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강구곡 만당암 널찍한 바윗돌에 앉아 풍류를 만끽하다

▲ 제천 금수산 기슭에서 발원한 능강계곡 얼음골 트레킹 코스는 제천시가 개발한 9개 코스 중 여름에 가장 인기가 있는 코스로 숲길과 계곡물이 어우러져 가을초입 트레킹에도 제격이다.
▲ 제천 금수산 기슭에서 발원한 능강계곡 얼음골 트레킹 코스는 제천시가 개발한 9개 코스 중 여름에 가장 인기가 있는 코스로 숲길과 계곡물이 어우러져 가을초입 트레킹에도 제격이다.

이번 등산은 대구 문인들로 구성된 대문산악회의 정기행사다. 여름의 끝자락에 여행처럼 훌쩍 떠나고 싶은 곳이니 제천의 금수산 트레킹이다.

매달 한번 씩 행사를 갖는 대문산악회 회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아침 일찍 출발한 버스는 오전 11시경에 충주호를 돌아 제천의 능강교 주차장에 닿았다.

충주호 일원에서 펼쳐지는 호수 풍경이 시야에 가득하다. 제천사람들은 이 호수를 청풍호라 부르기도 한다. 아마도 자기 지역을 자랑하고 이름을 부르고 싶은 애향심 때문이리라.

능강교-금수암 돌탑군-취적대-얼음골 등 왕복 11km 코스
바위·숲길 어울린 계곡의 깊고 아늑한 멋, 여유 갖게해

무덥다 못해 사나운 기세의 여름 더위가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는 듯 꼬리를 내리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은 무더위 기운이 남아 있다. 이번에 다녀온 제천 금수산 트레킹 코스는 여름철에 어울리는 코스로는 제격인데, 다녀오고 난 뒤에 필자는 힘들었다.

여름 내내 한 주도 빠짐없이 주말마다 등산을 하느라 더위를 먹었는지 필자가 이틀간 앓아눕기까지 했다. 평일은 평일대로 주말은 주말대로 바쁘다보니 순전히 과로 탓이다.

혼자 끙끙 앓으면서도 그 원인이 된 산행을 떠올리다보니 심란해진 마음을 타고 전해져오는 밝은 느낌이 있다. 몸은 힘들어 꿈쩍도 않건마는 생각은 천지를 떠돈다.

제천시는 충주호를 끼고서 관광지나 산행코스 개발을 많이 하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조성을 시작하여 작년에 개장한 총 길이 58km의 트레킹코스 7개소를 완성하였는데, 이름하여 `청풍호 자드락길`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힐링코스다.

자드락길이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일컫는다. 청풍호를 둘러싼 마을을 중심으로 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인데, 걷기 편한 코스임을 예감케 한다.

그 가운데 1코스인 작은 동산길(청풍 만남의 광장-능강교)와 3코스 얼음골 생태길(능강교-얼음골)가 유명하고, 특히 여름철에는 3코스로 등산객들이나 관광객이 모여드는데 대문산악회에서는 여름철 필수코스인 얼음골 생태길을 택했던 것이다.

출발점인 능강교에서 금수암 돌탑군을 지나 만당암과 취적대를 거치고 종점인 얼음골에서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편도로 5.4km로 나와 있지만 실제 왕복 거리로 치면 11km는 족히 되고, 오고가는 데만 4시간 남짓 걸린다.

오전 11시경 일행들은 잠시 등산 안내를 받고 트레킹에 나선다. 후덥지근한 날씨지만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때로는 시원함을 가져다준다. 야트막한 숲길이 이어진다.

울창한 숲길의 평탄한 길이니 편하다. 그 길을 따라 1.6km지점에 이르니 돌탑이 무더기로 무리를 이루고 있다. 부근의 금수암 관봉스님이 고행을 하면서 하나 둘씩 돌을 얹어서 만든 탑인데, 등산객들의 안전과 통일을 기원하는 뜻에서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일반 숲길이어서 무료하던 길이 스님의 정성으로 수십 기의 돌탑군이 조성되면서 이 길은 전국 관광객들에게 널리 이름난 명소가 되어버렸다. 일행들은 돌맹이 하나하나의 정성이 담겨 만들어진 돌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감탄하면서 구경을 했다.

돌탑군에서 만당암까지는 2.2km이다. 오리가 약간 넘는 길로 여전히 숲길이다. 완만하게 이루어진 숲길을 걸으니 여름 무더위라 해도 편안히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일행과 함께 숲길을 걸으면서 일상을 벗어나 자연을 마음껏 누리며 걷는 행보에 몸과 마음이 가볍다.

숲속을 간간히 비추는 햇살을 받으며 10분 정도 걸으니 계곡 안에서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대충 보아도 백 명 정도는 모여 앉아 이야기하거나 작은 집회라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여기가 바로 능강구곡의 하나인 만당암이다.

만당암이 자리한 이곳은 여름이면 계곡 길에 자리를 펴고 시원한 계곡수로 탁족을 하며 즐기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하는데, 금수산 산행도 물론 좋지만 이 계곡에서의 자연과 더불어 시원한 시간을 보내는 더 매력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라 한다.

