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교례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어제도 두 곳이나 다녀왔다. 선거의 해인지라 참석자도 많고 열기도 뜨겁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십시오’라는 덕담이 오가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가 건강 상식 때문인지 의료보험 덕인지 주변에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 주변 지인의 모친은 105세를 넘기고 있다. 1920년 생 김형석 교수는 올해 100세, 송해 선생은 93세이다. 단순히 연세만 많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두 분 다 열심히 뛰는 현역이다.김형석 교수님, 아직도 그는 신문 글을 쓸 뿐 아니라 전국을 누비며 특강을 하신다. 나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있었으랴만 올해는 유달리 복잡다단한 한 해였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았던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여야의 정치적 갈등은 극한적 대립으로 증폭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성장을 멈춘듯하여 불안하기 그지없다. 보편적인 복지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자살자는 증가하고, 얼마 전 우유를 훔치다 잡힌 한국형 장발장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세상의 평화를 선도해야할 어느 목사는 광화문에서 정치적 갈등을 부추긴다. 크리스마스는 다시 찾아왔고 우리는 또다시 새해에 희망을 건다.크리스마스 전 어느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간다고 선포한지 오래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한은 유엔의 대북 제재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북미 실무 회담마저 결렬된 후 북한은 더욱 상황이 어렵게 되었다. 북한은 연말까지 북미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다는 엄포성 발언까지 하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은 북미 협상의 목표는 분명하지만 협상의 시한은 없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비건은 서울에서 공개적으로 북미 협상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아직 아무런 응답이 없다.북한은 연말
해방 후 남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수많은 합의문과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 직전 1971년 7월 4일 이후락과 김영주 명의의 7·4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1992년에는 남의 정원식 총리와 북의 연형묵 총리간의 남북 합의서가 발표되었다. 남북 간 불가침과 교류와 협력의 의지를 담은 지금도 손색없는 문건이다.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 간의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고 뒤이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10·4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공 선언을 발표되었다.지난해 판문점
김정은은 소위 그들의 혁명 성지 백두산을 자주 찾는다. 눈 길 속에서 그는 리설주와 나란히 선두에 서고 최룡해와 박정천 등 군 수뇌부가 말을 타고 그 뒤를 따른다. 김정은은 중대 결심을 앞두고는 백두산을 찾는단다. 나름대로 조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정신’을 되새겨 보겠다는 뜻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요구했으나 트럼프는 아직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는 김정은을 향해 ‘로켓맨’이라 비하하면서 필요시 군사력 사용까지 언급하고 있다. 다급해진 김정은이 백두산을 찾은 이유일지도 모른다.몇
독일이 통일을 이룬지 내년이면 꼭 30년이다. 2차 대전 후 우리와 같은 분단국 독일이 1990년 통일되고 이제 EU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 있다. 그들은 게르만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지속적인 국가 발전과 번영을 누리고 있다. 물론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지정학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독일은 우리처럼 동족간의 전쟁도 겪지 않았다. 그러나 2차 대전 후 전범국가의 청산과정에서 분단국가로 낙착된 점은 우리와 같다. 엄격히 말하면 독일처럼 일본 본토가 분단되어야 하는데 식민지였던 한반도가 분단된 점은 아무래도 역사의 아이러니이다.여하튼
6·25 전쟁은 민족적 비극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남침한 북한 공산군은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해 버렸다. 당시 우리 국군은 무엇을 했을까. 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분단의 상흔은 아직도 남아 있다. 천만 이산가족 당사자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2세, 3세들은 가족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지난주 실향민과 탈북민이 함께하는 부산 거제 탐방여행에 동참하였다. 부산의 임시 정부청사, 유엔군 묘지,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둘러보는 이틀 일정이었다.부산 임시 정부청사부터 찾았다
1945년 8·15 해방 정국은 어수선했다. 얄타 협정에 의해 38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 남북을 갈라 진주하였다. 해방 후 당시 국내 정국은 신탁과 반탁, 단정과 통일 정부 수립으로 양분됐다. 중경 임정의 주석 김구 선생은 임정 대표 자격을 상실한 채 그해 11월 겨우 미군 비행기로 귀국했다. 귀국 후 김구 선생은 좌우합작운동을 벌이면서 중도파를 규합한 김규식과 뜻을 같이 했다. 해방 정국 초기 김구는 이승만과 호형호제하면서 우호적이었으나 결국 정부 수립 문제로 상호 불신과 갈등을 겪게 된다.이승만의 단정을 반대하던 김
오랜만에 연극 ‘산불’을 보았다. 차범석 선생의 이 작품은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연극을 통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극단 예전의 중견 배우들이 열연한 이 작품은 6·25 분단의 비극적 상황을 리얼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지방의 척박한 문화 예술 환경하에서도 지역 연극인들의 중후한 연기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연극의 출연진들이 모두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여 작품의 토속 성을 높였고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훨씬 좁혀주었다.이 연극은 6·25 전쟁기간 중의 산골 주민들의 애환을 잘 보여주었다. 조용하던 시골 마을도 인민군
대구 지역에도 탈북민 670여 명이 살고 있다. 또 대구에는 6·25 전후로 넘어온 이북 5도민도 36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망향의 설움을 안고 사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북 5도민들도 대부분 초기에는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기업인으로서 성공한 사람도 있고, 그 자손들이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탈북민 중에는 아직도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어제 이북5도민회가 탈북자들을 돕겠다는 취지로 마련한 가족 결연식에 참여하고 왔다.탈북민들의 정착 과정과 양상은
