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있었으랴만 올해는 유달리 복잡다단한 한 해였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았던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여야의 정치적 갈등은 극한적 대립으로 증폭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성장을 멈춘듯하여 불안하기 그지없다. 보편적인 복지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자살자는 증가하고, 얼마 전 우유를 훔치다 잡힌 한국형 장발장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세상의 평화를 선도해야할 어느 목사는 광화문에서 정치적 갈등을 부추긴다. 크리스마스는 다시 찾아왔고 우리는 또다시 새해에 희망을 건다.

크리스마스 전 어느 신부님의 강론은 듣는 이에게 경종을 울렸다. 고위 성직자도 아닌 우리 곁의 한 사제의 강론이 우리의 마음을 울렸다. 그의 강론 제목은 ‘성탄과 가난’이었다. 예수는 베들레헴의 마구간 구유 위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탄생하셨다(루, 2.7). 성자이신 예수는 방 한 칸 구하지 못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아기 예수 곁에는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만 있었고 목동들이 주위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세상은 아직도 크리스마스를 흥청거리는 날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라는 신부님의 성탄 메시지는 새롭게 다가왔다.

신부님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16.23)를 통해 부자들의 삶의 각성을 촉구했다. 성서 상 라자로는 병들고 배고픈 비천한 인간이다. 그는 부자의 식탁 아래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로 살아가고 있다. 식탁 밑의 개는 라자로의 종기를 핥아 먹는다. 훗날 지옥에 간 부자는 천국에 있는 라자로에게 물 한 줌 달라고 호소한다. 결국 강론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지 않았던 부자의 비극적 최후를 설파하였다. 며칠 전 언론에는 우리나라에서 집을 100채 이상 가진 사람이 259명, 최고 집 부자는 594채를 가졌다고 보도하였다. 신부님의 강론은 오늘날 가진 자들의 위선을 비판하고 자선만이 구원의 길임을 되새겨 주었다.

신부님은 마지막으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신앙은 결국 실천임을 강조하였다. 여행길에 강도당한 사람(루,10.30)을 사제와 레위인들도 모른척하고 떠나 버렸다. 유태인들이 그렇게 천시하는 사마리아인이 이 사람을 여관으로 데려가 보호해준다. 우리 주변에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지만 바쁜 세상 핑계로 모두가 외면해 버린다. 물질적 풍요가 더할수록 인정과 인심은 더욱 메마르다. 교회마저 세속이 들어와 가진 자와 높은 자들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신부님의 강론은 교회의 참된 책임을 일깨워 주었다.

이 신부님은 젊은 시절 가톨릭정의구현사제단에서 활동하셨던 분이다. 세상이 온통 뒤범벅이고 정치가 탈선했을 시 정의 사회를 외쳤던 분이다. 오늘날 일부 개신 교회는 상속권 문제로 시끄럽고, 가톨릭에도 세속이 범람한다는 비판이 따른다. 마침 로마 교황은 바티칸의 성직자들이 역동적인 시대정신을 알아차리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모든 크리스천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극히 겸손한 보통 신부님의 비범성이 돋보이는 강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