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등처럼 울퉁불퉁한 신비의 암릉길을 걷다

▲ 하늘과 바다를 곁에 두고 자연의 풍광을 마음껏 뽐내는 해남 달마산은 “가히 달마대사가 살고 계실만하다” 라고 칭송한 현자의 마음이 넉넉히 배어있는 산이다.
▲ 하늘과 바다를 곁에 두고 자연의 풍광을 마음껏 뽐내는 해남 달마산은 “가히 달마대사가 살고 계실만하다” 라고 칭송한 현자의 마음이 넉넉히 배어있는 산이다.

이번 등산지는 전남 해남의 땅끝 마을에 위치한 달마산이다.

남도의 명산이라고 불리어지는 이 산은 그 이름에서 보듯이 달마대사와 연관이 있는 듯하여 먼저 자료를 찾아보았다.

보리달마는 현재의 인도 옛 나라 파사국 향지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그곳에서 살다가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왔다. 이때가 527년으로 남조 양나라 고조 때이다.

달마는 중국 광주에 도착하여 선종(禪宗)의 시조가 된다.

달마가 죽은 기록이 없고 전해지는 말로는 한쪽 신발만 가지고 서천을 향하여 사라졌다고 하는데, 행방은 묘연했지만 후세에 특히 우리나라에서 달마대사는 익숙한 이름이다.

달마산이 있는 전남 해남은 우리나라 육지의 맨 남쪽이다. 등산을 가려고 새벽에 길을 나서서 송촌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반이었다. 늘 하던 대로 잠시 준비를 하고서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송촌마을-바람재-불썬봉-미황사 4시간 반 소요
정상 오르면 멀리 다도해 아름다운 풍경 한눈에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이니 해발로 치면 500m가 채 되지 않는 곳이지만 밑에서 바라다보니 돌산으로 구성되어 있어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일반 등산지가 아니고 암릉이다 보니 사고가 나지 않게 단단히 벼르고 출발하게 된다.

일행들은 13번 국도상에 있는 딱골재 들머리로 들어서서 달마산 정봉을 향해 오른다. 초입에서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산세가 험하다거나 등산이 어렵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달마산의 암봉이 마치 공룡 등처럼 울퉁불퉁한 암릉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산 위에서 보면 다도해가 점점이 띄워져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의 산악인들이 선정한 국내 100대 가고픈 산행지로 해남의 달마산을 꼽고 있으니 그 멋과 맛이 고스란히 가슴으로 전해져서 지금 이 순간에도 기대감을 주는 것이다.

달마산 등산은 단일 코스다. 1코스는 송촌마을을 출발하여 관음봉, 바람재, 달마산의 정봉인 불썬봉을 지나서 미황사로 내려오는 길인데 4시간 반이 소요된다. 계속 등산을 하려면 불썬봉에서 떡봉을 지나 도솔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코스로 송촌마을에서는 8시간 걸린다.

간단한 코스로는 미황사에서 뒷산인 달마산 정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코스인데 한시간 정도면 가능하여 절을 찾는 일반인들이 즐겨 찾는다. 이곳에 등산온 사람들은 일찌감치 등산을 끝내고 가까이 있는 땅끝마을을 돌아보기도 한다.

▲ 달마산 정봉에 있는 봉화대 모습.
▲ 달마산 정봉에 있는 봉화대 모습.

일행들은 큰 딱골재와 작은 딱골재를 지나고 바람재를 넘어서 어느덧 관음봉에 도착했다. 오른편쪽을 내려다보면 바다 너머로 진도가 보이고, 왼쪽으로 보면 섬이 많은 완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저 멀리 어렴풋하게 보이는 섬에 대해서도 누군가가 알려주는데 보길도라고 한다.

관음봉을 지나면 암릉이 시작된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계속 능선을 타고서 앞을 내달려 능선삼거리를 지나 농바우봉에 도착했다. 이정표를 보니 송촌에서 2km 정도 왔으니 농바우봉이 달마산까지 가는데 중간 지점으로 달마산까지는 2km가 남았다.