백두산에서 백말을 타고 달리던 김정은이 이번에는 금강산을 찾았다. 그는 금강산의 국제 관광지구 재건을 위해 ‘너절한 남쪽 시설물’을 제거하라고 지시하였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 필자는 여러 차례 금강산을 다녀온바 있다. 대형 유람선을 개조한 장전항의 해금강호텔에서 개최된 전국 국립대교수협의회를 주관하기도 하였다. 금강산 호텔에서는 남북 학자들 50여 명이 참가한 ‘남북(북남)관계의 발전과 학자들의 역할’을 주제로 한 학술토론회에도 참여한바 있다. 그곳의 이산가족 면회소, 평양 서커스 공연장, 간이식당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월드컵 지역예선 평양 남북 축구 경기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無)중계 무관중 경기로 우리를 실망시켰다. 평양 김일성 경기장의 남북 축구는 ‘깜깜이 축구’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축구팀은 남북 직항로를 포기하고 베이징을 경유하여 이틀 만에 겨우 평양에 도착하였다. 남북의 축구 대표 팀은 텅 빈 김일성 경기장에서 육박전에 가까운 거친 경기를 치른 것이다.우리는 오랜만에 열리는 남북 축구가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모든 협상을 배제한 채 관중과 중계가 없는 경기만을 허용하였
북한 당국은 최고 지도자를 항상 우상화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혁명 역사’와 ‘혁명 활동’까지 초중등의 핵심교과로 삼고 있다. 김일성 부자의 신출귀몰한 ‘혁명적 행위’는 우상화를 넘어 신격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김일성의 전기인 ‘세기와 더불어’도 그의 항일 투쟁과 빨치산 활동을 과장 선전하고 있다. 북한은 우상화를 통해 수령의 왕국 건설을 위해 일사불란한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이러한 수령 우상화 현상은 김정은 시대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2011년 김정일 사후 1984년 생 28세 김정은은 세습왕조의 통치
지난 7월11일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개정 헌법을 ‘내 나라 홈피’를 통해 공개했다. 이 헌법 개정은 1948년 인민민주주의헌법 제정 이후 18차, 1972년 사회주의 헌법제정 이후 8차, 김정은 등장 이후 4차 개헌이다. 북한의 헌법 개정은 김정은 체제 하의 북한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예측할 수 있다. 북한은 헌법 개정을 통해 선군시대의 당-군-정 체제를 당-국가 체제로 전환함으로서‘사회주의 정상국가’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북한의 헌법 개정은 과연 북한체제 변화의 신호일까.먼저 이번 개정 헌법에서 북한은 통치이념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드물었다. 그는 미국 중하층 백인들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미국 우선주의’ 정치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그러나 임기 초부터 트럼프의 절제되지 않는 발언은 세계인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비하 발언에서부터 최근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한 전화는 트럼프를 탄핵의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트럼프의 한반도 문제에 관심은 미국의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다. 그러나 그의 정제되지 않은 한반도 관련 발언은 그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트럼프는 북한 김정은에 대한 평
지난 18일 서울 앰베서더호텔에서 열린 통일연구원 주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과거 재직시절 학술대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번 학술 대회에는 3개 세션으로 구성되어 국내 학자 뿐 아니라 미국의 학자, 언론인들이 대거 참석하였다.제 1세션은 ‘9·19 평양 공동 선언의 의의’라는 주제의 발표가 있었다. 미국은 사회과학원의 레온 사갈 등 4명이, 한국에서는 김갑식 통일연구실장 등 전문가 3명이 발표하였다. 사갈은 지난해 2018년 평양 공동 선언의 후속 합의서인 남북 군사 합의문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과거 남북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여야 정치권의 갈등이 초래되고 있다. 그 파장이 곧 수습될지 오래갈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키 어렵다. 여권이 내세운 그의 법무장관 기용배경은 그를 통한 검찰개혁에 두었다. 청문회 전부터 제기된 조 장관 딸의 논문 1저자 등재, 동양대 총장상 의혹, 사모 펀드 의혹 등은 야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찬반양론이 비등한 가운데 대통령은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장관 임용을 강행해 버렸다. 조국 법무장관의 검찰 개혁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임은 분명하다.이 나라 검찰 개혁의 당위성은
박한식 교수를 만난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20여 년 전 어느 세미나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그의 혜안은 상당히 참신하였다. 미국 조지아대학 교수이며 대구 출신인 그는 아직 고향 사투리를 그대로 쓴다. 세계적인 북한 문제 전문가인 그는 카터와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하기도 하였다. 그는 북한을 50여 차례 방문하여 북한 당국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최근 그의 북한 관련 언급은 우리들에게 상당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북한 당국은 종래의 통미통남(通美通南) 정책에서 다시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으로 회귀하였다. 북한이 최
지난 8월29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완전히 나라를 빼앗긴 수치스런 날이다. 1910년 8월22일 체결된 8개항의 합방 문서가 8월29일부터 효력이 발생한 것이다. 한일 합방조약 전문 1조에는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全部)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는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고 되어 있다. 나머지 조항은 합방 후 한국 왕실에 대한 예우, 합방 훈공 한인의 예우, 한인들의 관리 채용 등 식민화를 위한 사탕발림식 내용이 들어 있다.일본은 치밀한 계획을 통해 조선의 국권을 강제 탈취하였다. 일본은 1905년 을사조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는 193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1960년 도쿄(東京)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부터 도쿄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8년에 정년퇴임했다. 러시아사와 북한 현대사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학자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베트남전 반대 운동, 한국 민주화운동과의 연대 등 행동하는 진보 지식인이다. 2010년 제4회 후광 김대중 학술상, 2012년 DMZ 평화상을, 이번에는 만해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러일전쟁과 대한제국’등이 있다.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