼저 두 가지 질문. 가난 속을 살면서도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다는 듯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어딜까?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없음에도 남을 돕는 걸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이들은 어디에 많이 살까?30여 개 나라를 여행한 경험에 한정시켜 말하자면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인도, 두 번째 질문에는 이란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인도의 거리에선 찌푸린 사람을 보기 어렵다. 좌판을 펼치고 채소나 과일을 파는 상인들은 물론, 심지어 걸인까지도 미소와 멀어지지 않고 산다. 현세
한국인들의 여름휴가가 대부분 마무리되는 9월 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네 일상을 깨뜨리기 전 이맘때쯤이면 ‘올해는 몇 백만 명의 사람들이 해외로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집계됐다’는 뉴스가 TV 화면을 장식하곤 했다.슬그머니 찾아와 질기게도 떠나지 않으며 전 세계를 공황과 우울증 속으로 빠뜨리고 있는 코로나19. 이 ‘역병’은 벌써 2년 가까이 다른 나라로 가고자 하는 여행자의 의지를 막고 있다.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며 해외여행은 적지 않은 한국인에게 일상이 됐다. 신혼부부는 물론 가족이나 친척들, 연인과 친구들은 휴가 때면
그것이 외적인 문제에서 발생했건 내부에서 생겨난 것이건 고통은 인간에게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부터 바깥에서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든 2년 가까운 세월. 우리는 조용히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경험을 싫든 좋든 하고 있다.스스로의 심연(深淵)을 바라보는 행위는 비단 철학자나 문인이 아니라도 반드시 필요할 터. 그러니 바이러스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주말이면 가까운 곳이건 먼 곳이건 다니던 나들이, 퇴근 후 동료 혹은, 연인과 어울려 가지던 술자리가 부쩍
평화로운 마을을 갑작스레 덮친 낯설고 악랄한 도둑처럼 우리 곁을 찾아온 코로나19 바이러스. ‘금방 사라지고 다시 일상이 돌아오겠지’라는 기대와 바람은 2년 가까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19 사태’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고, 터널의 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그래도 가을은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두 번째 가을이다. 훌쩍 떠나는 여행도, 친구와의 흥겨운 만남도 조심스러운 이때. 무엇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까?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듯 문학은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이겨낼 힘이 돼준다.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