능강구곡은 이 계곡의 아홉 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을 말하는데, 청풍호에 수몰되는 등으로 현재는 연자탑, 만당암, 취적대 3곳만이 남아 있으니 아쉬움이 더한다.

만당암의 유래는 중국에서 나왔는데, 당나라 말기 한시에서 연유된다. 초, 성, 중, 만에 인용한 글귀의 만당이 새겨진 곳이다. 여기처럼 냇물에 드리운 반석 위에서 수십 명이 둘러 앉아 풍류를 즐기며 시상을 섭렵하였다고 하여 만당암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넓은 바위에 앉아서 앞을 흐르는 강물과 아름다운 숲, 게다가 흘러가는 바람소리조차 맑으니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옛 사람의 풍류가 저절로 그려진다. 그 생각을 해보면서 필자는 만당암에 정좌하여 눈을 감고 잠시간 명상에 잠겼다.

 

▲ 제천 금수산 얼음골 트레킹 출발점인 능강교를 지나니 울창한 숲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1.6km지점에 이르니 돌탑이 무더기로 무리를 이룬다.
▲ 제천 금수산 얼음골 트레킹 출발점인 능강교를 지나니 울창한 숲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1.6km지점에 이르니 돌탑이 무더기로 무리를 이룬다.

`능강구곡의 만당암

널찍한 바윗돌에 앉아서

눈 감고 자연을 음미해본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과 산새소리

바위 사이 흐르는 물소리 …

하마나 옛 선비들의 풍류

멋진 가락이라도 울려올까 싶어

마음의 눈을 떠 보았지만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방금 본 풍경도 잠시 머무를 뿐.`

필자는 형상을 헤아려보려 했지만 도저히 형상할 수 없어서 `아마도 그것은 전설이다` 하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자연의 풍광 속에서 맑은 기운을 받은 다음 일행은 취적대로 향한다. 편안한 숲길이 800m 정도 이어져 있고, 등산길이 잘 다듬어져 있다.

이윽고 우리 일행들은 취적대에 도착하였다. 취적대의 취적폭포와 검푸른 취적담이 옛 풍경과는 많이 바뀌었을 테지만 그래도 절경을 자랑한다. 잠시 쉬면서 취적대와 취적담을 둘러보고서는 일행들은 마지막 코스인 얼음골로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여기서부터는 길의 폭도 좁아지고 경사도도 가파른 편이다. 자그마한 구름다리를 건너서 500m쯤 가니 너덜지대를 만난다. 험한 돌길이 이어져 조심스럽게 걸어야한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걷다보니 계곡갈림길이다. 직진을 하면 신성봉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편으로 굽어들면 얼음골과 금수산으로 가는 코스다.

갈림길에서 빠져나와 150m쯤에 한여름의 신비, 금수산 얼음골이 있다. 얼음골을 한양지라고도 부른다. 한양지는 금수산 중턱 아래에 있다. 이곳에는 삼복염천에만 얼음이 나는 빙혈이 있고, 초복에 얼음이 가장 많다고 하니 자연현상이 신비하다.

얼음골은 충복도가 지정한 자연환경 명소다. 한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자연현상에 신기해하면서 빙혈바람 체험을 했다. 이곳에서 얼음을 캐어 먹으면 만병통치가 된다고 소문나 있어 얼음골을 찾는 관광객이나 등산가들은 무더운 여름에 금수산 얼음골을 찾는다고 한다. 필자도 얼음 캐기를 체험해보려 했지만 얼음이 없어 다소 실망을 했다. 그렇지만 여기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금수산 정상이 가깝지만 일행들은 시기적으로 한 여름철이고,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금수산 등정은 하지 않기로 계획했던 것이다.

참고로 금수산(1천16m)은 이름 그대로 사계절 비단결에 수놓은 듯 아름다운 산이다. 옛 이름은 백운산이었는데, 조선조 때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 선생이 백운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금수산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금수산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금수산에서 발원하여 청풍호수로 흘러드는 능강계곡의 물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계곡수는 일부는 사라졌지만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능강구곡을 돌아드는 얼음골 생태길 현장을 답사한 일행들은 그곳의 자연이 가져다주는 신비감에 싸인 풍광들을 두루 경험했다. 얼음골을 보고 다시 출발한 원점으로 가던 중에 오붓하게 점심 식사시간도 일행들은 가졌다.

여름철에는 꼭 가봐야 한다는 제천의 `얼음골 생태길`을 여름 막바지에 다녀온 것은 다행이다. 그 여행길에서 경험한 만당암이나 얼음골 등 계곡의 깊고 아늑한 멋과 맛은 여유를 갖게 하고 생활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그 매혹에 우리는 삶에서 여행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무언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때로 멀리 떠나야 한다. 보물이 존재함을, 그리고 우리 생이 기적임을 믿는 것이야말로 생을 흥미롭게 만들어준다.(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중에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각자의 생을 풍요롭게 하며, 흥미를 가져다줄 무언가를 찾기 위해 때로는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그래서인지 주말마다 산행을 즐기는 필자의 심중에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말한 `삶은 원래 여행`이라는 대목은 매혹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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