잠시 쉬고서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수시로 시야를 돌려 좌우를 살펴보면 바다와 그 위에 떠 있는 섬들이 올망졸망하니 풍경이 멋스럽다. 다른 산처럼 나무숲속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해안경관을 보면서 걸으니 단조로운 산타기보다는 재미가 있고, 암릉 보행이지만 걸음이 빠른 것 같이 느껴진다.

계속 암릉길을 걸어 1봉, 8봉을 거쳐 드디어 달마산에 도착했다. 달마산에 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에 기록이 있다. 내용에 의하면 1218년(고려 고종 5) 중국 남송시대 남송의 배가 이곳까지 표류하였는데, 그 일행이 달마산을 보고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하여 마지않았더니 가히 달마대사가 살고 계실만하다”라고 적혀 있다.

이곳 산 지명이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고, 달마대사와 관련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달마산 자료를 보면서 아쉬운 점은 현재 지명인 달마산(達馬山)이 옛 문헌인 `해동여지도`(해남)에는 달마산(達磨山)으로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에는 달마산(達摩山)으로 표기되어 있어 한자가 각기 다르고, 달마대사의 달마(達摩)와도 다르다.

일설에 의하면 현재의 산 이름은 일제강점기부터 한자를 잘못 사용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국의 명산기`에서 “국내에 전해오는 모든 문헌들이 한결같은데도 현대지형도에서만 달마산(達馬山)이라고 쓰고 있는데, 혹 일본식 표기를 그냥 따른 것이 아닌가 하고도 여겨진다”는 내용이다. 잠시 벗어났지만 달마산의 유래 등에 관한 것이니 참고로 적어본다.

달마산 정상은 불썬봉(489m)이다. 불썬봉은 이곳 사투리로 `불을 켰던(썼던) 봉`으로 봉화대 상봉을 이르는 말이다. 정상 표지석이 서 있는 남쪽 바로 옆에 봉화대가 있다. 암반 위에 있는데 유구한 세월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달마산 정상에서 가까이 주변을 살펴보거나 멀리 바다로 시선을 돌려 바라보면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신선의 경지를 담겨줄 것 같은 착각을 하고도 남는 것은 이곳의 기암괴석 등 자연이 만들어낸 절경에 감탄하기 때문이다.

이 풍광 좋은 곳에서 머리를 스쳐가는 아름다운 생각들! 달마산 같은 명산에서 얻는 여유로움이다. 가까이에서 공룡 등처럼 울퉁불퉁한 바윗돌의 묘미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여기에 서 있는가를 헤아려보다가 불현 듯 필자도 자연 속의 한 부분으로 몰입된다.

한 마리 새가 되어 달마산 불썬봉 위를 나르다가 어느덧 바다 위로 날아들어 다도해 위를 혼자 훨훨 날아다니는 착각을 한다. 그럴 때는 사실과 다르게 영낙 없는 전문 등산가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사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등산을 지속적으로 해오면서 주말마다 즐기는 등산이 이제는 일상이 돼버렸다. 처음에는 평일의 일상에서 시달린 마음을 정리하고 머리를 시킬 겸해서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이제는 등산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매번 등산을 하면서 느낀 점은 등산은 자기 과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내가 등산하므로 인해 무조건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니 자연스런 행동에서 나타나는 자연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요, 무상의 행위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프랑스의 유명한 등산가 리오넬 테레이(1921~ 1965)의 명문의 글을 읽고 나서다. 테레이는 `등산은 무상(無償)의 행위`라고 설파하면서 그 순수성을 표현했다. 그가 등산을 하면서 기록에 남긴 글 가운데 `천국의 문`이란 시는 지금 달마산 정상에서 한 마리 새를 꿈꾸는 필자의 심정을 정리한 글처럼 느껴진다.

불썬봉에서의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생각을 했다. 전국 여러 산들에 올랐지만 흔하지 않는 행동이었는데, 그것은 아마 이곳의 특이한 암릉의 모양새하며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경관이 필자로 하여금 가을 한낮의 교향곡을 연주하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행장을 갖추어 사자암쪽으로 향한다. 전국에서 달마산을 찾아온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서 일부는 바로 아래에 있는 미황사 절로 향하는 하산길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일행은 등산을 계속하면서 암릉 길을 타면서 떡봉을 지나 도솔암에 도착했다. 불썬봉에서 도솔암까지는 5km거리다.

도솔암은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대사가 수행 정진하던 암자로 정유재란 때 화재 때 소실된 것을 2002년 복원했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은 암자는 영낙 없는 한 폭의 그림같다.

산 위, 암릉 사이에 자리한 도솔암은 이미 등산인들에게 달마산의 풍광을 충분히 만끽한지라 그 감정의 영향인지 몰라도 이곳 풍경에서도 매료된다. 이렇게 자연은 저 홀로 있으면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활홀경 같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여기서 남쪽 방향으로 더 나아가면 사자봉이다. 또 그 곳을 지나 곧장 계속가면 산자락이 끝나는 지점이고, 바다가 마주보이는 해남 땅끝마을에 이르게 된다. 필자는 미황사 절로 가기 위해 다시 돌아 나와 하산 길을 택하여 능선을 타고 내려와 미황사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20분경으로 등산을 한지 6시간 가까이 됐다.

미황사는 신라 35대 경덕왕 때인 749년에 의조화상이 창건한 절이다. 사적비 기록에 의하면, 의조화상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금인이 나타나 “나는 본래 우진국(인도) 왕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며 부처님 모실 곳을 구하였소. 이 곳에 이르러 달마산 꼭대기를 바라보니 1만불이 나타나므로 여기에 부처님을 모시려 하오. 소에 경전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웠다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 자리에 모시도록 하시오”라는 것이었다. 의조화상이 소를 앞세우고 가는데 소가 한번 땅바닥에 눕더니 일어났고, 산골짜기에 이르러 이내 쓰러져 일어나지 아니하여 그곳에 의조화상이 미황사를 지었다고 한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가 하도 아름다워서 따온 것이고, `황`은 소를 데려온 금인의 황홀한 색에서 따와 붙인 것이라 전해진다.

미황사 경내를 둘러보고 사찰 위에 있는 달마산을 올려다보면서 필자는 아련한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저곳에 올라갔을까 하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다. 불과 몇 시간 전 오후 한때에 필자가 달마산 정봉 위에서 바다와 저 아래 펼쳐진 미황사를 보면서 사색하던 때가 분명 있었건만 마치 꿈속 등산을 다녀온 기분이다.

이제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차에 올랐다. 귀가 길에 산 고개를 돌아 나오면서 다시금 이번 달마산 등산을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수많은 등산을 하고 전국 각지의 명산을 다녀봤지만 이번 달마산 등산은 자연에 대한 경외사상으로 필자에게 등산에 관한 새로움에 눈 뜨게 해준 일정이었다.

산과 하늘, 바다와 바람을 만날 수 있는 곳! 남도의 명산 달마산 정상에서 머물던 한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황홀지경에 빠졌던 필자의 마음을 정리하여 끄트머리에 시를 옮긴다.

“곁을 스쳐가는/ 인파들의 웃음소리도/ 여기서는 그저 허허로움이다./ 기묘하게 생긴 달마산의/ 암릉, 바위틈에 앉아/ 달마대사의 섬광이 비쳐나는/ 그의 눈을 엿본다.// 저 멀리 섬 가까이/ 그 위를 나르는 해조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불썬봉의 선율들이/ 자연의 곡조로 번져나는/ 달마산에 서서/ 천년도량에 울려날 소 울음을 기다린다”(남도의 명산, 달마산에서)

▲ 글·사진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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